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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거대한 병영국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과거의 획일적인 관제 교육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던 파시즘이 판치던 그 시절에는 괴뢰가 인형이 아닌 빨갱이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물론  그 시절에도 명문 고등학교는 있었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 각종 특수목적 고등학교(이하 특목고)가 설립되었으며 그 법률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0조에 두고 있다. 특목고에는 공업, 농업, 해양 분야의 특목고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외고와 과학고를 주로 지칭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특목고들이 과연 특수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학고는 그런대로 과학영재를 교육하여 우수한 이공계 대학의 프로그램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제는 외고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과위 소속 의원들이 외고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외고는 지금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사고로 전환하기 위해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정안의 핵심은 특수목적고등학교 카테고리에서 외고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원은 외고를 자사고로 전환시키기 위해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외고 폐지 논란을 점화시킨 바로 그 타이밍에 조선일보는 절묘하게도 고교별 수능성적을 공개했다. 참여정부에서는 그토록 두들겨대도 요지부동이던 교육과학기술부(구 교육인적자원부)의 안병만 장관은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를 대며 수능성적 공개의 변을 밝혔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외고는 이미 특수목적을 상실해 버렸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최상위권 자원들이 입학하므로 외국어 영역에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어 영역만 아니라 수리영역, 언어영역 모두에서 전국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다. 게다가 현직 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도 외고가 아니던가?

 

결국 외고의 특수목적은 현란한 말의 잔치에 지나지 않고 일반 대중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것이다. 사교육 시장이 이처럼 비대해진 데에는 특목고와 자사고가 가장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월등한 학생의 실력과 탁월한 부모의 경제력의 교집합이 요구된다.

 

정두언 의원의 바램대로 외고를 자사고로 전환하는 것은 그럼 어떠할까? 자사고는 현실적으로 내신성적이 최상위권에 가까운 학생들만 입학이 가능하며, 비싼 등록금을 납부해야 하기에 결국 이름만 바꾼 귀족학교에 불과하다. 외고를 자사고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하에서의 명문고를 떠올려 보자. 그 시절에도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한 뜨거운 교육열이 물론 있었다. 그 시절의 명문고의 학비와 지금의 귀족학교와의 학비를 비교해 보라. 학비 외적인 요소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나던 시대는 끝이 났다. 강남지역 고교출신이 명문대에 가장 많이 입학하고, 이들이 다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고학력과 부를 2세에게 대물림 해 줄 것이다. 저학력과 빈곤의 사슬을 끊고 인고의 과정을 거쳐 입신양명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 지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가난한 고시생이 고시원 쪽방에서 인생을 걸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류의 합격수기를 이제는 보기 힘들어 질 것이다. 로스쿨에서 풀타임으로 3년을 버티기 위해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은 이제 변호사나 판사, 검사라는 업은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우리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의해 양육된 공교육에 의해서 현대판 골품제도에 살게 된 것이다.

 

진골에 해당하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필두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와 같은 성골, 그리고 6,5,4두품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교, 평민에 해당하는 전문계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고교 서열표를 정부 스스로 공개했다. 이 정보를 공개하여 얻어지는 이익도 분명 있을 것이나 교육정책의 큰 틀을 생각해 보면 잃는 것이 더 많은 것이다.


태그:#외고, #자사고,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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