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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용산 철거민참사' 관련하여 전국철거민연합회의 농성 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이 용산 철거민참사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검찰이 '용산 철거민참사' 관련하여 전국철거민연합회의 농성 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이 용산 철거민참사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성당 앞마당에 가을볕이 기분 좋게 내리쬔다. 쌀쌀한 날씨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만큼 맞춤한 볕이다. 겉옷을 벗어 한 손에 걸치고 잠시 성당 뜰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참 좋다. 막 겨울채비를 시작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쓸쓸하면서도 쾌청한 냄새들. 곧 겨울이 오겠구나, 발 아래 뒹구는 나뭇잎들이 이제 곧 맞이할 계절을 알리고 있다. 군데군데 무표정한 얼굴과 굳은 자세로 가을볕과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사복경찰들만 아니라면, 늦가을 오래된 성당의 뜰 안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명동성당의 뒤뜰 입구 한 구석에 자리한 영안실.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철거민들의 목멘 아우성을 외면하지 못해 함께 싸우다 갇힌 신세가 된 사람들. 순천향병원에서 이 곳 명동성당으로 농성장을 옮긴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가고, 용산철거민 살인진압참사는 열 달이 되어간다. 특히나 철거 브로커, 극렬용공분자 등 언론에 온갖 극악한 모습으로 보도된 '전국철거민 연합'의 남경남 의장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동성당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경찰들과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전 날 단식 중 덜컥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진 문규현 신부님에 대한 염려로 낯빛이 어두웠다.

 

"아시다시피 문규현 신부님이 단식하시다가 혼수상태다.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큰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인 10월 26일부터 범대위(이명박정권 용산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대표자들과 성당의 수배자 3인(이종회, 박래군, 남경남)이 단식농성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단식에 대비해 건강에 신경 쓰고 있어서 우리는 괜찮은데…."

(다행히 다음 날 문규현 신부는 의식을 회복했다 - 글쓴이 주)

 

요즘 어떠시냐는 물음에 그는 명동성당으로 옮겨오니 순천향병원보다 여러 모로 낫다고 한다.

 

"순천향병원에서 이리로 온 게 9월 4일이니까 한 달 하고 3주 정도 지났다. 거기는 건물 안 실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여기는 한정적이긴 해도 돌아다닐 수 있어 그쪽보다 나은 편이다. 영안실이 지하여서 습도가 좀 높은 점이 불편하긴 한데 건강에 크게 이상은 없고, 훨씬 좋다."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해 죄스럽다

 

인터뷰는 성당의 뒤뜰 벤치에서 이뤄졌다. 성당 곳곳은 사복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감시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그는 계속 긴장된 몸짓을 보였다.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둘레를 계속 의식하면서 날카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이틀 앞으로 예정된 단식농성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산참사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는 요구를 다시 한 번 하기 위해 단식에 들어간다. 정부는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의 문제는 개인들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공공이 개입해서 해결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럼 묻고 싶다. 개인과 개인의 문제면 왜 경찰특공대가 개입했는가? 경찰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은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생계대책이나 생존권문제를 해결해왔다. 서로 불문율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용산은 경찰병력이 이를 가로막았다. 의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과정에서 철거민 5분과 경찰 1분이 돌아가셨는데, 정부는 문제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실컷 개입해 놓고 문제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라 말한다면 이게 어디 정부인가?"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열 달 가까이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에 대해 다시 분노가 이는 듯했다. 잠시 이야기를 돌렸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후 한 신문의 인터뷰를 보니 그의 아내가 "남편과 나는 거의 남남이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가장 죄스러운 부분이다. (용산)사건이 나고 경찰부터 기자들까지 집 앞에 진을 치고 살았다. 거기에 시달린 아내가 화가 난 채로 날카롭게 쏘아붙인 걸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를 했더라. 물론 아내가 화가 많이 났을 거다. 가정에 돌아와 평범하게 가장 노릇 해주길 바랐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혼기에 차 있는데 아빠가 이러고 있으니 결혼생각도 못하고 집에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미안할 따름이다. 아내가 식당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많이 대화하고 서로 노력해서 지금은 내 활동을 잘 이해해 주고 있다."

