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은 대안학교 '민들레사랑방' 아이들하고 나눌 '책 만드는 사람'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뒷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아이들한테,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이란 무엇인가를 들려주고자 써 보았습니다. 민들레사랑방 아이들하고는 10월 24일에 이야기를 나눕니다. - 글쓴이 말

 

 ㄱ. 책을 가까이하는 삶이란

 

 저는 어릴 적부터 책을 그리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멀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많이 좋아하지 않으면서 아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만화책 보기는 몹시 좋아해서 푼푼이 돈을 모아 형하고 한 권 두 권 장만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만화책을 우리 어머니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형과 제가 학교 가서 집에 없는 사이에 동네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셨습니다. 만화책에다가 프라모델이 통째로 사라진 모습을 보고는 부리나케 동네 쓰레기통을 찾아가 냄새를 견디며 만화책과 프라모델을 되살려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튿날이나 며칠 뒤 다시 내다 버리셨고, 저는 다시 큰 쓰레기통 안쪽으로 기어들어가 찾아내어야 했는데, 학교 갔다 오는 사이 청소하는 일꾼이 지나갔다면 끝장이었습니다.

 

 국민학교 1∼2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내는 독후감 숙제와 반공글짓기를 하는 숙제 때문에 동화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과학동화하고 백과사전 들여다보기는 재미있어 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에는 한 반에 있던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독서부장을 했기에 '줄거리가 뭔지 헤아리지도 못하며 그냥 글자만 잽싸게 읽어내며 권수 채우기'를 했습니다. 언제나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기에 바빴기 때문에 책을 쥘 겨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 입시에 얽매인 채 새벽 여섯 시 반부터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는 나날이 펼쳐진 뒤부터는, 책읽기에 조금씩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리 교과서와 자습서 공부만 해야 한달지라도, 하루 열 몇 시간을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고등학생이 되던 1991년에 수학능력시험이 새로 생기고 제가 이 시험을 맨 처음으로 치르게 된 때에 '본고사'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는 교과서와 자습서 아닌 책을 '좀더 자유롭게 읽어도 괜찮은' 학교 터전이 되었기에, 교과서 아닌 책 가까이하기를 좀더 넓혔습니다. 그러다가 본고사를 준비하며 독일말을 공부하던 때, 판이 끊어진 독일말 참고서를 찾아 헌책방에 한번 가 본 뒤로 헌책방에 깃든 너르고 깊은 책바다에 홀리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 주에 두 번씩 꼬박꼬박 헌책방을 찾아가며 책을 읽고 샀습니다. 이때까지는 인천에 있는 일곱 군데 구립도서관을 요일마다 바꾸어 가며 찾아가서 책을 읽었습니다(방학과 주말에).

 

 헌책방에는 새로 나온 책부터 예전에 나온 책이 골고루 있습니다. 저로서는 막 책에 눈을 뜨던 고등학생 때에 헌책방을 처음으로 제대로 만났기 때문에, 책이란 무엇이요 책에 무엇을 담느냐를 일찍부터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둘레에서 '책이란 무엇이다' 하고 들려주는 어른이나 동무가 하나도 없었으나, 기나긴 나날을 살아남아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꽂힌 채 새로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찾고 느끼면서, 사람이 남기는 말과 이름과 삶과 생각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껍데기로 읽는 책이 아닌 종이에 찍힌 글자에 새긴 글쓴이 넋과 종이장에 잉크를 찍어 놓은 책쟁이 땀방울과 손길을 읽어내는 일이 책읽기임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좀더 낡으면 300원이나 500원이었고(1992년 물건값으로), 반듯반듯 새책은 3000원이나 5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책에 담긴 줄거리는 똑같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어느 책을 골라서 읽을까요? 우리가 책을 읽어 얻는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과 재미는 어느 책이 더 클까요? 아니, 두 가지 책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르면 무엇이 다를까요? 같으면 무엇이 같을까요? 1800년대에 처음 나온 책을 2009년에 새로운 판으로 옮겨내어 내놓은 책하고 1975년에 찍어서 나왔던 헌책방에만 있는 묻힌 책하고는 얼마나 다를까요? 1980년에 나왔다가 판이 끊어진 책이 2005년에 다시 나왔다 하면, 두 가지 책은 얼마나 다를까요? 우리는 어느 책을 골라 읽으면서 마음밥을 먹으면 좋을까요?

 

 그러면서 생각을 합니다. 책을 마주할 때하고 사람을 마주할 때는 얼마나 다른지를. 사람을 얼굴로 마주할 때하고 목소리로 마주할 때하고 글로 마주할 때하고 마음으로 마주할 때는 얼마나 다를지를. 두 눈을 감고 손을 잡거나 살갗을 쓰다듬을 때는 또 얼마나 다를지를.

 

 책은 같은 책이지만 새책만 찾아서 보는 사람하고 헌책을 함께 찾아서 읽는 사람은 사뭇 다릅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사람하고 다리품을 팔아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에 가서 시간과 품과 땀을 들여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퍽 다릅니다. 도서관에만 즐겨가는 사람하고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책방만 가는 사람 또한 꽤 다릅니다.

