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 저 단풍 좀 봐? 안개만 걷히면 정말 멋진 산행이 될 것 같구먼"
"지금 가야산 단풍이 절정인가 봐, 입구에서부터 이런 멋진 단풍을 만나다니"
일행들이 너도나도 감탄사를 터뜨린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만난 단풍빛깔이 정말 고왔다. 10월 27일 화요산행은 어느 산악회와 함께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 경계지역에 있는 가야산을 찾았다. 산행을 시작한 곳은 백운동이었다.
백운동 주차장에 멈춘 버스에서 내려 등산로로 나서자 우리들을 맞아준 것은 다름 아닌 새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이었다. 길가에 서있는 단풍나무들은 새빨간 물감이라도 뿌린 듯 화려한 모습으로 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 기대감을 듬뿍 안겨주고 있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희부옇게 흐렸던 안개는 가야산에 도착했지만 걷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일행 30여명은 온 산을 뒤덮은 단풍을 기대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입구는 완만한 골짜기 길이었다. 조금 걸어 올라가자 허술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단풍을 촬영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표정으로 맞아준 단풍
사진작가들이 가야산의 단풍을 찾아왔나 싶어 물으니 눈만 동그랗게 뜬다. 그때서야 그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인 것을 알아차리고 중국인들이냐고 물으니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50여명의 홍콩인 관광객들은 다양한 연령대로 옷차림이 산에서 흔히 만나는 우리 등산객들과는 전혀 달랐다.
홍콩에서 왔으면 가을을 곱게 물들인 단풍이 신기하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에 몇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짧은 영어나마 통하는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도 그들은 손짓과 표정으로 가야산의 단풍이 곱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골짜기를 벗어나자 곧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길가에 서있는 나뭇잎들은 대부분 고운 빛깔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단풍나무는 새빨갰지만 참나무와 떡갈나무 같은 잡목들은 누런빛으로 물들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길은 그리 험한 편이 아니었다.
기온도 그리 높지 않고 살랑살랑 부는 사람이 시원하여 오르막길인데도 땀을 많이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첫 번째 능선에 올랐다. 왼편 능선 끝으로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는 모습이 희부연 안개 속에 신비롭다.
오른편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날카로운 바위봉우리들이 위압적인 풍경이다. 우리가 올라야할 가야산 정상은 오른편쪽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바위능선과 봉우리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능선과 봉우리들 만만치 않겠는 걸, 조심 해야겠어"
누군가 바위봉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주의를 준다.
"걱정할 것 없어요. 오를 수 있는 길은 있게 마련이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안심을 시킨다.
멀리서 바라보기에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아보이던 능선과 봉우리들은 그러나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가파른 바위절벽 길에는 곳곳에 철제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위험하지도 않았다. 다만 인공계단을 싫어하는 등산객들은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우와! 저 아래 산자락 좀 봐요? 온통 단풍으로 새빨갛구먼."
"정말 대단하네요, 산이 온통 불바다예요,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안개 때문에 아쉽네요."
철제 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본 풍경은 그야말로 온통 불바다였다. 희부연 안개 속에서도 산자락이 온통 새빨간 빛깔이 정말 대단한 장관이었다. 새빨간 단풍 빛깔이 짙어 희부연 안개까지 불그스레하게 물들이고 있는 풍경이 여간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등산객들은 너도나도 오르던 길을 뒤돌아보며 온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철제 계단과 나무계단 그리고 밧줄을 붙잡으며 오르노라니 이번에는 그런 시설물이 없는 곳이 나타났다. 상당히 가파른 바윗길이었다.
가파른 바윗길에서 등산객들의 손잡이가 되어주는 고마운 소나무
"소나무야 고맙다. 네가 있어서 이곳엔 계단도 밧줄도 만들어 놓지 않았구나."
"소나무야가 뭐야? 소나무님이지. 저 두 그루 소나무들 나이가 우리들보다 훨씬 많을 텐데"
"어, 그런가? 내가 잘못했네, 소나무님 고맙습니다. 죽어서도 인간들을 이렇게 지켜주셔서"
그런데 그 가파른 바윗길 중간에 두 그루의 죽은 소나무가 서 있어서 등산객들의 든든한 손잡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일행들은 두 그루의 죽은 소나무들이 나이가 많을 것이라 짐작하고 소나무님이라 부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올랐다.
높은 산 바윗길에서 수십 년 아니, 그 이상을 살았을 소나무 두 그루는 수많은 등산객들의 손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소나무는 뿌리가 바위 사이에 견고하여 죽은 후에도 줄기가 반질거릴 정도로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손잡이가 되어주고, 미끄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어 한편 미안하고 고마운 모습이었다.
