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두차례 연재에 걸쳐 소개했던 10.28 건대항쟁. 어느덧 그날이 돌아왔다. 2009년 달력도 제 날을 비켜가는 일 없이 스물세번째 10월 28일을 가리킨다. 역사의 중심에서 단 한번도 재조명되지 못한 사건이지만, 1986년 10.28건대항쟁이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어 대한민국 민주화에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재차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백기완 함석헌씨도 함께 했던 진실규명 노력건대항쟁에 대한 검찰중간수사 발표 후 애학투련 대학생들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철저하게 빨갱이 낙인이 찍혀 있었다. 전두환 독재 아래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대학생들이 모두 그랬듯 당시 산업대(현 경성대) 대학생이던 진성일씨는 사건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1986년 11월 5일 오후 12시, 산업대(현 경성대)에서 진성일씨는 "건국대 농성사건 해명 및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진성일 열사 분신사건에 대해서는 차후 연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1986년 11월 3일,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은 전두환 정권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통련은 국민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용공사건 조작의 주체인 전두환 정권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우리는 광주 사태가 끝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국민들의 의문을 풀지 못함을 보면서 하루 속히 건국대 사태의 진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 민통련은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주시하며 모든 현상의 이면에 군사독재의 장기집권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한다. 이번 건국대 사태도 바로 이 음모의 관철을 위한 발악, 작태라 규정하며 국민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다음날인 11월 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건국대 사태 진상조사 및 대책위원회 구성을 발표한다.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은 현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박형규 목사이다.
같은날 <고문 및 용공조작저지 공동대책위원회>도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 성명의 발의자에는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정치인과 함석헌, 백기완과 같은 재야 민주화운동가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고문 및 용공조작저지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최근 現정권이 이 땅의 광범위한 민주인사, 민주화운동을 도매금으로 '좌경·용공'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던 차였다. 건국대에서 있은 대학생연합집회를 맞아 지난 10월 31일 경찰이 마치 군사작전을 벌이듯이 1500여 명의 학생들을 전원연행, 1200여 명의 이상을 구속시키는 사태를 맞아서는 우려의 차원을 넘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성명에는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첫째는 10.28 건대항쟁의 발생 이유가 '고의적 점거농성'이 아니라 '강압적 강제진압'으로 촉발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애학투련의 주장 본질에 관한 것으로써 다음과 같다.
"이 날 학생들의 주된 주장은 현 군사독재의 장기집권음모저지 및 민주적 개헌을 통한 국민의 제 권리 쟁취, 나아가 이를 위한 범애국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의 호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당국은 학생들의 "비자발적인" 농성사태 첫 날부터 "전원연행", "전원구속" 방침을 대대적으로 발표했고 현 정권의 "보도지침"의 포로가 된 제도언론들은 학생들의 부분적 주장만을 대서특필하면서 농성학생 전부를 공산주의자로 여론재판하였다."셋째는 학생운동 진영의 강경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킨 독재정권에 기인한다는 점. 넷째는 음식, 수도, 전기를 끊은 비인도적 처사에도 학교 내 기물을 파손한 경찰에 대한 비판과 대학생들의 시민의식에 대한 평가. 다섯째는 화상, 타박상 등 수십 명의 부상자를 낳은 강경 진압을 문제삼았다. 여섯째는 연행된 학생들의 기본권 보장. 일곱째는 용공조작 규탄과 군사독재의 장기집권 종식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한다. (성명서 전문은 연재 게시판을 통해 게재하도록 하겠다.)
11월 5일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건국대 사태 진상조사단을 발족하였다.
