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지만 가방엔 늘 우황청심환을 소지하고 다니는 학원강사 '세연', 작가 등단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야설'을 써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정은'. 하지만 이들에 비해 연애도 아르바이트 경험도 전무한 백수 아가씨 '지희'까지. 세 친구가 스무 살 때부터 '먼저 시집가는 사람에게 몰아주자'며 장난으로 모았던 적금은 스물아홉이 된 지금, 3천 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거금으로 불어나 있다.
그리던 어느 날, 가장 가능성 없다고 생각하던 백수 아가씨 '지희'가 일주일 전에 맞선을 본 남자와 결혼하게 됐다며 친구들에게 3천 만원이 든 통장을 요구한다. 이야기는 '지희'에게 거금을 뺏기기 전에 그녀보다 먼저 결혼하겠다며 옛 남자들을 찾아나서는 두 친구의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내 남자친구, 어린 여자에게 빼앗겼다?!
마냥 유쾌할 것만 같았던 연극은 이들의 배우자 찾기가 점차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스물아홉 여성의 현실로 돌아온다. 연극이 말해주듯 이 시대를 사는 20대 후반, 30대 여성들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는 결혼이다. 하지만 이 결혼이라는 관심사가 온전히 여성의 입장으로, 주도적으로 선택한 관심사인지 궁금해진다.
연극에서는 '돈'에 의해서였지만 여성들이 결혼을 전제로 배우자를 찾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적인 대상으로서 '사회적 시선'이 만들어낸 강요된 가치관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자신의 자아실현이나 가치관에 상관없이 결혼을 강요받고 남성에 의한 종속된 삶의 방식을 택한다. '나이 많은 여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기 때문이다.
극 중 '정은'이 '어린 여자'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빼앗겼다고 울부짓는 장면이나, '세연'이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녀를 배려할 줄 아는 오랜 친구보다 결혼상대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왕재수' 컨설턴트를 만나는 장면 등은 자기 주도적 삶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연극을 관람하는 많은 여성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그녀들의 배우자 찾기에 함께 눈물 흘리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해, 사회적 약자로서 느끼는 지극히 이성적인 공감 때문이었으리라.
진정 골드미스로 거듭난 그녀들에게 박수를!
연극은 '지희'의 해피엔딩과 두 친구의 노처녀 히스테리로 끝나지 않는다. '지희'는 자신을 성적 노리개로 여긴 '능력 좋은' 남성을 거부하고, '세연'은 '남성'들 앞에만 서면 병적으로 집착하던 우황청심환을 죄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연극은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적 억압과 굴레에서 해방된 여성들의 자주적인 희망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그녀들의 선택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감원명단 1순위에 올라 있고,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을 원하는 고학력 여성들과 OECD국가 중 탑을 기록하는 여성자살률을 보유한 이 가열찬 나라에서 그녀들의 작은 외침은 그것만으로 큰 울림을 가진다.
대한민국을 사는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 사이 그 힘겨운 줄다리기가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끝마친 최후의 승자는 온전히 '여성' 자신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5월엔 결혼할꺼야>는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내달 22일까지 공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