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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궁금했다. 고산자 김정호는 누구일까. 그는 소문대로 백두산을 아홉 번 열 번 오르고, 너무도 상세히 지도를 그린 나머지 첩자로 몰려 끝내 옥사했다는 게 사실일까. 그에게도 처자식이 있었을까. 한 인간으로서 사랑을 혹시 해본 일은 있었을까. 지도에 미친 그는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그는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을까. 혹시 천주학쟁이로 핍박받거나 문둥병 환자는 아니었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박범신은 강연회 때마다 고산자 김정호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고산자라는 소설을 쓴 이유를 김정호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초등학생만 돼도 김정호 하면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대동여지도'라는 지도를 만든 사람이면 됐다. 그는 과거에도 현대에도 실체가 있지만 실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박범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령이다. 영은 있지만 육신이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다. 난 그런 그에게 육체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지난 16일,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박범신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이라는 강연에서 그는 <고산자>를 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름은 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인 지도는 남아있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 처자식은 있는지, 이성적인 사랑을 정말 해봤는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작가는 삶의 실체들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산자>라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고산자. 나는 그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고 싶었다."

 

박범신은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김정호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소설을 쓴 또 하나의 이유라고 말한다. 사회나 지리교과서에 김정호라는 사람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라는 사실적 기록은 있지만 그는 양반이 아니었기에 늘 역사의 뒷면에 숨어있는 그림자와 같았다.

 

김정호가 살던 18세기에 있어서 지도는 국가의 비밀이었다. 비밀의 창고 속에 꼭꼭 숨겨놓았다가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꺼내보았던 게 지도였다. 따라서 당시 지도는 국가권력의 소유였기에 양반이 아닌 김정호가 지도를 만드는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때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네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렷다?"

"네, 소인, 지도장이 김정호가 맞습니다."

이윽고 부제조 영감이 묻고 그가 대답한다.

"짊어져온 것이 무엇이더냐?"

"대동여지도를 축소한 대동여지도전도 목판이옵니다."

"왜 그런 걸 만들었느냐?"

"특별한 까닭이 없습니다, 대감마님."

"없다? 지도란 무릇 나라의 것이다. 너는 중인의 비천한 신분일진대, 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 지정잡배들에게까지 내돌리면서 까닭이 없다?"

 

당시 집권층에게 지도는 권력이었지만 김정호에게 지도는 생활이었다. 잘못된 지도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서 김정호는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꿈을 꾸었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김정호는 청나라의 첩자로 몰려 생명이 빼앗길 처지에 놓이기도 하고, 양반네들에게 죽도록 매를 맞고 쫓기는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김정호는 지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김정호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산자에게 지도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백성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사는 것이었다. 고산자가 지도를 만든 것은 결국 백성의 편리한 삶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나 힘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결국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해나간다. 어쩌면 김정호는 그런 시대의 이단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돈도 안 되는 일을 했다. 목숨마저 위태로운 일을 했다. 지도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지도 못했고 가정도 꾸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도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지도와 함께 죽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김정호라는 이름과 지도는 남겼지만 그 외에 것은 전혀 모른다. 작가는 그런 그를 소설이라는 걸 통해 실체적 인물로, 역사적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박범신에게 고산자는 한 마디로 어떤 존재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산자는 목표 너머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목표 너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았기에 고산자는 세상과 불화하면서 살았어도 스스로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그와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박범신과 함께 하는 문학의 밤'은 완산중학교 강당에서 있었고 그 강연을 토대로 평을 썼습니다.


고산자 - 2009년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문학동네(2009)


#고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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