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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남매를 키우고 있는 내가 하루 일과 중 가장 고민스러운 건 바로 반찬 메뉴를 정하는 거다. 어린 시절 밥과 김치만 먹고도 175cm의 '장신'으로 컸다고 자랑하는 남편의 주장처럼 우리집 두 녀석들도 밥과 김치만으로 한 끼를 때우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집 두 아이들은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허기짐을 호소하며 엄마를 괴롭히는 '골수' 육식파이다. 워낙 활동적이고 집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의 아이들은 '전기세 나간다'는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냉장고를 몇 분 간격으로 열었다 닫았다 한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에 찐 고구마를 아무리 먹어도 조금만 또 움직이고 장난 치고 하면 늘 허기져 하는 아이들. 그러니 먹을 때 빨리 포만감을 주는 고기 반찬은 우리집 단골 메뉴로 식탁에 오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육식 위주의 식단은 올바른 식습관이 아님을 예감하고 있다.

골수 육식파 아이들의 뱃살, 고민이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키 153cm 정도에 46kg이고, 초등학교 딸아이는 키 150cm에 역시 44kg 정도 나간다(소아과 의사가 말하길, 이 정도면 비만위험군에 속한단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갈수록 솟아오르는 두 아이들의 아랫배. 나의 불길한 예감이 점점 현실화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 학교급식 메뉴만 보아도 그렇다. 돈가스나 닭바베큐구이, 너겟, 소시지볶음 같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은 금세 동이 나고 나물류 같은 채식반찬은 급식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별로 줄지 않는다. 아이들이 1학년 때 학교급식 봉사를 가게 되면 자주 경험했던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은 어쩔 수 없이 줄 수밖에 없는 반찬들이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은 달콤하고 기름진 맛깔나는 반찬들. 고기류의 반찬이나 인스턴트를 적당히 가미한 반찬들이다. 가끔 우리집에 놀러오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밥을 차려주다 보면 또 한번 같은 기분이 든다(아니 어쩌면 우리 집 녀석들이 가장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반찬을 결정하는데 있어 나의 가장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육식을 줄이고 육식만큼 포만감을 주는 '채식반찬'을 만드는가에 있다. 바람직한  먹거리로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보겠다는 엄마로서의 욕심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육식 선호로 대규모 가축사육이 지구 환경오염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도 이미 익숙하게 들어본 터라, 초보 환경론자의 비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동네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고기보다 비싼 연근을 사들고 오다

만년 초보요리사의 연근튀김과 연근완자전 딸아이의 '독촉'과 아들의 까딸스런 편식으로 인해 탄생한 연근튀김과 연근완자전입니다
▲ 만년 초보요리사의 연근튀김과 연근완자전 딸아이의 '독촉'과 아들의 까딸스런 편식으로 인해 탄생한 연근튀김과 연근완자전입니다
ⓒ 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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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래시장 초입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바구니들에 담긴 초록 야채들 가운데 유달리 내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몸집도 투박하고 쑥 삐져나온 갈색 나무토막 같은 바로 '연근'이다.

그날 아침 갑자기 연근튀김이 먹고 싶다며 학교를 나서는 딸의 '당부'도 있었다. 평소 삽겹살, 차돌박이 등 고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고, 먹기를 즐기는 고기 마니아인 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채소 반찬은 연근튀김. 순전히 학교 급식 메뉴로 나오는 덕분이다. 언젠가 학교급식에서 나온 연근튀김의 아삭함에 반했다는 딸의 말을 듣고, 겁없이 '도전하게 된' 요리가 바로 연근튀김이다. 

