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봉정암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탑만 남아있던 봉정암에 다시 전각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그러다 1985년경부터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되어 산중에 고래등 같은 요사 등 여러 채의 전각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천하제일의 기도 도량으로 거듭 난다는 명분 하에 헬기를 동원, 목재와 석재를 날라 중창을 한 봉정암에는 매일 1000여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9월 초부터 10월 말까지는 하루 200~3000여명의 참배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조용했던 산정은 오가는 등산객과 참배객들로 흡사 저자거리를 방불케 한다.
이제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머물려면 번호표를 타야 한다. 그도 사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1m의 좁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바닥에 매직으로 그어놓은 그 좁은 공간에서 1000여명이 발을 뻗지도 못하고 칼잠을 자며 밤을 지새야 한다. 과연 그 칼잠 속에서 참배객들은 무엇을 갈구하며 또 무엇을 얻어갈까?
참배객들은 기도보다는 자리를 찾는데 연연하느라 정신이 없다. 번호표가 없고, 자리의 구분이 없었던 때에는 화장실만 다녀오면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참배객들의 자리다툼이 밤새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고요히 선정에 들어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시대의 변화는 칼잠 속에서 도를 얻게 만들었을까? 하루에도 수천 명의 참배객들이 찾는 봉정암엔 이제 부처의 향기 대신 해우소에서 뿜어내는 인분과 소변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오래 전 용대리에서 백담계곡을 걸어서 찾아왔던 봉정암은 한적했었다. 이렇다 할 전각도 없었고, 올라오기 힘든 만큼 참배객도 적었지만 번호표를 타고 칼잠을 잘 정도는 아니었다. 참배객들은 산사의 향기에 젖어 조용히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사를 아무리 많이 지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참배객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산사는 더 오염 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당국은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 케이블카 건설까지 운운하고 있다고 한다.
감히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곳에 불뇌사리를 봉안한 자장의 뜻이 이러했을까? 케이블카까지 건설되면 봉정암은 전국 제일의 기도처와 도를 닦는 암자가 아니라 사람을 맞이하는 관광지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 봉정암에는 더 이상 道는 없고 사람만 들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