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월이다. 아침에 밖을 보니 간밤에 내린 비로 가을은 멀리 달아난 느낌이다. 거리에는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가득 쌓여 있고, 나뭇가지는 앙상히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비온 후 펼쳐지는 거리의 가을빛은 아직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아름다운 단풍을 마음에 담아 볼까하여 집에서 멀지 않은 대청호주변으로 길을 나섰다. 대청호 주변에는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대청호 주변에 지어진 대통령 별장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휴양지로 사용하다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국민에게 개방된 곳이다.
청남대는 국민에게 개방된 이후로 하루에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청남대를 찾아 가려면 청원군 문의면에 차를 주차하고 이곳에서 청남대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야한다. 경부고속도로 청원 톨게이트에서 문의면 버스 정류장까지는 30여분이 소요된다. 문의면에 있는 넓은 청남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이정표를 따라 몇 분 걸으니 청남대로 가는 버스 매표소가 반긴다.
정류장주변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가을 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대청호가 가까이 있어 은빛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는 청남대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있다.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청남대로 연신 출발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행렬은 줄지 않고 그대로다. 관람객들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버스정류장에서 나와 대청호 주변으로 나있는 산책로로 걸어가 보았다. 울긋불긋한 산길, 그리고 길에 수북이 쌓여 있는 나뭇잎이 가을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게 한다. 더욱이 산길에서 대청호 아래로 펼쳐진 갈대밭은 대청호의 은빛 물결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구름 속에 갇혀 있던 해님이 이따금씩 나타나 갈대밭을 비출 때면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대청호의 아름다운 가을을 뒤로 하고 청남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대청호를 끼고 20여 분 달리자 버스는 숲이 울창한 청남대에 도착한다. 청남대는 이미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청남대 본관 앞 넓은 잔디 광장에는 여러 형태의 가을국화가 전시되고 있다. 원래 이곳은 대통령이 타고 온 헬기가 앉는 헬기장이었으나 국민에게 개방된 이후로는 넓은 잔디광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잔디 광장 아래로는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는 메타세콰이어 숲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이 호수에는 노란 은행나무가 호수에 물그림자를 드리우며 서있고,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음악 분수는 단풍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음악호수를 지나 산책로로 들어서면 대청호로 펼쳐진 갈대밭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편안한 산길을 열어준다. 산속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과 숲속의 아름다운 산색은 가을정취에 흠뻑 취하게 한다. 더욱이 오각정 옆에 서 있는 단풍나무는 더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청남대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청남대의 가을은 골프장 가는 길에서 절정을 이룬다. 골프장의 한 켠에 빨갛게 익은 감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고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새색시처럼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수줍게 웃고 있다. 특히 석양에 빛나는 갈대밭과 붉은 나뭇잎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는 숲길을 걸어가며 바라보는 대청호의 석양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어느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해가 저문다. 숲속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관람시간이 6시까지이므로 버스에 속히 승차하라는 안내 방송이다. 발길을 돌려 버스 정류장에 당도하니 사람들이 올 때처럼 길게 늘어 서 있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버스에 오르자 피곤이 밀려온다. 하품도 나오고 많이 걸은 탓인지 발가락도 아파온다. 가을도 잠을 자려는 듯 덩달아 하품을 한다. 청남대에서 멋진 가을도 만나고 역대 대통령들의 발자취도 만났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국민들에게 선물한 당신의 마음 또한 가을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