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에 포천으로 발령받은 신규 교사다. 원래 집이 포천이 아니라서,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자취를 해온 터라 나름대로 베테랑이라 생각했지만, 포천 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예전 집 주변에서는 주로 대형 마트를 이용해 왔지만, 이곳 자취방에서 대형 마트에 가려면 40분 이상이 걸렸다. 아직도 차멀미로 고생하는 나로서는 망설여지는 긴 여정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포천 오일장. 그런데 웬 걸? 대형 마트의 차선으로 가게 된 포천 오일장이 이제는 나의 it-shop(자주 애용하는 가게)이 되었다.
초입부터 난관이다. 버스를 타고 왔으니 상관 없지만 차를 끌고 오면 주차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차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 고객은 주로 버스를 타고 온다. 내가 갔을 때는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빠진 상태이지만 다리 위에서 얼핏 보아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물건도 다 그렇지만, 어류도 상당히 싸다. 특히 장이 마칠 때가 되면 해산물의 경우 흥정이 쉬워진다. '떨이요, 떨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2마리 3000원 하던 생물오징어를 3마리 3000원에 구입했다.
즉석 도너츠 맛도 일품이다. 특히 '두개 더 도너츠'에서 파는 엄청난 크기의 꽈배기는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꽈배기 중에 가장 맛이 있다.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가 사서 먹을 때도 있다. 장을 돌면서 허기를 달래는 필수 코스이다.
포천 오일장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다. 대형 마트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카트를 끄는 남성들과 대조된다. 바로 주점 때문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비싸게 먹을 수 있는 폭립을 소주 안주로 구워 먹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안주의 종류도 해산물, 육류, 육류의 내장까지 없는 것이 없다. 어린 아이들은 저마다 옆 가게에서 파는 즉석 과자를 한 봉지씩 들고 우물거린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족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유익한 장소이다.
시장에서 파는 옷을 사입어 본 적이 별로 없지만 포천 시장의 옷은 예외이다. 새옷 못지 않은 저렴한 가격의 중고 의류들도 꼭 들러 본다. 뒤적뒤적하다 보면 내 몸과 취향에 꼭 맞는 옷을 발견하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 좋은 소재의 자켓도 3000원에 구입할 수 있고 2벌을 사면 5000원이다. 새 옷도 지하철 지하상가의 최신유행 옷만큼이나 다양하다. 1만원이면 질 좋은 두꺼운 겨울옷을 구입할 수 있다. 바느질도 튼튼하니 백화점 옷 부럽지 않다.
사실 내가 버스비 왕복 1800원 들여가며 시장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뻥튀기에 있다. 슈퍼에서 파는 설탕덩어리 과자를 먹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아직은 바스락거리는 과자가 먹고 싶은 나이인지라 과자 대용으로 먹는 뻥튀기이다. 그런데 이 뻥튀기가 과자의 차선치고 상당히 맛이 좋다. 과자와 뻥튀기가 있어도 뻥튀기를 사먹을 정도이다. 특히 강원도 찰옥수수로 만든 뻥튀기 한 봉지는 끌어안고 5일 동안 배터지게 먹기에 딱 좋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달콤하고 쫀득한 뻥튀기의 향이 벌써부터 그립다.
이 뻥튀기가게의 사장님은 뻥튀기에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실험정신도 뛰어나다. 대형마크에서도 양파맛 뻥튀기를 먹어봤지만 시중에서 파는 양파과자의 향만 날 뿐 정말 양파가 들어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어렵다. 그런데 이 뻥튀기 가게의 양파 뻥튀기는 정말 양파 말린 것을 함께 튀긴다고 한다. 양파 뻥튀기(아래사진)뿐만 아니라 고구마 뻥투기, 호박고구마 뻥튀기도 있는데 은은한 향에 고소하여 어른이 먹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게다가 대형마트 부럽지 않은 넉넉한 시식 코너가 개장 내내 운영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시식 바구니에는 이 뻥튀기 코너만의 자랑스러운 상품인 양파, 고구마, 호박 뻥튀기가 가득 담겨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 칭찬할 때 사탕이나 초콜릿을 이용하는 선생님이 많으신데 나는 꼭 뻥튀기를 애용한다. 달지 않아 좋고 한 주먹씩 주어도 넉넉하고 많은 아이들에게 줄 수 있으니 일석삼조이다.
이밖에도 대형마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잡동사니 가게, 칼가는 가게, 애완동물 가게까지 없는 것이 없다. 굳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일상처럼 들러 눈요기 쇼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애완동물 가게의 토끼장 앞에 진을 치고 있고 아저씨들은 일상에 지친 피로를 포천천 물내음을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가게에 부담이 적은 저렴한 물건은 아주머니들의 양손을 무겁게 하니 온 가족 즐거운 나들이로 손색이 없다.
중간 과정이 줄어들어 저렴한 가격.
상인들이 직접 이름 걸고 하는 신뢰 거래.
사람들이 대형 마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값이 저렴하고 질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천 오일장에 한 번 온다면 대형 마트 주변의 사람들도 장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장이 설 때마다 오는 상인들이 정해져 있다. 심지어 장막을 세우는 위치까지 똑같아서 마치 지붕없는 대형마트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질에 있어서 상인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 수밖에 없다. 가격도 마찬가지이다. 직거래인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업 과정이 단순하여 가격이 저렴하다. 또 채소의 경우 푸드마일(원산지와 소비지 간의 거리)이 짧아 소비자로서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시장 옆에 대형 마트가 생긴다면 시장 상인들이 아니라 소비자로서 강하게 반대할 만큼 나는 이 포천시장의 톡톡한 수혜자이다.
포천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시장이 많이 있다. 다른 시장의 모습들도 다르지 않다. 습관처럼 대형마트의 물건을 신뢰하고 구입하지만 여러 차레 언론에 오르내리는 대형마트의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그들에 대한 신뢰가 우리의 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먹거리와 판매자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다. 불신은 최초 판매자와 최종 소비자 사이가 멀어 질수록 깊어진다. 지역마다 생활협동조합(생협) 등의 다양한 대안들을 준비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불신만 있을 뿐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대안으로 지역 시장의 소비자가 될 것을 조심스레 권해 본다. 지역 판매자와 정과 신뢰를 쌓으면서 나만의 생협을 구성해 보는 것도 불신의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 여겨진다. 나의 단골가게는 불신의 시대에 내가 마련한 나의 작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