날카로워 보였던 봉우리가 바로 칠불봉이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정상인 우두봉이 능선을 타고 저만큼 높직하게 우뚝 서있다. 그런데 우두봉으로 가는 길 바위능선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뾰족한 바위절벽이다.
칠불봉에서 잠깐 땀을 들이고 정상을 향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능선을 어찌 넘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길은 어디에나 열려 있었다. 조심조심 아기자기하고 스릴 넘치는 바위능선 길을 지나자 저 앞에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에 오르는 길도 역시 철제 계단 길이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니 정상은 제법 넓은 편이다. 우두봉(상왕봉) 1430미터, 라고 쓴 정상 표지석 뒤로 소머리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가 비스듬하게 솟아 있다.
가야산 정상은 그 생김새가 소머리처럼 생겼대서 우두봉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왕봉이라고도 부른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중향산, 지달산, 설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가야국이 있었고,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에 '가야의 산'이라는 뜻으로 부른 것이라고 전해진다.
내리막 계단에서 뒷걸음이나 옆걸음이 무릎관절 보호에 좋다? 위험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 가까이 바라보이는 수많은 봉우리와 산줄기들은 두리봉과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었다. 합천군 쪽의 부드러운 산세와 성주군 쪽의 가파르고 험한 산들을 넘어 일망무제로 펼쳐진 전망이 일품이었다.
봉우리 아래로 내려와 억새밭 공터에서 간단한 간식을 들고 하산길로 나섰다. 하산지점은 해인사였다. 내리막길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크고 넓은 바위와 급경사인 바위너덜길은 상당히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등산사고는 내리막길에서 발생한다.
"저처럼 이렇게 뒤로 내려가 보세요, 아니면 옆으로 내려가시던가.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 무릎관절을 보호하는데 아주 좋답니다."
"산귀신이라던 산악회장님도 요즘 무릎 아파서 고생한대요, 그런데 무릎에 가장 큰 충격을 주는 내리막 계단을 이렇게 뒷걸음이나 옆 걸음으로 내려가면 충격을 완화해주기 때문에 아주 좋은 게 사실이래요."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산악회 여성회원이 우리 일행들에게 권하자 다른 등산객도 맞장구를 친다. 그녀는 내리막 계단을 손으로 난간을 붙잡으며 뒷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보기에는 몹시 불편한 자세였는데 그녀는 그렇게 내려가는 것이 무릎관절에 충격을 덜 주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었다.
"무릎에 충격을 덜 주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위험한 것 같아요, 아차,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 염려가 있잖아요?"
일행들이 그녀처럼 뒷걸음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성회원은 내리막 계단을 만날 때마다 같은 자세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자! 여기서부턴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종아리에서 쥐가 난다며 힘들어 하던 등산객이 즐거운 표정으로 외친다. 길은 어느새 평탄한 흙길로 변해 있었다.
"저 아래 해인사가 바라보입니다."
골짜기 아래쪽으로 건물 지붕이 언뜻 보이는 듯 했다. 골짜기 이곳저곳엔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화려한 모습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편으로 개울을 건넌 넓은 마당에 돌탑 하나 우뚝 선 모습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용탑선원 아름다운 단풍과 조화로운 경치에 취하다
용탑선원이었다. 그런데 마당에 기막힌 절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당 가운데 서있는 돌탑 양쪽엔 동물상이 서있고, 그 뒤 옆으로 서있는 새빨간 단풍나무 두 그루, 그리고 돌탑 꼭대기 뒤로 보이는 단풍 숲, 이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카메라에 담아올 수밖에
용탑선원 건물 뒤로 이어진 산자락의 단풍도 곱고 예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용탑선원을 둘러보고 조금 더 내려오자 해인사 일주문이다. 일주문 근처에는 백운동 입구에서 만났던 홍콩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단풍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으로 너무나 유명한 해인사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일주문 앞을 지나쳐 내려오는 길가에 서있는 비석거리와 사리탑 주변, 그리고 홍류동 골짜기의 단풍도 절정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가에 서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노랗게 물든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가을의 정취 중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길바닥을 뒤덮고 흩날리는 은행낙엽 풍경을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해발 1430미터인 바위산, 가야산은 다섯 시간의 만만치 않은 산행이었다. 그렇지만 곱게 물든 단풍에 취해 오르고 내려온 등산길이었는데, 산을 내려와 홍류동 골짜기와 도로변 가로수 단풍까지 아름다워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에 젖은 멋진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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