맹자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선한 존재라 가르치며 네 가지 심성을 얘기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과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측은지심은 불쌍히 여기는 심성을 수오지심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우리는 '복지'를 논할 때 종종 '베푼다', '배려한다', '보장한다'는 말로 설명한다. 그 말들의 이면에는 측은하고 불쌍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무언가를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소가 녹아있다.
근현대사에서 인류는 고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루어 내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족한 재화를 향유하게 되었고 이 속에서 재화를 독점하는 이들도 탄생하였다. 그 재화의 집중과 초과향유의 이면에는 또한 산업발전의 불가피한 부작용으로서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이라는 불행도 잉태되었다.
이러한 성장과 발전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원치 않았던 결과들을 사회가 빈곤과 양극화라는 문제로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복지라는 원병(援兵)을 애타게 부르게 된다. 그 원병 없이는 저항과 몰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득권자들의 다급한 공동인식 속에 산업국가들을 중심으로 고개를 든 것이 '사회복지' 개념이다.
바이블처럼 숭상되던 시장에는 수정이 가해졌고, 노동조건과 임금에 대한 고민과 대책 나아가 의료제도와 실업에 대한 몇몇 사회보험들이 논의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기저에는 당시 열악한 노동조건과 절대적 빈곤의 현실이 보편적 인간의 인용한계를 넘었다는 사회적 공론이 있었다. 이렇게 근대 사회복지는 최소한의 '사회양심'에 '정치적 결정'이 더해진 고육지책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니 복지하면 그 발로가 보편적 사회양심 즉 '측은지심'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도 지난 국민의 정부가 유럽식 복지모델을 벤치마킹해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하면서 현대적 복지사회로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우리의 복지가 고구려의 '진대법'과 고려, 조선의 '의창'과 '환곡' 같은 구휼(救恤) 제도로 출발했고 전후 미국 등 서방의 원조모델을 이어온 시혜(施惠)적 복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전환이었음은 분명하다.
'자활(自活)'이라는 이름의 정책들이 등장해서 시·군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공동체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사회안전망'이란 생소한 복지용어가 회자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복지제도의 근간인 4대보험에 이어 노인장기요양보험까지 마련되었다.
이제 우리사회도 복지를 외면하고는 사회적 공존(共存)과 공영(公營)을 얘기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신념과 방향성에 있어서만큼은 '성장'을 핑계로 '복지'에 토를 달 간 큰 세력은 없어 보인다. 그 만큼 복지는 이제 초이념적 가치이고, 역설적으로는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빚고 있는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복지는 목표가 아닌 목적인 사회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복지를 바라보는 인식의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단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새로운 전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복지는 더 이상 측은지심의 발로여서만은 안 된다. 소외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만이 아닌,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서 우리사회가 잉태시킨 어두운 그늘에 대한 스스로의 부끄러움에서 시작하는 처절한 사회적 공동책임, 여기서 복지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바로 맹자가 얘기하고 있는 의로운 인간의 본성 수오지심(羞惡之心), 그 마음이 필요한 때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병역을 대신해 복지현장에서 근무할 젊은 사회복무요원들의 직무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이미 60년대에 시작된 독일의 '민사복무제도'를 그 모델로 하고 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발로 뛰고 가슴으로 채득하는 첫 세대들이자 미래 복지국가를 꿈꾸는 우리사회의 주역들이 될 것이다. 오는 2012년이면 5만명 이상이 복지현장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에게 먼저 측은지심보다 수오지심을 가르치려고 한다. '존재(存在)'가 아닌 '당위(當爲)'로서의 복지를 가슴 속에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임기현 기자는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대구사회복무교육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영남신문>에도 송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