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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이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올리는 영산재 중 바라춤을 추는 장면 -자료사진-
죽은이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올리는 영산재 중 바라춤을 추는 장면 -자료사진- ⓒ 임윤수

새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는 것만을 구분 할 뿐 종이에 써진 글이 어떤 내용인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경험합니다.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학창시절 영어시험문제가 그랬었고, 가전제품을 샀을 때 포장지 속에서 나오는 사용설명서 중 전혀 배운 적이 없는 글씨로 써져 있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어떤 내용이나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설명이 분명하게 들어있겠지만 읽지 못하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그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형식이나 의미조차도 무시하거나 모르게 됩니다.

살아가다 보면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귀를 막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인간의 영역이나 능력이 거기까지라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이 알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조건 부정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가끔은 있습니다.  

듣지 못하는 소리, 보지 못하는 장면, 라디오나 TV 통해 듣고 볼 수 있어

혼자 걷는 걸 참 좋아합니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참을 혼자 걷다보면 가끔은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형라디오를 꺼내 방송을 들으며 걷습니다. 그럴 때마다 귀를 열고 있었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합니다.

  ‘인생과 죽음’ 그리고 ‘사십구재’에 담긴 모든 의미를 라디오처럼 들을 수 있고 TV처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혜안이며 수단이 될 수 있는 책, <사십구재> (효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 11. 5 / 값 7천7백 원)
‘인생과 죽음’ 그리고 ‘사십구재’에 담긴 모든 의미를 라디오처럼 들을 수 있고 TV처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혜안이며 수단이 될 수 있는 책, <사십구재> (효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 11. 5 / 값 7천7백 원) ⓒ 임윤수
인간인 내가 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 라디오파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라디오파는 존재했고, 귀도 막지 않았지만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방송내용을 라디오라는 수단을 통하니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라디오 소리만이 그런 게 아니라 TV방송도 같습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 오락프로그램의 한 순간이 담긴 TV파가 눈앞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TV 수상기라고 하는 수단을 통하니 볼 수 있습니다.

리시버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나 수상기 화면을 통해 보이는 그 장면이 담긴 라디오파나 TV파는 존재하는 걸까요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존재했다면 왜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다면 라디오나 TV를 켰을 때 어떻게 소리가 나오고 화면이 나왔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자명하고도 간단합니다. 라디오파와 TV파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들을 수 있는 영역 밖의 파로 존재했기에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듣지 못하고,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올리는 사십구재는 허례허식

언제부터인가 '사십구재'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더니 이젠 시대의 유행어처럼 귀에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사십구재? 사람이 죽으면 49일째 되는 날 절에서 지내주는 제사쯤으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절엘 쫓아다니면서 사십구재 지내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사십구재를 올리는 스님들의 의식을 분명하게 두 눈으로 봤고, 독경소리도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보았던 의식은 사십구재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봤으니 그냥 몸짓으로 연출하는 의식만을 봤을 뿐이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다를 게 없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인 듯합니다.

늙지 않는 비법이 적혀있을지라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 한 낱 낙서에 지나지 않고,  죽지 않는 천하의 비법을 설명하고 있어도 알아듣지 못하면 이방인의 잔소리로 치부해 버릴 수 있듯이 사십구재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보거나 들었던 사십구재는 절에서 스님들이 격식을 갖춰 치르는 또 하나의 의식일 뿐이니 허례허식이며 절제된 무속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사십구재에 담긴 영혼의 주파수를 가청주파수로 전환해 주는 수단

현재 성남 봉국사의 주지이며 4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을 운수납자로 수행해 온 효림스님이 짓고 조계종출판사에서 펴낸 '사십구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채 치르는 사십구재에 담긴 영혼의 주파수를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라디오며, 사십구재에 담긴 불교적 의미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TV 수상기 같습니다.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인생과 죽음',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세속인의 영역에서는 라디오파나 TV파처럼 좀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사십구재에 담긴 의미가 소리로 들리고, 장면으로 또렷하게 보이게 해 주는 라디오며 TV수상기 같은 책입니다.

책의 저자인 효림스님은 화두를 던지듯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선승의 입장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십구재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달아 사십구재가 가지는 의미, 절차의식, 의식절차가 가지는 의미나 이유 등을 시시콜콜 하도록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슬방울이 수증기로 사라지는듯 하지만 비가 되어 다시 내려 얼음이 되고 이슬방울이 되며 윤회하듯 인생도 돌고돌 뿐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자료사진-
이슬방울이 수증기로 사라지는듯 하지만 비가 되어 다시 내려 얼음이 되고 이슬방울이 되며 윤회하듯 인생도 돌고돌 뿐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자료사진- ⓒ 임윤수

선승의 입장에서 한 답이며 설명이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장황하거나 난해하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십구재'의 의미만을 영혼의 주파수에서 가청주파수로 전환해 주는 게 아니라 설명에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세속인의 눈높이로 전환되어 있습니다.

'사십구재에 대한 질문'까지 부록으로 더해 놓았으니 사십구재에 대한 궁금증이라면 A에서부터 Z까지를 모두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며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방인에게야 새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인 난해한 책이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님이라면 그냥 읽기만 하면 인생과 죽음을 전제로 한 '사십구재'에 담긴 의미와 절차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며 깔끔하게 정리될 만큼 평이 한 수준으로 눈높이를 맞춘 설명입니다.

이래저래 경험하거나 접 할 수밖에 없는 사십구재, 영혼의 주파수에 맞춰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인생과 죽음' 그리고 '사십구재'에 담긴 모든 의미를 라디오처럼 들을 수 있고 TV처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혜안이며 수단으로 '사십구재'의 독서를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사십구재> (효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 11. 5 / 값 7천7백 원)



사십구재 - 떠난 이를 위해 수행의 마음을 내다

효림 스님 지음, 조계종출판사(2009)


#사십구재#효림#봉국사#조계종출판사#영혼의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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