이후 재판부는 대학생들이 문고부가 허가한 출판저서를 읽은 것을 국가보안법 위반죄, 건대운동장으로 간 것을 집시법 위반죄, 최루탄을 피해 건물 내로 진입한 것을 폭력죄, 진압 과정에서의 저항을 상해죄로 적용했다. 부당한 재판 후인 1987년 1월 21일, 전국 구속자 가족 협의회, 건대 구속자 가족 협의회, 민주가족협의회는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한다. 성명서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 살인재판 중단하고 400명을 석방하라! * 건대사건 조작이나 국민 앞에 사과하라. * 고문과 진압에서 피해된 학생은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 조작된 사건으로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자유시민과 학생전원을 즉각 석방하라. *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 * 참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라!이와같은 민주화세력의 요구에도 전두환 독재는 꿈쩍도 않았다. 단 사법부가 나름의 선처를 내려 100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는 기소유예,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동자로 분류된 90명은 실형을 살았고 23명은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었다. 무엇보다 애학투련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사실과 관련해 정부와 언론사는 아무런 경질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다시 깨어난 건대항쟁1987년 6월 항쟁의 성공은 민주화의 시작이었다. 국민의 염원이었던 직선제를 성취하고 4년이 흐른 1991년, 건국대학교 교내에 10.28 민주광장이 세워졌다. 건국대학교 민주동문회인 청년건대와 총학생회의 노력으로 이곳에 10.28 건대항쟁 기림비와 10.28 건대항쟁 기림상도 건립된다. 10.28 공원은 캠퍼스 한켠에서 10.28 건대항쟁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기림상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하나된 우리의 땅새봄을 향해몰아치는 시월 서리 동지애로 녹이며짙은 어둠을온몸으로 태워 밝힌장안벌 항쟁예순 여섯시간 오십분아! 그날반역의 언 땅 위로 고고히 솟아겨레 갈길 외치던 장안벌 함성뜨겁게 일렁이던 애국의 숨결역사의 고갱이로 보듬어 나아가고자여기 그날의 핏빛 외침을 심는다. - 통일염원 44년 10월 28일
이후 10.28 건대항쟁 기념사업회가 발족된다. 2006년에는 건대항쟁 기념사업회, 민주동문회 청년건대와 건국대학교 총학생회가 10.28 20주년을 맞아 항쟁의 재평가를 위한 기림식을 주최한다. 2006년 10월28일은 기림식 1부로써 10.28 동지들 만남 및 투쟁현장 방문이 있었고, 2부는 기림 행사와 문화공연으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당시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이었던 함세웅 신부의 축사 전문이다.
건대항쟁 20돌을 기억하며 |
우리의 현대사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민족정신을 지켜낸 청년학생들과 지사들의 희생으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독재정권의 억압을 뚫고 솟아올랐던 20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의 함성도, 자신을 버리고 정의를 선택했던 청년학생들의 의로운 희생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온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민주열사들의 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한 숭고한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두터운 장막을 비수처럼 뚫어버린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과 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민족·민주열사, 동지들의 피와 땀을 통해 발전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날로 심해지는 사회적 양극화 문제와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부족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모순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냉전이 끝난 후 동아시아에서의 평화구축은 국제사회의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열망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우리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북일․북미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고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우리 민족의 숙원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가꾸어 온 반전평화운동의 싹마저도 고사시켜 버릴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제정세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우리가 이루어 온 민주화운동의 결실들까지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지속적인 헌신을 우리에게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라 아니라 끝없는 진행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도전과 성취를 국민의 자부심으로 승화시켜 더욱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민주화운동의 참된 가치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민족 민주 운동의 선배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서로 이끌고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0월 2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 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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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09년 10월 31일에는 건대항쟁 23주년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부대행사로 10.28 건대항쟁 사진전이 있으며 본행사에는 민주화 계승사업회의 축사와 건국대 출신인 민중가요패 우리나라 이광석씨의 기념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행사에는 건국대학교 학생, 건국대학교 민주 동문회, 10.28 건대항쟁 당사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건대항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986년 10.28 건대항쟁, 2009년 10.28 재보선24년 전, 민주화를 향한 애학투련 대학생들의 외침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부서지고 무너졌다. 그 아우성은 빨갱이라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당시 무고한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1288명이라는 사상 최고의 연행, 구속자를 기록했으며 80여 명의 대학생들이 공권력에 의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국가보안법이라는 썩은 칼에 찍혀야 했다. 그러나 사건의 가해자는 사과나 유감, 보상은커녕 자신의 호를 딴 일해공원을 남겨 스스로를 치켜세는 것에 혈안되어 있다. 국민을 죽이고, 국민을 빨갱이로 몰았던 독재자가 자신의 이름을 영웅으로써 후대에 전하려 한다.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그들과 야합한 민주계는 3당합당을 성사시켰고, 2009년 그들은 권력의 중심으로 부활했다. 애학투련 대학생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오늘, 공교롭게도 재보궐선거가 있는 날이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5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2개의 지역구에서의 승리, 1개의 선거구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 한다. 누구를 뽑아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24년 전 오늘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날 서릿발 추위 속에서 대학생들이 외쳤던, 빨갱이로 매도되어가면서도 울부짖었던 민주주의의 절규를 잊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민주와 반민주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완성 민주주의를 완성으로 이룩할 수 있는 사람과 정당을 선출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