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용적인 측면
.. 하지만 캐리어를 구입해야 하는 비용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심지어 좋은 브랜드의 캐리어는 자전거 가격보다 비쌀 수도 있다 .. 《김준영-자전거홀릭》(갤리온,2009) 159쪽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캐리어(carrier)'라는 말마디는 아주 자연스럽게 퍼져 있습니다. 또한, 큰 가게에서 끄는 수레를 놓고도 '캐리어'라 하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처럼 끌고 다니는 바퀴 달린 수레를 놓고도 '캐리어'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입에서 '수레'나 '짐받이'나 '짐수레' 같은 말마디가 나오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구입(購入)해야'는 '사야'로 다듬고, '측면(側面)'은 '대목'으로 다듬습니다. '무시(無視)할'은 '얕볼'이나 '지나칠'이나 '가볍게 볼'로 손보고, '심지어(甚至於)'는 '게다가'나 '더욱이'로 손봅니다. "좋은 브랜드(brand)의 캐리어"는 "좋은 수레"나 "이름난 상표가 붙은 짐받이"로 손질하고, '가격(價格)'은 '값'으로 손질해 줍니다.
┌ 비용적 : x
├ 비용(費用) :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
│ - 비용이 들다 / 비용을 마련하다 / 비용을 충당하다 / 여행 비용을 부담하다 /
│ 적잖은 액수의 퇴직금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위 수술 비용을 대고
│
├ 비용적인 측면을
│→ 돈 드는 대목을
│→ 돈 나가는 일을
│→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가를
└ …
국어사전에는 따로 안 실린 '비용적'입니다. 한자말 '비용' 뜻을 헤아려 본다면, '비용 + 적'과 같은 낱말을 안 실을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만, '비용적'을 말하거나 글쓰는 분 가운데 국어사전을 제대로 살피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한자말 '비용'은 한 마디로 하자면 '돈'입니다. 말풀이로는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돈이란 바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쓰는 무엇"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이와 같은 말풀이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 셈이고, 괜스레 군더더기 말마디만 늘어놓은 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은 '돈'이요,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 말은 '費用'이며, 한글로 '비용'이라고 적거나 쓰는 분들은 나라밖 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셈입니다. 'privacy'를 '프라이버시'라고 적는 꼴이라고 할까요. 'money'를 '머너'로 적는 꼴이라고 할까요. 'book'을 '북'으로 적는 꼴이라고 할까요.
우리 말은 '돈'이지, 'money'도 '머니'도 아닙니다. 우리가 쓸 말은 '돈'일 뿐이지, '머니'도 '비용'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런 말마디에 갇혀 있습니다. 그저 한 가지로 '돈'이라 마무리짓고, 우리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을 더 넓고 깊은 데로 뻗어야 하건만, 말장난이나 말놀이 하는 데에 빠져들거나 맴돌면서, 우리가 할 일을 놓치고 우리가 세울 발판을 잊습니다.
┌ 비용이 들다 → 돈이 들다
├ 비용을 마련하다 → 돈을 마련하다
├ 비용을 충당하다 → 돈을 대다 / 돈을 채우다
├ 여행 비용을 부담하다 → 여행할 돈을 대다
└ 아버지의 위 수술 비용을 대고 → 아버지가 위 수술할 돈을 대고
그 어디에서도 '돈'입니다. 들어도 돈이요 마련해도 돈이며 대도 돈입니다.
으레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어떤 일을 못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돈 때문에" 어떤 일을 못한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을 못한다고 말해야 또렷하고 알맞습니다.
인터넷을 살펴봅니다. "비용적인 부분도 고가일 뿐만 아니라" , "비용적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 "비용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었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독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비용적인 측면에서 꽤 부담이 될 수밖에", "비용적인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같은 말마디가 보입니다.
이런저런 말마디를 살피면, 하나같이 '돈'을 말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걱정'이거나 '돈이 모자라 힘든'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들어가는 돈도 비쌀 뿐만 아니라", "드는 돈을 생각하면 꿈 같은 이야기", "드는 돈이 문제가 되었지만", "독자들 주머니를 생각해", "들어갈 돈이 꽤 짐스러울 수밖에", "써야 할 돈이 뚜렷하게 벌어진다"쯤으로 고쳐 볼 수 있어요.
한 마디로 말하는 '돈'으로는 모자라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쓸 돈', '들어갈 돈', '대는 돈', '써야 할 돈', '드는 돈', '주머니 형편'처럼 한두 마디씩 살을 붙여 줍니다.
┌ 비용적 부담이 만만하지 않다
│
│→ 대야 할 돈이 만만하지 않다
│→ 들어갈 돈이 만만하지 않다
│→ 써야 할 돈이 만만하지 않다
└ …
돈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오늘날이요, 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닌 듯 다루어지는 요즈음입니다. 좋기도 하지만 싫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는 돈입니다. 온갖 곳에서 갖가지로 쓰게 되는 돈입니다. 언제나 같은 돈일 테지만, 자리에 따라 사람에 따라 흐름에 따라 다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느낍니다. 이리하여, 그때그때 다 다른 말마디로 돈을 가리키려 하지 않느냐 싶곤 합니다. 토박이말 '돈'이 있어도 굳이 '비용'을 말한다면, 또 '비용적'을 말한다면, 그리고 영어로 '머니'니 '캐피탈'이니 뭐니 무엇이니 하고 말한다면, '여느 돈하고는 사뭇 다른 돈'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돈'을 가리켜 주면 됩니다. 여느 돈하고 같지 않은 돈을 말하고 싶다면, 앞가지나 뒷가지를 달면서 '새로운 돈을 가리킬 새 이름' 하나 빚어내면 됩니다. 목돈, 쌈지돈, 푼돈, 큰돈, 조각돈, 쥐꼬리돈, ……처럼, 이런 돈 저런 돈을 나타낼 알맞춤한 새 말마디를 엮어내면 됩니다. 굳이 한자를 빌거나 알파벳을 빌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깜냥껏 새 말마디를 짓고, 우리 슬기를 바쳐 남다른 새 글줄을 엮으면 넉넉합니다.
┌ 짐받이를 사는 데 드는 돈을 얕볼 수 없다
├ 짐받이를 장만하는 돈을 가벼이 볼 수 없다
├ 짐받이 값을 안 따질 수 없다
└ …
바지런히 되풀이하는 가운데 익숙해지거나 나아지는 솜씨입니다. 힘껏 땀흘리며 뛰고 움직이는 가운데 익히는 재주입니다. 한 번 슥 읽고 외울 수 있는 똑똑이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 한다면 오래도록 꾸준히 힘써야 합니다.
우리 삶을 가꾸는 자리에서도, 돈을 버는 자리에서도, 그리고 말과 글을 다루는 자리에서도, 늘 꾸준하게 애쓰고 힘써야 나아지거나 새로워지거나 거듭납니다. 삶을 일구고 살림을 일구며 말밭과 글밭을 일굽니다. 알차게 쓸 말을 우리 손으로 캐고, 신나게 나눌 글을 우리 스스로 거두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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