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4일 오후 5시 40분]
미국과 북한이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는 양자회담 성사에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지난 이틀간 연속으로 미국에 대화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3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조치의 일환으로 재처리시설을 가동해 지난 8월 말에 폐연료봉 8000개의 재처리를 끝냈으며 여기서 추출된 플루토늄을 핵무기화하는 주목할 만한 성과들이 이룩됐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외무성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조(북)미 사이에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신뢰가 조성되면 조선반도 비핵화실현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있게 될 것", "미국과 회담을 해보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도 할 수 있다는 립장을 밝힌 만큼 이제는 미국이 결단을 내릴 차례", "미국이 아직 우리와 마주앉을 준비가 되여있지 않다면 우리도 그만큼 제갈 길을 가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가지 모두 미국에게 신속하게 적극적인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조선중앙통신은 '핵무기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북, 이틀 연속 대화 압박... 부드러운 미국
그런데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부드럽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3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발표에 대해 "플루토늄 재처리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약속한 것을 위반한 것이며, 유엔 안보리 결의위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켈리 대변인은 "북한을 비난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비난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I didn't say we were condemning it.)"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조치 착수를 강조한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발표가 긴장을 높이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특별한 답("That's a subjective")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북미대화에 대해서도 "북한과 양자대화를 가질 용의가 그대로 있으며, 언제, 어디에서 이런 양자대화를 가질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대북 접촉에서의 진전과 함께 북한의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 완료' 발표가 지난 9월 초 북한의 유엔대표가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폐연료봉 재처리 마감 단계이며, 추출된 플루토늄이 무기화되고 있다"고 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켈리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미국을 방문한 리근 북한 외무성 국장과의 대화에 대해 "6자회담 재개라는 우리의 긴박한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그런 점에서 유용한 회동이었다"고 말했었다.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4일 북미대화에 대해 "가장 최근에 들은 얘기는 미측이 조만간 입장을 정할 것 같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북한과 미국은 두 차례의 공식 회담을 가진 후 다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는 3일자 보도는 이같은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외신들 "북, 보즈워스-강석주 면담도 약속", "북, 미 의원단 방문도 타진"보도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미국은 '리근-성김(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협상에서, ▲다자회담 복귀 전 2차례 양자회담 개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면담 ▲2005년 9.19 공동성명 준수 및 조속한 핵 프로그램 포기,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 복귀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앞 두 가지에는 동의했으나 세 번째 제안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비핵화' 구상이라는 토대 위에서 회담을 재개하고 싶다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린폴리시는 "북한의 이런 입장은 자신들 뿐 아니라 남한의 핵무기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미국 의원단의 방북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의 <산케이>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과 함께 미국 상·하원 의원단의 북한 방문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북한이 핵 관련 시설을 공개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은 정부가 협의가 성과를 못 낼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인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미 북한의 초청을 받아놓은 상태다.
북미대화 진척 없을 경우, 북 3차 핵실험 예상도
반면, 북미대화가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급속하게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우려다.
북한이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를 발표하면서 "추출된 플루토니움을 조선의 핵억제력 강화를 위해 무기화하는데서 주목할만한 성과들이 이룩됐다"고 밝힌 부분이 '핵무기의 소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분류를 기준으로 보면, 북한은 핵시설의 건설 및 가동(1단계)→ 핵물질 생산(2단계)→ 핵폭탄 제조 및 실험(3단계)→ 핵폭탄의 소형화·경량화와 미사일 개발 및 장착:핵무기화(4단계)→ 핵무기의 생산 및 배치:핵무장화(5단계)라는 핵무장화 과정에서 현재 3단계 수준인 것으로 분석돼왔다. 만약 북한이 소형화에 진입한 상태에서 북미관계가 진척되지 않을 경우 '소형화' 즉 무기화를 과시하기 위한 3차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대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경향신문 논설위원)는 지난 달 28일 '북핵문제'관련 토론회에서 "북미 양측 모두 너무 큰 카드를 내놓았기 때문에 우발사건으로 변할 상황은 아니며, 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판을 흔들 수 있는 큰 위기와 대결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대결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의 강화로부터 발생할 수도 있고, 추가 핵실험 및 핵확산 조치등 북한의 추가 도발로부터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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