 

 우리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겠다 할 때에는 먼저 책을 잘 알아야 합니다. 책이 무엇인지를 옳고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책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아니, 책을 모르면서도 책을 만들 수 있으며, 때로는 아주 잘 만들고 잘 팔아치울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모르고 사랑을 모르면서 어여쁘거나 잘생긴 짝궁을 사귀어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과 사랑을 알면서 겉모습과 겉차림과 돈크기나 이름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요? 책읽기와 책알기와 책만들기는 우리 삶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무새대로 책을 만나고 읽고 다룹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 그대로 책을 살피고 돌아보고 받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책마을에는 온통 기술자가 판을 칩니다.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책을 만드는 기술자가 넘칩니다. 책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책을 알려 하지 않으면서 책을 만드는 기술자만 북적입니다. 요 몇 달 사이에 일본 소설쟁이 책을 '로열티 몇 억'을 주고 사왔다느니 '로열티 십 몇 억'을 치르며 기록을 깼다느니 하는 소리가 소문 아닌 참이야기로 들려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돈을 넘겨주면서 일본소설책을 우리 말로 옮길 테지요.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래저래 셈하기 좋게 10억을 선물로 주고 책을 사 왔다고 합시다. 어찌 되었든 이 책에도 인세를 주어야 할 테니 10%는 기본으로 주겠지요. 어쩌면 더 많이 줄는지 모르지만 10%라고만 합시다. 그런데 소설책은 몇 만 원이나 하지 않습니다. 얼마 앞서 나온 일본 소설쟁이 ㅁ씨 책이든 ㅇ씨 책이든 그리 두툼하지 않고 그리 비싸지 않아요. 그러나 셈하기 좋게, 또 요즈음 물건값을 헤아리며 책값은 15000원이라고 합시다. 요사이는 동화책도 거의 1만 원에 가까우니 소설책이라면 13000∼15000원쯤이라고 보면 됩니다.

 

 자, 15000원짜리 책을 팔아서 10억을 만들려면 이 책은 몇 권을 팔아야 할까요? 인세가 10% 나가고 제작비(종이값, 편집ㆍ디자인ㆍ제작ㆍ관리와 홍보)가 30%쯤 나갑니다. 광고를 더 많이 한다면 제작비는 40%쯤이라고도 여길 수 있습니다. 인터넷책방이 아니더라도 요사이는 10%는 기본으로 깎고 10%를 마일리지를 붙입니다. 도매상이든 소매상이든 이윤을 남겨야 하니 10%(또는 20%)는 또 빼야 할 테지요. 이렇게 되면 책값 15000원에서 벌써 80%가 달아납니다. 그러나, 이런 소설책은 한꺼번에 많이 찍으니 제작비에서 10%를 빼 줍니다. 그래서 그럭저럭 20∼30%가 남는다고 쳐 봅시다. 15000원짜리 책을 팔아 순이익이 1500원이나 3000원, 또는 4500원이 난다 한다면(현실에서 4500원은 나올 수 없습니다), 30만 권은 팔아야 겨우 10억을 맞출 수 있겠지요.

 

 어느 누가 안 먹고 살겠습니까만, 먹어야 살기에 책마을 일꾼도 먹고살아야 하니, 그예 좋기만 한 책이 아니라 팔려서 먹고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먹고 얼마나 잘 살아야 하며 얼마나 많이 누려야 할까요. 우리가 책을 만들어 내놓아 읽히면서 느끼는 보람은 어디에서 찾아야 좋을까요. 그렇게 많은 돈을 몇몇 글쟁이한테 바치면서 우리 삶터는 얼마나 아름다워지거나 곱게 달라질까요.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주고 책 또한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워서 10억이나 100억이라는 돈을 벌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같은 책 하나를 백만 권 팔아서 수십 억을 거머쥐어야 비로소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첫손 꼽는 책문화가 닦일까요? 천 가지 책을 천 권씩 두루 만들고 팔면서 우리 삶터와 마음밭을 가꾸는 일은 아름답지 않거나 훌륭하지 않은 노릇이 될까요?

 

 한 가지 책만 수십 수백만 권을 판다면, 우리 나라에 도서관을 애써 지어 보아야 보람이 없습니다. 도서관을 곳곳에 힘껏 마련할 뜻이라 한다면, 온갖 갈래 온갖 책이 두루 나오면서 두루 읽힐 수 있는 바탕을 닦아야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좋은 나라 좋은 삶터 좋은 문화 좋은 교육 좋은 정치경제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 나라 곳곳에 천 곳이나 만 곳쯤 크고작은 도서관을 열어 놓고 곳곳마다 알차고 알뜰하고 어여쁜 책이 차곡차곡 꽂힐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애써 좋은 책을 갖춘 도서관을 열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 돈벌이에만 매이기보다 마음 살찌우기에도 눈길을 두면서 우리 삶을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ㄴ. 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란

 

