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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래 저,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박성래 저,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 베가북스

1. 기자가 육아휴직 석 달에 쓴 책

 

2008년 봄, 당시 KBS는 정연주 사장의 거취문제로 어지러웠다.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은 '버티면 끌어내야지'라고 했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혼자서 짬뽕 국물을 마시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며칠 뒤 나는 써두고 만지작거리던, 이명박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를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회사 안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KBS 탐사보도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래 기자의 책에 나온 일화다.

 

박 기자는 2009년 3월부터 석 달간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를 잘 키우랬더니 '엉뚱'하게도 석달 동안 책 한 권을 쓰고 나왔다. 박 기자판 '육아'인 셈이다. 물론 박 기자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엉뚱하지 않은 일이지만.

 

2. 도발적인 제목과 차분한 부제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제목은 도발적이되, 부제는 차분하다. 부제가 더 주제에 가깝다. '마키아벨리로 본 이명박, 오바마로 본 노무현'. 저자가 본래 정치학도라서 그렇다. 이 책에서 저자의 실제 관심은 전직 대통령들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현 대통령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근대적인 현실주의에 가깝고, 오바마의 리더십은 고대적인 이상주의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편에는 마키아벨리가 서 있고, 오바마의 곁에는 크세노폰과 링컨이 지키고 서 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가 준거가 된다.

 

3. 마키아벨리의 입을 빌린 세 가지 '대통령론' 조언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정치'다. 물론 마키아벨리즘의 일상어법은 지극히 다의적이다. 그래서 '군주론'이 아닌 '대통령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의 현직 대통령들의 통치행태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즘의 각기 다른 차원을 정리해야 한다. 곽차섭 교수가 셋으로 나눴다. 가장 유용하다.

 

첫 번째 마키아벨리즘은 "무엇보다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다만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사상"을 지칭한다.

 

두 번째 마키아벨리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상 받아들이는 관념으로서 "공익을 도외시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어떤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관행"을 지칭한다.

 

세 번째 마키아벨리즘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라는 범주를 떠나 사회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남을 희생시키는 처세방식"을 지칭한다. 흔히 우리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첫 번째는 이른바 통치의 영역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은 각각 국가이익과 정치라는 경계를 벗어나 존재한다. 그 점에서 첫 번째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세 가지 층위의 마키아벨리즘은 전혀 별개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이론이 갖는 내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긴밀하게 상호 연관돼 있다(강정인 교수).

 

그래서 저자의 분석기준은 당연히 '첫 번째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관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오바마의 품성을 강조하고 마키아벨리 또한 지도자의 품성을 강조했듯, 두 번째 세 번째 또한 결코 분리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과거 도시국가의 '군주', 공화국의 '대통령'에 대한 분석은 역시 첫 번째 관점이 주가 될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 정책에 마키아벨리즘의 잣대를 들이댔다. 그리곤 비교정치학적으로 미국 대통령과 비교한다.

 

제4부로 이루어진 편제 중 제1부가 논의의 중심이다. 한미 FTA와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 KBS 정연주 사장의 거취 문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이 사례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마키아벨리즘이 대통령의 통치행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정리했다. 물론 저자의 독자적 분석틀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학계의 분석은 늘 '뒷북'이고, 언론의 분석은 지나치게 현상적이라 본다면, 이런 시도만으로도 저자는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입을 통해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조언했다.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요새는 인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그 요새가 당신을 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군주론 20장)

"중간단계를 적절히 거치지 않고 겸손에서 오만으로, 자비에서 잔인함으로 돌변하는 것은 경솔하고 무익한 짓입니다." (로마사 논고 1권 41장)

"인민들이 자신의 자유를 박탈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복수를 가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마사 논고 2권 2장)

 

물론 이 책을 쓴 시제는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정책,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잠잠해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이 대통령의 여론조사 수치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분석이 결코 과거형이라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통치행태가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물론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몇 개월의 시차를 두더라도 유효하다.

 

여기에 필자도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마키아벨리의 말이 있다. "나는 자신의 방식을 시대 본성에 적응시키는 군주는 성공할 것이고, 거꾸로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 시대정신이다.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를 끝장내고 새로운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일극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동북아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요청받고 있다. 빵의 크기가 커지고 나면 인간의 행복도 증진되는가. 문제는 시대정신인 것이다. 통치자의 예언자적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4. '학자 정신'과 '기자 정신'의 결합

 

저자는 지난 2002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2004년과 2008년에는 미국 대선 특별취재팀으로 선발되어 워싱턴에 특파된다. 그 결과가 2008년 10월 이미 공간된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랜덤하우스)다. 사실 전문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 서양정치사상의 불후의 고전을 텍스트 삼아 현실의 정치와 대통령을 분석해내려 시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오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반증을 한 가지를 제시해야겠다.

 

저자는 독특하게도(?) 2005년 7월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라는 전문서적을 펴낸 바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의 정치철학이 더 이상 정치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부시 행정부를 지배하던 네오콘들의 사상적 배경이 되고 있음을 국내에 알리고 나선 것이다. '학자 정신'과 '기자 정신'의 결합이었다.

 

저자는 한국 정치를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로서 미국을 지배하고,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며 한국 정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네오콘들의 세계 전략의 실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미국과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술과 특종에 찌든 기자생활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레오 스트라우스와 네오콘의 실체를 제대로 정리해 알려야만 한다는 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저자가 레오 스트라우스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서양 정치사상의 전통을 이해해야만 했다. 당연히 그 뿌리인 아리스토텔레스에 매달려야만 했다. 필연적 과정으로 마키아벨리를 거쳐야 했다. 그렇다고 현실정치를 증언하는 기자로서 당시의 미국과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었다. 이 때 이미 뉴라이트를 분석하고, 뉴라이트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경고하고 나선 바 있다. 지금 들춰봐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때 이미 사실상의 '승자 독식'에 대해 염려해 놓았다.

