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사과……음미체' 체육선생님에겐 서운한 이야기겠지만 우리의 뇌 속에 각인된 마지막은 과목은 '체육'이다. 무슨 기준이냐?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다. 입시에서 성공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과목 순이다. 몸도 나약해지면서, 마음도 나약해지고, 잔병도 많아지는 것은 다 이 때문이 아닐까?
마을학교에서는 기능적 활동에 초점 맞춘 '체육' 과목을 배워가기보다는 '몸생활'이라는 관점에서 몸을 다스리고 수련하는 법을 배워간다고 한다. 김은영 선생님은 마을학교 '몸생활' 교과를 담당하고 있다. 오늘은 마을학교의 '몸생활'이 어떤 의미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의 몸은 하늘의 모습을 본받아
<동의보감> 중에서 |
사람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의 둥굶을, 사람 발이 각진 것은 땅의 각짐을 본받는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다. 하늘에 오행이 있으니 사람에게 오장이 있으며, 하늘에서 여섯 극점이 있으니 사람에게 육부가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 눈과 귀가 있다. 하늘에 낮과 밤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듦과 깸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기쁨과 노함이 있다.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과 콧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 추위와 신열이 있다.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 혈맥이 있으며, 땅에서 초목이 자라듯 사람 몸에서 털과 머리카락이 자란다. 땅에 금석金石이 있듯이 사람에게 이가 있다. |
우리겨레(동양)와 서구가 '몸'을 보는 인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은영 선생님은 "우리 겨레는 사람의 몸이 하늘의 모습을 본받아 생겨났다고 믿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이 우리 몸과 삶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동의보감의 일부를 수강생들과 함께 읽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근대 서양학문을 뿌리로 하는 기계론적 사고, 입시제도에 붙들린 생활을 하게 되면서 우리 겨레가 몸을 이해하던 삶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우리 아이들의 '놀이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러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마을학교의 작은 시도와 생각들을 나누었다.
놀이, 행사용 레크리에이션으로 생명력 잃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당, 골목을 누비면서 종일 놀았다. 놀 거리가 특별히 없어도 놀 틈이 있고 놀 터가 있고 놀 또래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놀이에 충분히 몰입할 수 없다. 학원에 가야 하고 '컴퓨터'나 '게임기'에 빠져 버리는 게 아이들의 현실이다. 또 집을 빽빽하게 짓고, 도로를 넓혀가면서 아이들이 놀 터는 사라졌다. 골목마다 자연스럽게 전승되던 놀이들도 골목과 마당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은영 선생님은 학교에서는 '놀이'를 교과에 넣어서 가르치지만, 그것은 아이들의 삶에 녹아 있는 놀이가 되지 않고, '레크리에이션' 혹은 행사용으로 그치고 만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놀이를 제시하는 것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맛보기로 배운 놀이는 실제 놀이가 되기보다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에 머물게 되죠. 놀이에는 원래 심판이 없어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면서 스스로 어그러진 것을 풀고 어려움을 뚫고 가는 능력을 기르게 되지만 각종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은 선생님이 심판이 되어 놀이를 통제하고 조율해가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 스스로 놀이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또 이것들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에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경쟁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하면, 시시해지거나 재미가 없어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겨레의 놀이가 주는 이로움을 따져 교과서에도 빼놓지 않고 '전통놀이와 민속놀이를 싣고 가르쳐주고 있지만, 이나마 놀이에 녹아드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행사 중심으로만 치러지지 아이들의 삶을 이끄는 놀이가 될 수 없습니다. "
어떤 축제에서 민속놀이 한마당이라고 판을 펼쳐놓고, 팽이돌리기를 하는데, 한번 놀려면 기다려야 하고, 막상 할 때가 되니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 민망하기도 하니, 놀이가 될 리 없었다. 뭐 체험 활동 정도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마을학교, 놀이를 회복하다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즐겨 하던 전래놀이는 철따라 자연에서 놀던 아이들이 작은 돌멩이를 어여쁘게 보고 주워 공깃돌을 삼고, 온갖 돌을 만져보다가 좋은 돌을 찾아 비석치기를 하고, 땅에 그림을 그리며 땅따먹기를 했다. 좋은 시설과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품에서 놀 거리를 찾았다.
김 선생님은 이처럼 자연의 품성을 느끼며 물, 불, 바람, 흙 속에서 만나는 놀이가 근원적인 삶의 놀이가 될 때 생명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의 변화에 맞게 자기 몸을 움직여 놀이를 찾는다. 한 해를 돌아보면, 아이들은 얼었던 땅이 녹자 흙을 깊숙이 파놓고, 주변에 있는 온갖 돌을 들어다가 쌓아 올리며 놀았다. 봄에는 학교 뒷산에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짓는다며 돌과 나뭇가지를 모으러 다녔고, 여름에는 도랑물에 다리를 놓고 둑을 쌓으며 놀고, 가을에는 밤나무에 밤을 주우러 다녔다."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찾아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긴요한 일임에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마음껏 골목을 누비며 자연에서 뛰어 노는 것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놀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고, 놀 수 있는 시간을 넉넉하게 해줘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을학교도 오랫동안 학교가 자리 잡은 위치와 주변 상황의 한계로 아이들이 바깥놀이를 마음껏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학교를 마당이 넓은 곳으로 옮기면서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었지요.
마을학교는 점심시간이 넉넉합니다. 주로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 노는데, 학교 마당과 뒤뜰에서 놀기도 하고, 선생님이 놀이터나 산에 데리고 가기도 하죠. 한 학기동안 '몸놀이' 시간에는 산에서 비석치기, 다리걸기,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스스로 놀면서 행복해 하기도 하지만,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재밌어 했습니다."
놀이와 경쟁
우리는 흔히 아이들이 놀이에서 경쟁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 마을학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궁금해졌다. 은영 선생님은 한 경험담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1년 동안 닭싸움을 하면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닭싸움을 하는 장의 기운입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서로 겨루면서 이기고 지는 과정에서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자기 분을 못 참아내기도 하고, 억울해 하기도 했죠. 그런데 나중에는 이러한 상황들이 많이 줄고, 놀이 자체를 즐기려는 기운으로 변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놀이를 하다 보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죠. 그런데 놀이에 경쟁심이 발동해서 놀이를 하다가 자기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은 놀이다운 놀이를 해본 경험이 너무 적기 때문에 한 차례의 패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물론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서 드러나는 어려움일 수도 있죠. 그러나 숱하게 지고 죽는 것을 경험하면서 승리와 패배의 두터운 경험을 한다면 놀이 밖 현실에서 겪을 시련도 놀면서 몸으로 익힌 용기와 긍정적인 힘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삶을 이끄는 놀이'는 아이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덤벼드는 놀이다. 그래야 해가는 줄도 모르고 놀 수 있다. 엄마가 골목길에서, 놀이터에서, '이제 들어와! 밥 먹어야지!'라고 외치면 '쪼금만요!'라고 답하던 시절이 왠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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