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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두봉(상왕봉) 정상을 향하여
우두봉(상왕봉) 정상을 향하여 ⓒ 김연옥

이름 그대로 '가야의 산'이란 뜻을 지닌 가야산(伽倻山, 1430m)은 경상남도 합천군과 경상북도 성주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을 낳았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가야산신(伽倻山神) 정견모주(正見母主)의 설화를 품고 있는 영산(靈山)이다.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봉(牛頭峰)으로, 또 불교에서 유래된 상왕봉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가야산 자락에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인 해인사(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가 자리 잡고 있다.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흔히 팔만대장경, 고려대장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대장경판(국보 제32호)을 소장하고 있어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사찰로 꼽히고 있다.

지난 1일, 나는 경남사계절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한 번 꼭 가고 싶었던 가야산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 7시 10분께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백운동주차장에서 내려 백운동탐방지원센터(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9시 10분께였다.

산악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흩뿌리기 시작해서 은근히 걱정했지만, 몇 차례 더 빗방울이 떨어지고는 아예 멎었다. 나는 백운암지(白雲庵址)를 거쳐 낙엽 깔린 길 따라 계속 걸어갔다. 가야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주변 경치들을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어 좋다. 더욱이 한 폭의 그윽한 동양화를 보는 듯 운치가 있고 멋스럽게 생긴 소나무들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그때마다 잘생긴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산객들은 신이 났다.

 계단을 올라서자 그윽한 동양화를 보는 듯한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를 맞았다.
계단을 올라서자 그윽한 동양화를 보는 듯한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를 맞았다. ⓒ 김연옥

 칠불봉(1433m)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칠불봉(1433m)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 김연옥

그날 산행 코스는 칠불봉 정상에 일단 오른 뒤에 거기서 0.2km 떨어진 상왕봉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칠불봉(七佛峯, 1433m)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계단이 많다. 칠불봉은 가야산의 주봉인 상왕봉보다 3m 정도 높은 산으로 가야국 김수로왕이 비로 삼았던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의 오빠인 장유화상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허황후는 배를 타고 가야에 와서 왕비가 되었는데, 김수로왕과의 사이에 열 명의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했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성(姓)을 따서 허(許)를 주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 칠불봉으로 들어와 3년 동안 수도한 후 도를 깨닫게 되었다 한다.

그러고 나서 지리산 칠불사(七佛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자리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서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한지 2년 만에 일곱 왕자 모두 생불(生佛)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칠불사는 이중구조의 온돌로 한번 불을 때면 상하 온돌과 벽면까지 한달 동안이나 따뜻했다는 아자방지(亞字房址,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이름난 절이다.

칠불봉 정상  
칠불봉 정상  ⓒ 김연옥

 칠불봉 정상서 바라본 우두봉(상왕봉)  모습이 특이한 생김새만큼이나 신비스럽다.
칠불봉 정상서 바라본 우두봉(상왕봉) 모습이 특이한 생김새만큼이나 신비스럽다. ⓒ 김연옥

오전 11시 20분께 칠불봉 정상에 이르렀다. 칠불봉 정상에 서자 특이한 생김새만큼이나 신비스러운 상왕봉 정상이 어슴푸레 보였다. 산객들로 북적거려 나는 이내 칠불봉 정상에서 내려와 상왕봉 쪽으로 걸어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일행과 함께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손이 시릴 정도로 바람이 꽤 차가웠다. 하지만 산행 길에 여럿이 앉아서 점심을 먹는 시간은 참 즐겁다. 산을 좋아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한자리에 모여 밥을 나누어 먹고 자연스레 이야기도 주고받게 된다. 그날 요리 솜씨 좋은 산악회 여자 총무가 온갖 나물을 넣은 밥을 자작하게 끓인 된장에 비벼서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는데 산 위에서 맛보는 비빔밥 맛이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가야산(1430m) 정상  
가야산(1430m) 정상  ⓒ 김연옥

우두봉 정상서 바라다본 칠불봉 모습.  
우두봉 정상서 바라다본 칠불봉 모습.  ⓒ 김연옥

 우두봉을 뒤로하고 해인사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두봉을 뒤로하고 해인사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김연옥

상왕봉 정상에 오른 시간은 낮 12시 10분께. 사진 찍는 산객들로 북적대어 혼자서 해인사 쪽으로 곧장 하산하기 시작했다. 40분쯤 걸어 내려갔을까. 단풍으로 곱게 물든 정취 있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하산길에 해인사 홍제암(海印寺弘濟庵, 보물 제1300호)에 잠시 들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입적한 곳이다.

 해인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해인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 김연옥

홍제암이란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그에게 내린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그곳에는 사명대사의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도 있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석장비(石藏碑)는 광해군 4년(1612)에 세운 것으로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그 비는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일본인에 의해 수난을 겪은 적이 있다. 비문 내용이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하여 합천경찰서장으로 있던 일본인이 네 조각으로 깨뜨려 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세워 놓았다 한다.

해인사 홍제암(보물 제1300호) 네 조각으로 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도 보인다.
해인사 홍제암(보물 제1300호)네 조각으로 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사명대사 석장비도 보인다. ⓒ 김연옥

오후 2시께 해인사에 도착했다. 가족 단위로 해인사를 찾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해인사 돌담에도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돌담 앞에서 사진을 찍는 어린아이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가을이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88고속도로 해인사 I.C→ 가야면 소재지→ 성주 방향 997번 국도→ 백운동탐방지원센터



#우두봉#칠불봉#해인사홍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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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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