 

저자의 분석은 그 강고한 네오콘 체제를 극복해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후보로, 다시 당선자로, 다시 대통령으로 계속됐다. 이런 공력이 있었기에 저자는 미국 정치와 오바마에 대해 누구보다도 근본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준거틀을 사용해 한국 정치와 이명박 대통령을 분석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박 기자의 정치학도로서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출간된 책을 포함한 세 권의 책을 3부작처럼 읽어도 괜찮다. <레오 스트라우스>에서 시작해도 되고, 이번 책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학자도 아닌 기자인 저자가 이렇게도 일관되게 미국 정치와 우리 정치의 비교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저자는, 저자가 특별히 존경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사회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오바마는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돌려 세우지 않는다. 오바마는 자신의 견해에 열정적이지만 그것이 쓸데없이 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도덕적 오만으로 인해 스스로 적을 만들고 그 적들 때문에 결국은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마는지를 잘 알고 있다(<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우리 사회의 분열상에 대한 고뇌다. 지나친 대립에 대한 염려다. 특히, 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도 결코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저자가 통치권자의 정치력과 정책과 정치공학보다는 품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결국 정치도 인간본성의 결을 따르기 때문이 아닐까. 통치자건 피치자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08년 올해의 인물로 대통령 당선자 시절 오바마를 인터뷰했다.

 

<타임>이 물었다. "앞으로 2년 후 중간선거 때 유권자들이 당신의 정부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물론 오바마도 자신의 공약을 기준으로 정치가 입장에서 몇 가지를 제시했다. 그런 다음 오바마는 자신만의 주관적 기준을 설명했다.

 

"2년 뒤 미국인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부는 완벽하지 않아. 오바마가 하는 일 중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들이 몇 가지가 있어. … 그렇지만 나는 이 정부가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느껴."

 

그 이후로도 십여 문장이 이어진다. 겸손과 신중함의 오바마다. 통치권자도 결국은 품성이다. 그래야 미움을 받지 않는다. 이런 품성과 신중함은 집권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 부분은 필자가 보충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취임 백일을 맞아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직접 인터뷰에 나선 편집장의 말이다.

 

"그중 백미를 꼽으면 미국인들이 지난 8년간 '나 아니면 적,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에 너무나 길들여진 나머지 이제는 좀 더 복잡 미묘한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가 돼 있다는 믿음이었다. '미국 국민은 관용만이 아니라 상세한 설명과 복잡 미묘함에 대해 갈구하고 있으며 어려운 문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문제를 단순화하고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 한다는 점입니다.'(뉴스위크 5월 27일자 "A Conversation With Barack Obama: What He's Like Now")"

 

통치권자는 군림이 아니다. 집권도 아니다. 공직자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표현하는 정승일 수도 없고, 가마를 탄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국민은 가마꾼이 아니다. 도리어 주권자가 가마를 탄 사람이고 위임받은 집행권자는 가마꾼일 뿐이다.

 

이런 사상적 궤적과 학문적 험로를 거쳐온 저자의 국내 정치와 미국 정치에 대한 집요한 관심의 종착점은 도대체 어디쯤일까. 책 일부분을 요약한다.

 

미셸과 오바마 간의 사랑게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오바마는 자신이 3년 동안 풀뿌리 운동가로 일했던 시키고 빈민가 교회 지하실로 미셸을 데리고 갔다. 그리곤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관과 정치관을 피력했다. 그날 이후 미셸은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선거기간 내내 미셸은 당시의 오바마의 메시지를 자신의 핵심 메시지로 전파했다.

 

"그날 오바마가 했던 말들은 그 이후로 계속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오바마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the world as it is)'과 '그래야만 하는 세상(the world as it should be)'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바마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두 개의 세상 사이의 거리를 인정해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타협해 버린다고. 비록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우리의 가치들과 느낌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도 말입니다."

 

5. 기자는 현세의 증인들, 시민들 알권리에 복무해야

 

저자는 <레오 스트라우스>를 펴낼 때만 해도 굳이 기자가 일종의 전문 서적을 펴낸 데 대한 변명을 서문에 적은 바 있다. "기자는 더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기자들은 정보의 저수지요, 현세의 증인들이다. 그렇다면 더 써야 하고 매체에 대한 접근권이 다른 누구보다도 용이한 이상, 말과 글을 총동원해 국민들 알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오로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자들의 것임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 특히나 위협받고 있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결코 개인이나 언론 기관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임을, 그리하여 반면에는 시민들의 알권리에 복무할 의무가 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신문기자가 아닌 방송기자의 신분으로 서양 정치사상에 대한 집요한 공부를 바탕으로 현실의 정치를 분석한다는 것, 참으로 어렵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진정 고마운 일이다. 호기심을 떠나 저자의 성실하고 일관된 작업이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저자의 일관된 연찬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저자의 작업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 문화가 좀 더 시민 지향적이고, 오바마가 늘상 이야기하는 '그래야만 하는 세상'으로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마키아벨리가 꿈꾸었던 진정한 의미의 공화주의가 이 땅에서 만발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얼마 전 펴낸 이 책이 저자의 아이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갈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들에게 진정어린 '육아법'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이들 또한 모유와 이유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맘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참으로 인간답고 자랑스러운 세상,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육아이리라. 내 아이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를 위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육아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자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예를 표한다. 물론 육아휴직 핑계대고 책상에만 앉아 있던 아빠를 원망했을 박 기자의 아이에 대해서도 '미안해~' 하고 전하고 싶다.


#박성래#마키아벨리#이명박#노무현#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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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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