 

 용산 범대위 대표자들이 지난 9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영안실에서 '용산 범대위 대표자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추석 전 장례를 치르겠다"고 입장을 밝힌 뒤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수사기록 공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용산 범대위 대표자들이 지난 9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영안실에서 '용산 범대위 대표자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추석 전 장례를 치르겠다"고 입장을 밝힌 뒤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수사기록 공개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벼랑으로 떠밀린 철거민들, 어떻게 외면하나?

 

철거민 운동 20년. 그는 철거운동 안에서도 가장 강경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용산의 참사가 일어난 후 언론과 경찰은 그가 대표로 있는 '전국철거민연합'을 폭력, 테러집단이라며 표적삼아 파헤쳤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증거란 있는 게 아니라 우격다짐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그는 지난 20년간의 철거투쟁에서 경험했다.

 

"90년도에 내가 살던 곳이 개발지역이 되면서 세입자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어 이 운동을 시작했다. 나 자신이 철거민이었을 뿐, 무슨 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때 우리 지역은 2년 가까이 투쟁을 해서 순환식 개발(먼저 철거민들을 내쫓고 대책을 세우는 대신, 임시 주거지 등 대책을 세운 후 철거를 하고 다시 입주하도록 하는 개발 방식)에 근거한 보상과 주거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을 추진할 때라 경기도 지역에 엄청난 개발붐이 일었다.

 

우리 사례가 알려지게 되니까 인근 개발지역 철거민들이 많이 찾아와서 어떻게 투쟁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자기 지역에도 와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철거당했을 때의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힘닿는 데까지 돕다가 자연스럽게 철거민 단체를 만들게 됐다. 그런 연대투쟁 과정에서 99년엔 2년 6개월 동안 실형을 살기도 했었다.

 

다칠 것을 각오하고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연대해달라고 오는 철거민들이 있을 때마다 전철연 회원들은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자기 일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용산 4지구 철거민들이 찾아와서 도와 달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쳐야 그나마 용역깡패, 재개발조합, 경찰, 관공서, 건설자본, 정치권 까지 5겹, 6겹으로 둘러싸인 이 부조리한 구조에서, 그나마 철거민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함께 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이렇게 벼랑으로 내몬 사람들은 그들이지 전철연이 아니다."

 

'용산 참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재판에서 검찰은 용산 4지구 구속자들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10달 전만 해도 그냥 용산 4지구에 살던 사람들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특수공무집행방해, 살인 등 무시무시한 죄명을 가진 범죄자가 되어버린 그들. 그뿐인가? 8년형을 받은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의 아버지는 용산 망루의 희생자 고 이상림씨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아직 차갑게 누워 있는 아비의 시신.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 장례만이라도 치르고 싶은 아들에게, 아비를 죽인 살인죄를 씌우는 검찰. 8년 구형 얘기가 나오자 잦아들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다.

 

"폭력이다. 폭력이 아니고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검찰의 기소내용은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했고 철거민들이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3살 먹은 어린애도 웃을 일이다. 특공대원도 인화물질 때문에 냄새가 너무 진동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인화물질이 그렇게 많은데다 경찰이 망루를 부숴 쏟아지고 줄줄이 새고 있는데 철거민들이 그 진동하는 냄새를 못 느끼겠나? 살려고 망루에 오른 사람들이 거기에 화염병을 던졌다는 게 말이 되는가?

