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합니다.때늦은, 새 출발입니다.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서야 반려자를 맞이합니다.오직 화필만이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내 삶을 밀고 왔습니다만여정을 함께할 배필을 바다 건너에서 만났습니다.이 또한 지천명으로 알고 예를 갖추려 하니 부디 오셔서 축복과 격려 주시면 더 없는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어젯밤에 내린 비로 더욱 또렷또렷한 가로수 나뭇잎들이 황홀한 색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다. 살갑게 다가서는 가을 햇빛이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나를 더 설레게 한다. 20여 년 전 내가 결혼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지난 17일 광주 금남로3가 대동갤러리에서 결혼식을 올린 내 친구는 나이 50에 초혼이다. 초대글에 적었듯이 지천명에 이를 때까지 오직 화필만을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로 알았다.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이 애인이었다. 그림이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휑하니 비어있는 마음에 찬바람을 맞으며, 창가에 서성거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그렇지만 결혼이 쉽지만은 않았다.
친구는 신체적인 아픔을 갖고 있다. 중학교 때 키가 지금의 키다. 성장이 멈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화가 앙리 툴루즈 로트렉(1864~1901)과 비슷한 점이 많아 '박 로트렉'이라고도 부른다.
남은 여정을 함께할 배필은 결국 바다 건너에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판티댑이다. 신부 판티댑의 부모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식 입장과 퇴장을 신랑 신부가 나란히 했다. 결혼식장도 신랑이 작품전시회를 하는 갤러리였다. 지금껏 삶을 하나도 감출 수 없고, 삶 모두를 보여주는 곳, 그동안 삶의 동반자였던 작품들과 하객들 앞에서 반려자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칠순이 넘은 노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순서에서는 끝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신랑을 보며, 하객들은 반백의 중년에 새로운 삶을 힘차게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나는 친구가 결혼하면서 짐(?) 하나를 식장에 내려놓고 왔다. 올해부터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함께 할 일도, 함께하지 못하면 늘 미안한 마음도, 이제는 가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구두도 닦고 머리에 젤도 바르고 옷도 젊게 입어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염색을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세월의 흔적은 친구들 모습에 얹어져 있었다.
해마다 여름 더위가 점점 독하게 느껴지고 열어 놓은 창문을 서둘러 닫지만, 빨강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앙증맞은 낙엽을 넋 놓고 볼 수 있는 눈과 낙엽 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 마실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성숙한 중년이다.
가끔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친구는 우리 나이가 새로운 삶을 시작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결혼식장 가까이에서 '7080 충장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마치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