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어렸을 때부터 '상이군인(傷痍軍人)'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어 있었다. 6·25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해 불구가 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학교에 와서 교실을 다니며 학생들에게 외상으로 학용품을 맡기기도 했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물건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상이군인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불구가 돼 가지고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이렇게 행상을 다니니 적선하는 셈 치고 물건 하나 갈아주십시오."

 

그들은 팔 한쪽을 잃었거나 다리 한 짝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갈고리 손을 하고 있거나 지팡이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우고 다리 하나로 걷는 사람들이었다. 한쪽 눈을 잃어서 눈가리개를 하거나 색안경을 쓴 이들도 있었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상이군인이 오면 각별히 대접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이 내미는 물건(생필품과 학용품 따위)을 더 사주곤 했다(나중에 안 것이지만, 아버지는 징집 대상에서 벗어난 나이라 군대를 가지 않아서, 군대에 가 전쟁을 치른 사람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상이군인들을 각별히 대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상이군인들을 보면 절로 뜨악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갈고리 손과 비어 있어 한쪽 바지자락을 보면 괜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한쪽 눈이 없거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더욱 몸이 곱송그려지곤 했다.

 

전쟁이라는 것도, 상이군인이라는 것도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대상으로 느껴졌다. 어서 빨리 상이군인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로 상이군인들을 '이질적인 존재'로 간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쉬움을 준 현수막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가 22일(목) 오전 11시 공주시 산관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현수막의 '고령회원 위안연'이라는 말이 당혹스러움과 아쉬움을 주었다.
아쉬움을 준 현수막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가 22일(목) 오전 11시 공주시 산관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현수막의 '고령회원 위안연'이라는 말이 당혹스러움과 아쉬움을 주었다. ⓒ 지요하

 

그랬던 내가 오늘 '상이군인'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가고 베트남 전쟁에 갔다온 결과다. '고엽제후유증' 판정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자동적으로 '대한민국상이군경회'의 회원이 되었다.

 

상이군인 신분을 갖게 되면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실제로 부상을 당한 이들에 대해 면구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정글을 기는 소총중대 전투병이었지만, 총탄이나 포탄을 맞지는 않았다. 베트남 정글 속에 흔했던 부비트랩들도 운 좋게,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곤 했다. 하지만 살상 무기보다도 무서운 '고엽제'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고엽제 후유증 판정으로 국가유공자가 되고 상이군인이 되었을 때는 내가 실제로 고엽제와 관련이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상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만약 내 몸의 질환이 베트남 전쟁 고엽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제대 후의 거친 생활과 더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비록 적법절차와 정밀검사에 따른 판정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갔을 때는 참으로 면구스러워지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서의 면구스러움을 상쇄시킬 수 있는 내 나름의 방편들을 생각해서 실행하기도 했는데, 이사할 때 우연히 찾게 된 베트남 전장에서의 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서는 '고엽제 노출'을 확신할 수 있었다.

 

<2>

 

지회장 소개 지부 간부들과 16개 시/군지회 지회장들은 한쪽 단상에 앉아 있는 가운데 강희범 태안군지회장이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있다.
지회장 소개지부 간부들과 16개 시/군지회 지회장들은 한쪽 단상에 앉아 있는 가운데 강희범 태안군지회장이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있다. ⓒ 지요하

 

지난 22일 오전 공주를 갔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에서 마련한 '환갑회원 위안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적으로(각 시·도지부 별로) 오래 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연례행사인데, 태안군에서는 1948년생 해당자가 단 두 명이라고 했다. 여러 명이라고 하면 슬그머니 빠질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단 두 명이라고 해서 빠지기가 어려웠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 태안군지회의 강희범(81) 회장과 조경사업을 하는 신흥수 사장과 함께 갔다. 애초 함께 가기로 했던 신흥수 사장이 바쁜 사정이 생겨 갈 수 없다고 하여 내 낡은 승합차를 이용하자니 노인이신 강희범 회장께 죄송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마음을 바꾼 신흥수 사장이 고급 승용차를 가지고 와 주어서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행사장은 공주시 공주대학교 정문 옆에 있는 '왕촌멧돼지'라는 음식점이었다. 상이군경회 충남지부 허욱진 총무부장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라고 했다. 2층의 큰 방 안에서 1부 축하식 행사가 거행되었다.