 저는 1995년부터 1999년 여름까지 신문배달로 먹고살다가 1999년 여름에 뜻하지 않게 출판사 면접에 붙어 처음에는 영업부부터 해서 책마을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 출판사에 들어가며 영업이 아닌 편집을 꿈꾸었지만, 책방을 돌며 수금을 하거나 장부를 맞추거나 재고를 살피거나 홍보를 하거나 가판을 하는 영업은 여러모로 '편집뿐 아니라 책마을을 두루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우리 젊은 넋들이 뒷날 책마을에서 일할 꿈이 있다면, 여러분이 바라는 어느 갈래 일을 먼저 붙잡아도 좋겠지만, 발로 뛰는 영업을 먼저 해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거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책이 있다면, 이 책을 손수 타자로 옮기거나 손글씨로 공책에 옮겨적어 보면서, 책 하나를 써낸 글쓴이 마음과 엮은이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글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엮을 수 있는 책이 아니며, 하루아침에 다 팔아치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책은 나날이 꾸준하게 나오지만, 어떠한 책이든 처음 나온 하루나 며칠 동안만 팔지 않습니다. '새책'이라는 이름을 내건 한동안만 팔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모습으로 찍혀 나온 그날부터 언제까지나 사고팔고 읽습니다. 처음에는 새책방에서만 사고팔지만 이내 헌책방에서도 사고팝니다. 이윽고 도서관에도 꽂히며 '돈을 안 들이며 빌리거나 얻어 읽'습니다. 뒷날 판이 끊겨 새책방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동안 그 책을 사서 읽은 사람 손길'에서 벗어나면 헌책방에서 사고팔리는데, 다만 한 권만 남아 헌책방에서 사고팔리더라도 이 책은 목숨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새로 이어가는 셈입니다. 서른 해 쉰 해 백 해 이백 해 목숨줄을 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드는 책 하나는 아주 잠깐 반짝하고 사고파는 책이 아니라,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고 나누는 책인 셈입니다. 한낱 처세와 돈벌이만 다룬 책이든 제법 깊은 사랑과 믿음을 다룬 책이든, 언제까지나 헌책방과 도서관 책시렁에서 우리한테 새로 읽히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니, 이런 책 하나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코앞만 내다볼 수 없겠지요. 오늘 하루 잘 팔리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만든 이 스스로뿐 아니라 둘레 사람 누구한테나 썩 반가운 기쁨을 베풀기 어렵겠지요.

 

 재주란 언제든지 익힐 수 있습니다. 솜씨란 누구한테서나 배우며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든지 익힐 수 없습니다. 우리 가슴이란 누구한테서나 배우며 갈고닦을 수 없습니다.

 

 책 하나 만드는 온갖 재주라든지 책 하나 꾸미고 엮는 갖가지 솜씨라든지 여러 가지 풀그림을 다루는 매무새라든지,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서나 익히거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 하나를 마주하는 우리 매무새와 마음밭이란 차근차근 가다듬고 키우고 북돋워야만 합니다. 우리 젊은 넋들한테 책마을에서 일하고픈 뜻이 있다면, 또는 앞으로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책마을에 내 땀방울을 송두리째 바칠 꿈이 있다면, 재주와 솜씨는 재주와 솜씨대로 가다듬고 갈고닦으며 알뜰히 다스리는 가운데 책을 바라보고 마주하고 보듬는 매무새와 마음밭을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고 따스하고 너그러이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건대, 재주와 솜씨가 없어도 얼마든지 책마을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홀로 출판사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책마을에서 오래 버티지 않습니다. 이분들 재주와 솜씨라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과 더 센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책이 좋아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재주와 솜씨를 뽐내면서 잘 팔리는 물건으로 바라보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겉으로 느끼기에 우리 책문화가 한껏 솟아오르는 듯하다 할 터이나, 속으로는 골병이 들거나 망가지기만 합니다. 요즈음 우리 둘레에 동네새책방이 거의 모두 사라진 모습이라든지, 작은 출판사가 한길을 곧게 걸어갈 자리가 거의 사라진 모습이라든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아닌 책은 꽂히거나 놓일 자리가 거의 사라진 모습이라든지, 책을 말한다는 분들이 스스로 좁은 우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든지, 교사와 부모와 지식인이 스스로 책 읽는 갈래를 넓히지 못하는 모습이라든지, 겉과 속이 사뭇 다르기만 합니다. 겉으로는 부피가 커지지만 속으로는 시들시들하거나 곪고 있습니다.

 

 

 젊은 넋인 여러분한테만 바라서는 안 되는 일이요, 저부터 제가 몸담은 책마을에서 바꾸고 고치고 보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이란 무엇이고 책은 왜 읽으며 책은 어떻게 나누면서 이어가야 좋은가를 늘 생각하고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나부터 나 스스로 내 아이한테 즐겁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빠(또는 엄마)는 이런 책을 하나 새로 빚어내려고 모든 힘과 슬기와 사랑을 쏟았단다' 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무쪼록, 재주와 솜씨는 있지만 매무새와 마음밭이 가난하거나 밑바닥인 기술자가 되지 않는 젊은 넋으로 여러분 앞길을 닦아 나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고운 빛줄기를 하나 드리우고 여러분 마음에 싱그러운 바람줄기 하나 흐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책읽기, #책, #헌책방, #책마을, #출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