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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튀김 하나씩 손에 들고...
메뚜기 튀김하나씩 손에 들고... ⓒ 이명화

시골에서 자란 저는 머루랑 다래랑, 산딸기랑, 보리수, 칡뿌리, 피비, 오돌깨, 망개, 싱아, 하물며 질경이 뿌리까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산열매 등 안 먹어본 것이 거의 없지만 동네 악동들이 즐겨먹었던 개구리나 메뚜기 같은 것을 구워서 먹곤 하는 것을 한 번도 먹어보진 못했답니다.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보아온 산과 들에 무수히 많은 곤충과 벌레들을 많이 보았어도 아직까지도 벌레나 곤충 이런 것들을 보면 적응이 안 되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저로선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이지요. 동네 남자아이들이 바닷가에서 혹은 들녘에서 뛰어놀다가 개구리를 꼬챙이에 끼워 구워먹거나 메뚜기를 구워먹는 것을 종종 보곤 했지요.

하지만 한 번도 먹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저는 가을이면 유독 메뚜기, 메뚜기 하면서 메뚜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그런 걸 먹냐고 야만인 취급하듯 눈살을 찌푸리는 저를 보고 '세례요한의 식사가 뭐였는가? 메뚜기와 석청이 아니었는가? 고단백질 음식이야!' 하며 변명합니다.

메뚜기 튀김... 밖에 나가 논에서 잡아온 메뚜기를 튀기고 있는 남편...그 옆에 붙어 선 조카들...
메뚜기 튀김...밖에 나가 논에서 잡아온 메뚜기를 튀기고 있는 남편...그 옆에 붙어 선 조카들... ⓒ 이명화

가을 이맘때면 산책을 나가도 메뚜기를 체포해 넣어올 병을 준비해 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끔 양산천변 산책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메뚜기가 뛰어다니는 것을 자주 보는데 그냥 지나칠 남편이 아닙니다. '나 잡아 잡수!'라고 말하듯 튀어나오는 메뚜기를 몇 마리 잡아오면 어김없이 냠냠 맛있게 먹을 메뚜기를 직접 프라이팬에 올려서 기름을 약간 붓고 소금을 쳐서 튀깁니다.

냄새는 또 얼마나 진한지 저는 창문을 활활 열어젖힙니다. 메뚜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창문을 활활 열어젖혀도 얼른 냄새는 나가지 않는데 맛있게 메뚜기를 튀겨서 먹는 남편은 그저 고소하고 맛있다며 아주 즐거운 표정입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아마도 메뚜기들은 남편을 보면 '적군 발견! 즉시 피하라 오바!' 하고 지들끼리 신호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젠 저도 그런 남편에 적응이 되었나봅니다. 의례히 산책 나가 자전거를 타고 양산천변을 달리다가도 폴짝폴짝 메뚜기가 뛰어나오는 걸 보면 자전거를 세우고 멈춰 서서 남편을 부릅니다. '여보! 여기!'하고 말하면 남편은 역시 가다 서서 메뚜기를 손으로 체포합니다. 이젠 남편이 메뚜기를 튀겨 먹는 것에 적응이 되어 가지만, 프라이팬에서 메뚜기를 튀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번데기의 고소한 냄새가 좋아 한 번 먹어볼까 하고 용기를 냈다가 번데기의 섬세한 주름을 보고 차마 용기가 생기지 않아 못 먹었던 이후로 지금까지도 못 먹는 것처럼 메뚜기 튀김 역시 비위가 상해 먹지 못하고 있답니다. 며칠 전엔 서창에 사는 남동생 집에서 모처럼 모여 함께 저녁도 먹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답니다.

오랜만에... 모였다...즐거운 한 때...그런데 다들 어디갔지?! 남편이랑 남동생은 방에서 대화중인가보다...
오랜만에...모였다...즐거운 한 때...그런데 다들 어디갔지?! 남편이랑 남동생은 방에서 대화중인가보다... ⓒ 이명화

오랜만에 만난 조카들은 고모부인 남편한테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역시 모르더군요. 특히 막내 지혜는 고모부가 온다는 소식에 기대에 부풀어서 교회에서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고모부 보여준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주변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하더군요. 지혜에게 있어 고모부란 바로 우리 남편을 뜻한답니다.

다른 고모부도 지혜를 예뻐해 주지만 지혜사랑이 유독 달라서 오로지 고모부 하면 저희 남편을 지칭하게 되어버렸지 뭡니까. 아파트 바로 뒤에 산이 있어 가을이 물들어가는 산을 볼 수 있어 좋은 조망을 가지고 있는 동생 아파트에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었는데 남편은 이때도 놓칠 사람이 아닙니다. 조카들을 대동하고 아파트 바로 뒤에 벼를 수확한 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당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바로 전날 오후에 가까운 원동 화제마을까지 차를 타고 나가 드라이브 하면서 메뚜기를 잡아볼까 했지만, 수확하지 않은 벼들이 더 많아 몇 마리 못 잡고 돌아왔거든요. 남편 말에 의하면 메뚜기는 벼를 수확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확 후에 보면 메뚜기를 많이 발견 할 수 있다는군요. 메뚜기를 많이 잡아본 게 분명하죠?

미리 준비해 온 잠자리채를 들고서 조카들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갔던 남편, 등에 업힌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지혜를 업고서 메뚜기를 잡던 남편은 한참 만에 조카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메뚜기가 든 병을 들고서 말입니다. 크고 작은 메뚜기들이 프라스틱 병 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동생네 부엌으로 가더니 프라이팬을 달구어 메뚜기를 튀겼습니다. 특유의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조카들은 고모부 옆에 붙어 서서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드디어 메뚜기를 튀겨 담은 접시를 거실로 내 온 남편과 우르르 뒤따라 몰려온 조카들은 구운 메뚜기를 하나씩 들고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다는 표정입니다.

작년에도 고모부가 튀겨 준 메뚜기를 먹어본 전력이 있는 조카들은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특히 부엌에서 메뚜기를 튀기고 있을 때 옆에 붙어 서서 숟가락을 쪽쪽 빨고 있던 막내 지혜는 더 눈이 반짝입니다. 세 아이들은 다 맛있게 먹습니다. 맛나게 먹는 남편과 조카, 그들의 표정엔 순진하고 행복한 미소까지 피어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에 남은 기름기까지 쪽쪽 빨아먹는 조카들 모습에 우린 그만 웃음을 터뜨립니다. 갑자기 부엌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글쎄, 프라이팬에서 도망을 쳤던 것일까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메뚜기 한 마리가 부엌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부엌에 들어갔던 올케가 그만 메뚜기를 보고 기겁을 했던 것입니다.

살아 있던 한 마리의 메뚜기, 참 운 좋은 녀석입니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가을은 남편에겐 아마도 메뚜기의 계절이 아닌가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 식구들과 함께 그동안 못다 했던 얘기들도 나누다 어둠이 내릴 때쯤 고기를 구워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한 상에 둘러앉아 여럿이 모여 앉아 먹는 저녁은 꿀맛 보다 더 달디 답니다. 그래서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종종 모이자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가끔 모일 때면 늘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가우데 한참 동안 이야기가 무르익다보니 밤이 깊어 우린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까지 남편은 아마도 메뚜기, 메뚜기 하며 산으로 들로 나갈 때면 메뚜기 타령을 할 듯 합니다. 메뚜기 꽤나 없어지겠네요.


#메뚜기#가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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