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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로 돌려"

"왜? 나 볼 거야."

 

나와 엄마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꼭지엔 꼭 실랑이가 일어나곤 했다. 절망스러운 장면에 눈물 흘리더라도 그래서 가슴이 답답해 와도 굳이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 자신의 마음 속에 불안과 죄책감, 동정심 때문에 생기는 상처를 애초에 방지하려는 엄마.

 

매번 비슷한 장면들.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참상'은 이제 눈감고도 그릴 정도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힘없이 동그란 눈만 끔벅이는 아기. 제멋대로 눈가에 잔뜩 앉은 파리들. 돌이나 지났을 듯한데 그 흔한 울음, 웃음을 볼 수가 없다. 그럴 힘조차 없는 것이다.

 

젖이 나오지 않는 엄마. 먹을 것이 없어서 흙을 말려서 쿠키를 만들어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없고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꿈도 꾸기 힘든 아이들을 보고 눈시울을 적신다.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는 식민지배이후에 심각해진 것이다. '저주받은 대륙'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는 식민지배이후에 심각해진 것이다. '저주받은 대륙'이 아니라. ⓒ 갈라파고스

우린 행복하구나 축복받았구나 감탄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나'는 곧, 적당히 기름지고 소박한 저녁을 먹고 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차를 몇 잔 마시고 모기로부터 해방된 갇힌 공간에서 편안하고 푹신한 잠자리에 몸을 뉜다.

 

눈물짓지 않고 벗어날 길이 없다는 아프리카의 빈민 구조 활동은 유명배우들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대중에게 파급하는 효과가 커서 이용(?)되기는 하나, 아주 열성적인 활동가가 아니라면 기껏 며칠, 아니 어쩌면 그 하루의 봉사가 자신에게 주는 만족으로 그칠지 모른다. 그 땅을 벗어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있고 일부는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좇기도 하고, 또 존경할만한 일부는 전체를 바꾸어 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던져 힘을 모으려 하고 있다.

 

왜, 그들이 굶는 것일까. 그들은, 그저 그런 운명에 영원히 놓여 있어야 할까?

 

 

- 왜? 그런데 (식량을) 못 먹는 거지? 올해도 쌀이 남아돌잖아. 미국도 유럽도 남아돌아서 땅에다 묻을 정도라는데 주면 되지 않아?

- 얘가? 모르면 가만 있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우리도 올해 쌀이 남아서 버리게 생겼다는데 수십만이 굶어서 죽어간다는 북한에 한 톨도 주지 않고 있지 않니?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생각 없이 주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온다구.

 

- 주는 게 나쁠 수도 있어?

- 그럼, 예를 들어 독재국가에 지원할 경우라면 그 식량을 독재자와 주변의 기득권세력이 재물로 바꾸거나 식량을 팔아서 생긴 이윤을 독식하게 될 거고 혹시 물품지원을 하러가는 도중에 반군이라도 만나면 약탈을 당해서 게릴라군들의 군량미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구.

 

- 어떡하지 그럼.

- 어쩔 수 없어. 멜서스라는 신학자가 이야기한 인구이론 들어봤지. 식량생산과 인구증가에 대한 이야긴데. 그 인간은 그래서 자연도태 되는, 다시 말해 굶어죽는 인간들이 있어야 지구상의 인류가 존속된다는 이론을 발표해서 오늘날의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비지원을 합리화할 때 잘도 쓰이고 있지.

 

- 심각한 문제네

-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려하고 있어. 왜냐하면 부끄럽기 때문이지. 수치심을 덮기 위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다. 국제적 기업들은 못사는 나라들에서 이익을 뽑아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지도자가 굶어죽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가 분유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려고 했어. 그런데 당시 '네슬레'가 칠레의 목축업을 기본으로 한 분유사업을 장악하고 있었거든. 국가가 살 테니 팔아라 했는데 안 판 거야. 그리고 정치적 로비를 통해서 아옌데정부를 흔든 거지. 파업을 조종하고 견제세력을 지원해서 말이지.

 

- 와, 비겁한데.

- 그래, 결국은 군부 구데타가 일어나서 그를 지지하고 함께 했던 이들과 함께 총살당했지. 백주 대낮에 대통령관저에서 말이야.

 

- 암울하다. 우리나라의 과거도 떠오르고.

 

책을 읽고 떠올린 내용의 가상 대화다. 대화체인 책의 형식까지 빌렸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학자이며 활동가인 저자가 다년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서 '과잉 생산되는 식량 속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다수'라는 지나친 모순에 대해 자신의 자식에게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누구나 알기 쉽게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가며 설명해 놓았다.

 

전쟁과 정의를 찾기 힘든 정치적 무질서, 구호조직의 활동과 현실의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산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글로벌 금융과두지배구조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비관적이다. 나의 관심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 땅의 여러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세상을 바로보기 시작하면 전 세계의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가능성을 믿는 모양이다.

 

쉽고 차분하게 이렇게 암울한 주제의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외치는 것을 보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본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지글러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9,800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갈라파고스(2016)


#기아#긴급구호#아프리카#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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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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