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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195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대선 포스터를 내걸었고, 이에 자유당의 지원을 받는 애국청년단은 "갈아 봤자 더 못 산다"라는 표어로 응수했다. 이 표어들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시대상과 묘하게도 들어맞는 구석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한국 헌정사상 초유의 만행을 성공시킴으로써 열린우리당이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 열린우리당은 경제살리기 보다는 불필요한 논쟁과 정쟁에 매달리면서 체감경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대선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자초했다.

 

참여정부 말기 체감경기는 거의 바닥에 가까웠다. 모든 불경기의 원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심지어는 "옆 집 개가 죽어도 누구 탓"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 당시 대선을 앞둔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는"못 살겠다, 갈아 보자"였을 것이다. 이러한 민심의 틈새시장을 번개처럼 파고 든 실물경제 이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BBK 사건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음에도 많은 국민들은 MB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MB, 그는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의 CEO가 되기까지, 개발 지상주의 대한민국의 현장 지휘관이었고 모든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다. 또한 서울시장 재임 중에 많은 반대를 뿌리치고 청계천을 완벽하게 탈바꿈 시키는 불굴의 추진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도덕성의 흠결을 감수하고 경제재건을 갈망하면서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MB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며 허황된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그의 논리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못 살겠어서 갈아 봤더니 어떠한가? 갈아봤자 더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2005년 2월 24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당시 서울시장이던 MB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신행정도시 건설을 막고 싶은 심정이라는 표현을 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헌납한다는 발언도 무시무시한데 군대를 동원해서 막는다? 이 때 이미 우리는 자신의 아집과 독선을 힘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서 얼마나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 국민들을 탄압할지를 예견했어야 했다.

 

MB는 남이 해 놓은 것은 다 보잘 것 없어 보이니까 노무현 정부에서의 코스피지수 2000 정도는 아주 우습게 보고 2008년도에 종합주가지수가 3000 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라며 천재 애널리스트처럼 자신 있는 예견을 했다. 이번 주 KOSPI 지수는 종가기준으로 1647.17로 마감했다. 아직도 3000이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 윈스턴 처칠경이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유능한 지도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 유능한 지도자는 예측이 틀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MB정부가 그래서 유능한가 보다.

 

우리 국민들이 MB에게 기대한 것은 높은 도덕성이 아니라 높은 경제성장에 대한 염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던 실물경제의 지표는 그다지 좋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권위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생각만이 피부에 와 닿는다. 경제성장만 놓고 평가하자면 스탈린은 유능한 통치자여야 하는데, 그가 후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인권을 유린하고 파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용산철거 참사에서 보여 준 공권력의 남용, 쌍용자동차 농성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무자비한 경찰력의 투입,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변질된 집권 초기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 공교육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구상 및 강행,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소신, 4대강 반대 여론 일일보고 및 국가정보원의 개입. 이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대한민국은 지금 파쇼로 회귀 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2007년 6월 6일 국립현충원에 남긴 MB의 방명록은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래 놓고 영어교육을 강화하자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 대단하다. 영어 몰입교육을 하기 전에 국어 몰입교육을 주장해도 시원치 않다.

 

긴급조치나 계엄령 선포만 없을 뿐이지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은 억압 받는다. 김제동씨나 손석희씨의 방송 프로그램 하차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압력을 받았다는 물증은 없으나, 그 분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체제를 비판하거나 국가사업에 반대하는 언론은 유형무형으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정권에 협조적인 언론은 광고편성 등과 같은 보상을 받고 있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2009년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179개 국 중에 69위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22위나 하락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3년 10월 조선일보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39위에서 49위로 하락한 이유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메이저 신문 공격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렇다면 69위로 추락한 지금은 뭐라고 설명해야 논리적으로 맹점이 없을 것인가? 역시 국민들의 체감지표가 정량화 되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국토를 파헤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발상은 대한민국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와 정황과 프레임이 똑같다. 개혁이라는 칼날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의 기세로 미루어 볼 때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이제 무섭다.

 

전 정부의 업적을 폄훼하고 마치 새로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처럼 연일 부르짖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는 발상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가깝다. 국민들에게 누적된 실망은 정부 스스로 신뢰 받지 못하는 정부가 되기를 자초한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것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이 나라를 떠나기 위해 이민 박람회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는 것은 마치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던 출애굽기를 연상케 한다.


태그:#언론자유, #파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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