 

특공대원도 망루 안에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나는 건 못 봤다고 진술했다.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원인들을 변호인단이 실험을 통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시도 했다. 그런데도 검사가 8년이란 중형을 구형한 것은 그야말로 자본을 위한 폭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망루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여러 곳에서 일어났었다. 하지만 대부분 다 합의로 정리가 된다. 불가피하게 싸움이 벌어지는 지역은 손꼽을 정도다. 그런 지역들도 싸움이 붙은 후에 또 합의하고 자발적으로 내려오고 철거하고 그랬다. 그런데 용산은 이미 망루의 골조가 세워지면서 경찰이 특공대 투입 논의를 했다. 이는 대화를 통해 철거민들과 협상할 뜻은 전혀 없고 무조건 쓸어버리고 보자는 계획부터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 경찰의 뜻을 받들어 검찰이 그 정도 구형을 했을 거다. 건설사, 철거용역, 경찰, 검찰, 정부가 한통속이 되어서 짜고 치는 고스톱판 같다. 8년이 무슨 애들 이름인 줄 아는가? 40대 50대들도 있는데 8년이면 그 분들은 인생이 끝나는 거다. 8년 소식을 듣고 너무나 분노했다. 앞이 캄캄했고…."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난 5월 2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 도착한 가운데 전종훈 신부,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가 성모동상에서 잠시 명상에 잠겨 있다.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난 5월 2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 도착한 가운데 전종훈 신부,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가 성모동상에서 잠시 명상에 잠겨 있다. ⓒ 권우성

공권력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공공의 권력도, 공정한 권력도 되지 못하는 권력에게 '공권력'이란 이름을 붙이는 게 과연 온당할까. 용산참사 현장 바로 앞, 성을 구매하는 남성 범죄자들과 포주들이 버젓이 있는 불법 성매매 현장에는 가지 않는 경찰. 권력은 언제나 공정하지도, 공공적이지도 않다. 재벌의 총수가 비리로 구속되면 경제활동에 기여한 점을 참작한다며 언제나 관대했던 사법부가, 그 재벌의 이윤에 아주 조금 흠집을 낸다는 이유로 철거민들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한 것을 보라.

 

그런데 우리는 힘이 없다. 재벌처럼 판사나 검사에게 떡값을 줄 수도 없고, 판사나 검사가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도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리 와 닿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한데….  

 

"그렇다. 내가 철거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고, 철거문제와 연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개발 지역 얘길 해 보자. 개발 공고가 나면 거주민들은 인근 지역으로 이주를 해야 한다. 아이들 학교, 직장 등 내 생활권이 그 지역이기 때문에 멀리 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인근 지역 땅값과 집값이 올라가고 전월세가 폭등하니 이사하기 어렵게 된다. 인근지역의 전월세 거주민들은 그들대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폭등한 전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거기다 개발지역 거주민들까지 이주하게 되니 방이 모자라 더 값이 뛸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개발이란 게 단순히 그 지역 철거민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개발정책이 계속 되는 한은 우리 국민 누구라도 철거민이 될 수 있다. 보통 개발은 주거문화가 낙후된 지역을 먼저 하는데, 한 곳이 새롭게 개발되면 자연히 그 인근지역은 이전보다 더 낙후해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그 지역도 또 개발을 해야 한다. 예전엔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 등을 싹 밀고 새로 아파트를 지었지만 이제는 개발을 안 하는 곳이 없다. 이촌동 쪽에 가면 정말 멋있는 아파트들도 철거하겠다고 한다. 낙후된 주거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개발이 아니라, 이제 건설자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부러 투기를 위한 개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 누구든 철거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용산참사처럼 누구든 공권력에 의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서민에게 고통 안기는 뉴타운 개발

 

지금 이런 식의 논리라면 도곡동 타워팰리스도 이십년 후쯤이면 또 개발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욕심은 그렇다 치고, 뉴타운 공약에 표를 주는 국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또 답답해진다.

 

"서울 시민들이 개발 문제를 내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뉴타운은 말 그대로 새 동네를 만든다는 건데, 환상을 가지고 있다 보니 표를 던졌던 거다. 실제로 뉴타운 개발이 시작 돼서 쫓겨나보니까 '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뉴타운 개발이 서울시내 서민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많이 주고 있는가이다. 당장 뛰어오른 전월세 때문에 난리 아닌가?