 

이용원 대전지방보훈청장, 이기영 지부장을 비롯한 충남지부 간부들, 16개 시·군지회장들과 80여 명의 환갑내기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허욱진 총무부장의 사회로 11시에 시작된 축하식 행사는 내빈 소개, 시·군지회장과 지부 임직원 소개, 국민의례, 이기영 지부장의 환영사, 이용원 대전지방보훈청장의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지부장 환영사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이기영 충남지부장이 환갑회원들에 대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과거 상이군인들의 애환, 또 상이군경회 창립 배경과 초창기의 어려움들을 소개하여 감명을 주었다.
지부장 환영사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이기영 충남지부장이 환갑회원들에 대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과거 상이군인들의 애환, 또 상이군경회 창립 배경과 초창기의 어려움들을 소개하여 감명을 주었다. ⓒ 지요하

또 케이크 절단과 선물 전달, 축하노래 합창이 있은 다음 미리 정해진 몇 분이 나와 노래를 하는 것으로 1부 행사를 마무리하고, 1층의 여러 개 방으로 분산되어 2부 오찬 행사를 가졌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지부 총무부장 허욱진씨에게 행사장 현수막의 '고령회원'이라는 말을 '환갑회원'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옳다는 말을 했다. '고령회원'이라는 말은 너무도 부적절하고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위안연'을 '위안잔치' 정도로 순화하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허욱진씨는 "중앙회에서 내려보낸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중앙회에서 그런 것까지 지시한다는 것도 우습고, 아무래도 나이 드신 이들이 운영하는 단체라 현실 감각이나 언어 감각이 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또 중앙회에서 내려보낸 것이라고 그대로 따르는 것에서는 어쩐지 군대식의 상명하복 습성이나 분위기가 내재된 것이 아닌가 싶어 찜찜하기도 했다.          

 

"내년에도 똑같은 지시가 내려오면 이의를 제기하거나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고령회원'이라는 말을 '환갑회원'이라는 말로 바꾸세요. 또 '위안연'도 '위안잔치'로 바꾸고."

 

그런데 '내년'이라는 말을 하고 보니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올해는 48년생들이 80명쯤 모였는데, 내년에는 49년생들이 몇 명쯤 모일까? 또 다음해, 또 다음해에는…?

 

상이군경회 올해의 환갑내기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애는 16개 시/군지회에서 80여 명의 환갑내기들이 모였다. 저마다 가슴에 꽃송이를 달고 있는데, 대체로 겉늙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과거 전쟁에서 얻은 신고(身苦)들을 안고 사는 신세들이기 때문인지...
상이군경회 올해의 환갑내기들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애는 16개 시/군지회에서 80여 명의 환갑내기들이 모였다. 저마다 가슴에 꽃송이를 달고 있는데, 대체로 겉늙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과거 전쟁에서 얻은 신고(身苦)들을 안고 사는 신세들이기 때문인지... ⓒ 지요하

 

점점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점점 줄어들다가 언젠가는 아예 한 명도 없게 될 것이다. 현재 상이군경회에서 한국전쟁 관련자들은 이미 소수가 되었고 베트남전쟁 관련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그쪽도 대부분 환갑이 넘었다. 아직 환갑이 되지 않은 회원들은 소수인데, 그마저도 미구에 줄이 끊어질 상황인 것이다.

 

그 사실에서 이상한 허전함과 애처로움 같은 것도 느끼는 심정이었다. 상이군경회 역시 후진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또 왕성하게 떠받쳐주는 단체가 아닌, 상당 부분 한시적인 단체인 셈이었다. 그 사실에서 모호하리만큼 이상한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또 환갑회원들의 얼굴에서도 일종의 연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 나이보다 겉늙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결같이 신고(身苦)를 안고 사는 신세들이기 까닭일 터였다.

 

<3>

 

축하 케잌 절단 왼쪽부터 이용원 대전지방보훈청장, 이기영 충남지부장, 환갑회원들을 대표한 공주시지회 유동열 회원이 함께 촛불을 끄고 축하 케잌을 자르고 있다.
축하 케잌 절단왼쪽부터 이용원 대전지방보훈청장, 이기영 충남지부장, 환갑회원들을 대표한 공주시지회 유동열 회원이 함께 촛불을 끄고 축하 케잌을 자르고 있다. ⓒ 지요하

 