반가운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25~35cm 정도 크기의 연근 세 개가 5천 원! 야채 한 바구니 가격이 2천 원이면 족하다고 여겼던 나의 장바구니 경제관념으로서는 좀 망설어지는 가격이었다. 시장에 좀 더 들어가면 만나는 단골 정육점에서 4500원 정도만 주면 네 식구가 푸짐하게 먹을 제육볶음용 돼지고기를 살 수도 있는 가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명한 주부란 가족의 영양도 책임지고 아울러 지구 환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똑똑한 먹거리를 선택하는 사람이 아닐까. 비장한 사명감이 다시 한 번 떠올라 푸짐한 제육볶음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흙이 잔뜩 묻은 연근 세 개를 소중히 장바구니에 넣고 돌아왔다.

"먹어봐. 고기보다 더 맛있어"

주부경력 12년차인데도 매번 같은 맛이 안 나는 만년 초보 요리사인 내겐 인터넷을 통한 요리법 사전 답사가 필수이다. 먼저 연근 껍질을 벗겨내고 적당히 썰어서 식초 한 방울을 넣은 물에 담갔다. 그 다음엔 연근을 데쳐내라고 하는데,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우리 딸아이는 좀 딱딱하게 씹히는 연근맛을 좋아해서 데치지 않는다. 원통형으로 썰어낸 연근에 소금간을 약간 하고, 얼음물로 풀은 밀가루 반죽을 얼른 발라 빠르게 튀겨낸다. 순전히 초보 요리사 마음대로이다.

고소한 연근 튀김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자 제일 먼저 아들 녀석이 다가와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고기가 아니네" 하고 실망한 듯 돌아선다. 이어 곧 수북히 올려진 연근 튀김 한 접시가 놓이자 남편과 딸은 서로 미리 먹지 말라고 눈을 흘기며 주의를 주면서도 서로 안 보는 사이 몰래 한 개씩 집어 먹고 있다.

"먹어봐. 고기보다 더 맛있어" 하고 내밀어도 여전히 고기반찬이 아니라고 툴툴거리는 아들 녀석을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연근 한 쪽 면에 만두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다짐육 고기를 붙여서 튀겨내어 '연근완자전'을 만들어 주었다.

기초적인 요리도 매번 쩔쩔매는 만년 초보 요리사인 엄마를 늘 바쁘게 하는 입맛 까탈스런 아들 녀석이 오늘따라 더욱 얄밉다. 그나마 아들의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니 그럭저럭 새로 탄생한 연근완자전은 합격인 것 같다.

몸은 좀 귀찮아도, 부지런히 먹이련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 시골에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청국장으로 끓인 찌개와 무청 김치, 연근 튀김과 연근 완자전으로 '무사히' 저녁 식사를 마쳤다. 딸아이의 전용 반찬 그릇에 거의 다 비워진 연근 튀김을 보니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연근의 효능을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음이 더욱 흡족해진다. 연꽃의 땅속줄기이며 연우라고도 불리는 연근은 사실 지금같은 가을이 제철이라고 한다. 여름 내내 잎으로 몰렸던 기운이 뿌리로 내려와 영글고 맛이 꽉 차게 되기 때문이란다.

비타민 B와 비타민 C가 많고 연근을 썰면 가늘고 끈적한 실같은 것이 바로 뮤신 성분인데 세포의 주성분인 단백질의 소화를 촉진하고 체내에서 효과적으로 쓰인다. 또 뮤신에는 콜레스테롤 저하 작용과 위벽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평소 열이 많고 가끔 코피를 잘 흘리는 딸에게 지혈작용을 해주는 연근의 효능을 안 이상 좀 귀찮더라도 부지런히 연근튀김을 해 줄 작정이다. 여러분도 오늘 저녁 필자처럼 '큰 맘 먹고' 연근을 사다가 요리해서 고기반찬보다 더 푸짐하고 뿌듯한 저녁 만찬을 즐겨보시길. 그리하여 따뜻한 가을 햇살로 영근 뿌리 채소의 영양을 듬뿍 섭취하시길 바란다.
첨부파일
S5030048.JPG

덧붙이는 글 | <광진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연근튀김#연근#채식반찬#육식대체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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