 

오세훈 시장이 강남은 뉴타운을 안 하는데도 전월세가 폭등하는 걸 보면 집값 폭등이 뉴타운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뉴타운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강남은 뉴타운이 없을지라도 다른 구의 뉴타운들에서 보상받은 지주들이 강남으로 입성하는 거다. 일확천금을 노리는데 투기 1번지 강남만한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이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서울 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뉴타운에 표를 찍어준 서울시민들이 골똘히 생각 해봤으면 좋겠다."

 

뉴타운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민주당도 경쟁하듯 내걸었던 공약이다. 인태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사업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집 평수를 넓히려는 사람들 마음 속에 폭력이 있다"고 했다. 그 작은 이기심을 부추기는 것이 자본이고, 그 작은 이기심을 이용하는 건 정치권이다. 그건 어느 정치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도 지금처럼 쫓아내려는 건설자본과 정부, 이에 맞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철거민들은 계속 있어왔다.

 

"노무현 정부가 철거민 탄압을 안 한건 아니다. 김대중 정권도 마찬가지고. 내가 그 정권에서 구속 돼서 살고 나왔으니 분명히 탄압은 탄압이다. 그러나 탄압의 방법이나 강도는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가 공개되었을 때 나는 솔직히 이중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철거민들 탄압이 많았었다. '경찰의 난폭한 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철거민들에 대해 그렇게 연민했을 수는 있지만, 추운 겨울에 쫓겨나건 여름에 쫓겨나건 큰 차이는 없다. 따뜻할 때 철거했다고 해서 이주대책을 세워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철거운동은 어떤 정권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특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웃음). 본질은 자본주의의 구조와 모순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들 제2, 제3의 용산을 얘기하는데 헛구호가 아니다. 지금 같은 개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일이다.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서 봉기라도(웃음) 일으켜야 하는데, 사실 두 정권이 지나가면서 운동권이 죽었다. 이명박 정권의 탄압을 거치면서 일정 예전 투쟁력들이 복원되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지금 이 정부는 전철연 죽이기를 하고 있는데, 이윤을 위한 폭력적 개발이 변하지 않는 한 남경남 하나는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철연은 절대 죽일 수 없다. 대신 민주적 개발로 바꾸면 전철연은 죽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나는 전철연 없는 세상을 꿈꾼다."

 

 10월 18일 오후 1시에 열린 '용산국민법정'에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은 채 방청석 앞줄에 앉아있다.
10월 18일 오후 1시에 열린 '용산국민법정'에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은 채 방청석 앞줄에 앉아있다. ⓒ 권박효원

 

전철연 없는 세상을 꿈꾼다

 

전철연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전철연 의장. 나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더 이상 땅에서 쫓겨나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싸우다 아비를 죽인 살인자로 몰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열 달이 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유족들의 간절한 몸짓이 방패에 무참히 밟히는 일이 더는 없는 세상을, 이들을 떠나지 못해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수배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무엇보다 정부의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는 망루에 올랐던 열사들과 구속자들의 뜻이다. 이들은 돈을 많이 달라는 것도, 개발을 중단하란 것도 아니었다. 계속 영업을 통해 생계 대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짜도 아닌 임대상가를 요구한 거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사과, 유족문제해결, 임대상가 보장. 장례를 치르려면 적어도 이 세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철연 죽이기를 중단해야 한다. 예전엔 개발을 하면 분당이나 일산처럼 도시 전체를 하나의 개발지역으로 묶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 지역을 몇 개 지구로 쪼개서 시행사도 달리 하는 식으로 개발을 한다. 철거민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철연은 지구별로 나뉜 주민들을 모아내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쪼갰는데 전철연이 들어가면 안 먹히니까 우리를 죽이려 드는 거다.

 

정부는 계속 형평성을 들먹이며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얼마 전 열린 국민법정에서 일반 국민들은 경찰간부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그들이 잘못했다고 판결했다. 무작위 신청과 무작위 추첨으로 만들어진 국민법정의 배심원들은 그야말로 일반시민들이었다. 일반 시민들의 눈에도 철거민이 아니라 용산의 참사를 지시한 사람들을 문제라고 본 것이다."