공주를 가고 오며 태안군지회 강희범 회장님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현재 충남지부 16개 시·군지회 지회장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라고 했다. 현재 4개 지회만이 한국전쟁 관련자들이 지회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한국전쟁 중 입대 당시의 상황, 거지생활이나 다름없었던 군대생활, 철원전투에서 당한 부상, 어려웠던 병상생활과 제대 후의 생활, 태안군 보훈회관을 건립할 때의 고생담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제 한번 시간을 내어 좀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한국전쟁 상이군인의 삶, 전쟁 당시 군대에서 겪은 최악의 생활, '보훈'의 실체를 위해 헌신했던 노고 등을 알뜰히 기록해 놓는 것도 고장에서 문인 명색으로 사는 사람의 의무요 도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행사장에서 이기영(82) 지부장의 환영사도 감명 깊게 들었다. 1952년부터 한국전쟁 상이군경들이 자발적으로 상이군경회를 조직하게 된 배경과 발전 과정, 갈고리 손을 하고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행상을 한 상이군인들의 애환,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하고 갈고리 손으로 책상을 찍기도 한 이야기 등등….

 

잔치를 마치고 환갑잔치 축하잔치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음식점 앞에서 이기영 충남지부장, 강희범 태안군지회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고맙게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잔치를 마치고환갑잔치 축하잔치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음식점 앞에서 이기영 충남지부장, 강희범 태안군지회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고맙게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 지요하

 

그는 상이군경회 16개 시·도지부 지부장들 가운데 한국전쟁 관련자들은 4명이라고 했다. 미구에 한국전쟁 관련자들은 상이군경회 조직에서도 퇴역을 하게 된다고 했다. 베트남전쟁이 배출한 후진들이 있고, 아직은 여러 보훈 관련 단체들 가운데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체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면 쓸쓸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야기 중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나는 일순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 용어와 관련하는 이념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잠깐 '광주민주화운동' 보상에 대한 얘기를 비치기는 했지만…. 왜 그런 용어를 사용했는지 모호해지는 마음 가운데서도, 그가 이념적인 얘기를 하지 않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이용원 대전지방보훈처장은 축사를 하면서 "중국에서도 '환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환갑이라는 말을 쓰는데, 저는 환갑이라는 것이 '인생은 60부터'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매우 뜻 있고, 고귀한 말로 여깁니다. 그런 고귀한 뜻을 지닌 '환갑'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돌아올 때 태안군지회 강희범 회장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처음 '원호청'이 만들어졌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보훈'의 규모가 대폭 확대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차관급이었던 국가보훈처장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장관급으로 격상되었음을 상기했다.

 

과거 '전국분재연합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일주일에 이삼일은 서울에서 생활했던 태안 '신일조경' 신흥수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함께 하고 기념촬영도 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할 때 육군병장 시절의 노무현, '노 병장' 얘기도 들었음을 상기하면서….

 

태안군 보훈회관 앞에서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강희범 태안군지회장, 동갑내기 신흥수 회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의외로 폭넓게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어서 미더움과 고마움이 컸다,
태안군 보훈회관 앞에서대한민국상이군경회 충남지부의 '환갑회원 축하잔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강희범 태안군지회장, 동갑내기 신흥수 회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의외로 폭넓게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어서 미더움과 고마움이 컸다, ⓒ 지요하

 

그런 얘기가 나온 까닭에 국민의 '병역의무'에 관한 얘기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명박 현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정부 고위 관료들 가운데 국방부장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들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나라당의 주요 당직자와 국회의원 다수도….

 

또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방 부대를 시찰할 때 소총을 들고 개머리판 끄트머리를 얼굴 광대뼈 부위에 대고 사격 시늉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이야기도…. 군대 경험이 없어 일찍이 총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미리 연습이라도 한번 해보든가, 총 쏘는 법을 모르거든 아예 들지나 말 것을….

 

모두 어처구니없어 했다. 모욕감을 느낀다는 말도 나왔다. 군대에 가서 전쟁을 치르고 부상까지 당한 우리네 상이군경들의 처지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무'가 지워져 있는 나라에서 군대를 가지 않고도 버젓이 대통령도 하고 국무총리도 하고 장관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모멸감을 갖게 된다는 말이 팔순 노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의미심장하면서도 더욱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아무튼 상이군인 신분인 덕에 상이군경들의 환갑잔치에 참여하여, 또 가며 오며 각별한 감회들을 얻은 것은, 올해 10월 22일을 내게 매우 '보람 있는 날'로 만들어주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국가보훈처#환갑회원위안잔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