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우울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마음이 어지러웠을 때 조정래 선생님의 황홀한 글감옥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라 미리 말해둡니다.
일 년 남짓 동안 질병으로 집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것은 이십대 젊은 사람에겐 가혹한 일입니다. 나갈 형편이 못되어 집에서 책을 벗삼아 지냈습니다. 그때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3부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할 때 그 소설들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아픔을 생각할 때 저의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그마한 일로 오랫동안 가슴 아파하는 것은 감정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홀한 글감옥의 대부분은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입니다. 간간이 조정래 선생님의 문학청년 시절 얘기가 나와 웃음을 자아내곤 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을 참으로 진지하게만 생각했는데 유머도 있으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학이야기는 문학도나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작가와 소설의 가치, 소설 잘 쓰는 방법, 예술에서의 재능과 노력의 영향, 작가적 소양등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라 여겨집니다. 소설을 잘 쓰고 싶으면 다음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 - 47쪽
5백권의 책을 읽으면 소설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계 문학전집 1백권, 한국문학전집 1백권, 중․단편소설집 1백권, 시집1백권, 기타 역사․사회학 서적1백권입니다. 그때 그때 발간되는 신간을 골라 읽는 꾸준한 독서 생활을 글쓰기와 병행해야 합니다.-71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답이 있는 것이 어디입니까?
저에게도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감히 넘보지도(?) 못할 일이라 지면에서 말하기 송구스럽지만 언젠가 제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써보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아픔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집에서 책과 벗삼아 지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이승우씨의 "생의 이면" 이었습니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며 참 많이 울었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만약 행복했던 시절 그 책을 읽었더라면 그 만큼 공감하진 못했을 겁니다. 라디오에서 어느 고시생이 "비탈리의 샤콘느를 신청하며 이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울고 싶다"고 했습니다. 슬픔의 종류는 다를 지언정 고시생의 입장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이 주룩 흐를 만큼 예민했던 시절이니 "생의 이면"을 읽곤 잠도 못잘 정도로 펑펑 울었겠지요.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을 써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행복한 때이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불행할 때보다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탐욕은 늘 저 먼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못보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습니까? 저는 이 구절을 보고 어찌나 공감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프기 전 일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점이 바로 행복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생활할 때는 그 삶이 행복인지 몰랐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의 말처럼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사랑하게 만든 부분
저의 황홀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서 도저히 풀리지 않던 매듭이 며칠 고심 끝에 어느 순간 번쩍하는 생각과 함께 풀리게 되고, 글을 써나가면서 앞으로 써야 할 대목이 순간순간 떠오르고, 새 문장을 시작하려는 순간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묘사가 퍼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의 환희와 황홀감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 할 수 가 있겠습니까. 그런 맛, 그런기쁨, 그런 성취감 때문에 그 긴 고달픔 속에서도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396쪽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인생을 통틀어 위와 비슷한 경험이 다섯 번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황홀할 만치 스스로에게 도취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한없이 기뻤습니다.(조정래 선생님은 절대 도취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위축 되었던 자아에게 예전에 자신감 넘쳤던 기억은 유쾌한 일입니다. 비록 달릴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무언가 성취해 내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꿈을 꾸는 단계이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끝으로 조정래 선생님은 "고달프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사는 게 버겁다고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버거운 삶이라도 황홀한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황홀한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잊고 지냈다면 이 책을 계기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나에게 황홀한 무엇이 어느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