 

 10월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등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10월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등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용산 이은 또 다른 죽음 없기를...

 

전철연 얘기 말고, 용산 얘기 말고 생활인 남경남 얘기를 좀 해달라고 해도 그의 얘기는 언제나 그 두 가지 주제로 끝났다. 부드러운 얘기를 잘 할 줄 모르겠다며 그가 쑥스럽게 웃는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내에게 한 마디와 함께.

 

"가장 가슴 아픈 분들이 유족들이다. 아직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언젠가 장례를 치르겠지만 치른 후의 허전함이 얼마나 크겠나. 그분들에게 묵묵히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위로 드리고 싶다. 구속자 분들도 먼 훗날 역사가 다시 재조명을 해서 검찰의 판결을 폭력이라고 규명할 것이다. 아직 선고라는 희망이 남아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와도 굴하지 않고 항소해서 또 싸우고 그 수밖에 없다. 잘못한 것도 없이 8년씩 구형을 받고 얼마나 분노에 차있을까. 같이 있으면서 함께 분노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는데, 주저앉을 수는 없고 더더욱 용기를 내서 잘못된 개발정책을 바꿔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개발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보지 않고, 다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해 뛸 것이다.

 

다음으로 가족 얘긴데, 이 운동을 하면서 아내에게 고통을 주느니 내가 떠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게 마음이 무겁다. 지금은 건강하게만 있어 달라고 내게 주문하지만 아내도 그 나이에 일하느라 몸이 많이 힘들다. 쉬는 날에도 나한테 못 올 때가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가는 이 길이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란 걸 아내도, 딸아이도 이해하기 때문에 안도가 된다. 내게 가족은 굉장히 미안하면서, 영원히 함께 할 동지다."

 

떠나지 '못하는' 것과 떠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6월 10일, 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날.  빼앗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시청 앞 광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청광장에서 1박 2일 노숙농성을 벌였다. 같은 시각 용산살인진압 현장 앞마당에는 참사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40일 넘도록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 그들은 그곳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보다,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아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그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성이고, 또 서성이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물던 곳, 그들에게 용산은 그런 곳이었다. 시청에 모인 수만 명 대신 용산에 모여 든 수백 명이 나는 더 커 보였다.

 

한 인터뷰에서 남 의장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내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처럼 아프다"했다. 그게 어떤 정도의 아픔일지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타인의 고통, 특히 약자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을 조금만 더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타는 망루에서 악 소리도 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그들, 뜨거운 불로 고통당한 시신들이 이제는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300일이 다 되도록 넋조차 기리지 못하고 누워 있다. 이 가슴 아픈 현실에 함께 울어주고, 유족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 하나가 너무 절실하다. 300일을 향해 달리는 수배 생활, 그의 바람도 나처럼 소박했다.

 

"순천향 병원은 경찰과 직접 부딪히진 않았는데 여기는 바로 앞에서 지키고 하니까 계속 싸우게 된다. 그래도 운동과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좋다. 낼모레 단식에 들어가면 못하겠지만(웃음). 예전보다 전반적으로 보수화 돼서 그런지 성당 분위기도 옛날 같지 않다. 어떤 신도들은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성당 측과 잘 논의를 해서 지금 우리 처지를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할 생각이다. 천막도 안치고 말 잘 듣겠다고 약속하고 들어왔는데(웃음). 단식을 하려면 안 칠 수도 없고 걱정이다.

 

하지만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신부님들도 오시고, 수녀님들도 오신다. 특히 젊은 신부님들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고 가는 분들이 있다. 힘이 된다. 30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갖 탄압과 매도에도 유가족 분들과 고난을 함께 해 주신 문정현 신부님과 많은 분들이 있어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쉬움이 있다면 정말 목숨 걸고 단식한 신부님들의 심정을 국민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지, 헤아린다면 표현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다. 어쨌든 이 문제를 정권이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시고, 용산 참사는 정권의 책임이라는 말들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내 바람은 그거다."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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