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생 멧돼지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부터 농촌에서는 야생 멧돼지들의 출몰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있어 왔으나, 최근엔 도심 아파트 단지나 고궁, 고속도로에도 자주 출몰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에만 82억 원의 재산상 피해를 봤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가장 최근으론 지난달 28일 부산 도심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야생멧돼지가 이날 새벽 부산 강서구 송정동 옛 용원검문소 앞 왕복 6차로 도로로 뛰어들어 차에 치였다. 앞서 같은 달 26일엔 부산 동래구 온천동과 강서구 송정동에도 멧돼지가 나타나 경찰에 의해 사살되기도 했다. 부산뿐만이 아니다. 이보다 더 앞선 22일에도 춘천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9월 15일과 19일엔 각각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과 종로구 구기동에 멧돼지가 출몰해 시민들을 긴장시켰고 21인엔 서울 창덕궁에도 멧돼지가 나타났다.
물론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들도 문제지만, 농촌에서 멧돼지는 아주 골칫덩이다. 특히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농민들과 멧돼지들 사이에선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멧돼지로 인한 농촌의 피해는 말도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환경부에선 매년 멧돼지 피해를 공식집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농민들이 '신고'를 했을 때 추산할 수 있는 수치기 때문에, 신고 안 한 건수까지 합치면 공식자료의 10배는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밤새 보초도 서고 라디오를 크게 켜 놓거나 개를 풀어 밭을 지키게 한다. 어떤 농가는 총소리가 나는 폭음기를 설치해 멧돼지를 쫓고 있다. 그러나, 멧돼지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라 곧 다른 방법으로 농작물을 습격하곤 한다.
포식자 없으면 무한 번식도 가능한 멧돼지그렇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농작물만 습격하던 멧돼지가 멀리 도심까지 발길을 옮긴 이유는 뭘까. 특히 지금처럼 번식기에 출몰이 잦아지는 이유는 뭘까.
사실 멧돼지가 도시로 나온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산 속에 멧돼지가 꽉 차 있어서다. 아니, 넘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10년 전 만 해도 멧돼지가 겨울철이든, 번식기든 도시로 나온 예가 전혀 없었다. 개체수가 적어 산속에서 충분히 자기영역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토 개발과 밀렵억제 등의 이유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개체수가 10년 전보다는 아마 20배가량 늘어났을 것으로 본다. 산 속에선 더 이상 먹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멧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목숨 걸고 도시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알고 보면 멧돼지도 참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이다.
주로 10월경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하는데, 대부분 수컷들이다. 멧돼지들은 이때가 되면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대비해 암놈과 함께 먹고 살 만큼 큰 영역을 구축한다. 따라서 이 시기가 되면 수컷들의 영역싸움이 시작되고, 싸움에 진 녀석들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결국 도심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적자생존이다. 결국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건강한 유전자가 유지되는 것이다.
개체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멧돼지의 번식력에 대해 알아보자 멧돼지는 잡식성으로 무엇이든 많이 먹고, 많이 낳는, 한 마디로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평균수명 15년~20년인 멧돼지 한 마리가 매년 여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으니까, 대략 자기 생애에 5~6만(후손들을 모두 합했을 경우)의 가족을 거느린다고 보면 된다. 이로 볼 때 포식자가 없는 세상에서 무한 번식이 가능한 동물이 멧돼지라고 할 수 있다.
피해 입을 때만 포획하는 정책, 문제 있다일각에선 멧돼지 개체수 조절 실패를 정책적인 측면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천적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자연적인 개체수 조절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대로 개체수 조절에 실패하면, 농민들도 문제지만 멧돼지들이 다 굶어 죽는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적정 개체수로 조절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통상 야생동물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렵이고, 또 하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잡는 '유해조수구제'라는 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렵보다 유해조수구제라는 임기응변식 처방을 선호해 결국 야생동물 개체수 조절 실패를 자초했다.
수렵은 매년 1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각 지자체별로 수렵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지자체별로 환경부에 수렵장을 개장하겠다고 신청하면, 환경부에서는 해당 시군에 있는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사한 뒤 수렵장 개장 허가 여부를 결정해준다. 이렇게 수렵장이 열리면 지자체들은 수렵인들에게 신청서를 받아 수렵장을 운영한다.
이에 반해 유해조수구제는 반드시 피해가 발생해야지만 포획을 할 수 있다. 일정 기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농작물 피해가 접수되거나 국가 주요 시설물이 피해를 입었을 때, 도심에 출현해서 인명에 피해를 주었을 때만 해당 시군청에서 포획 허가를 내준다.
수렵은 동물이 번식하기 전인 겨울철에 솎아내 번식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지만 번식기가 지난 시기에 시작하는 유해조수구제는 그 새끼들까지 모두 죽여야 같은 효과가 생긴다. 또 유해조수구제가 실시되는 시기는 대부분 숲이 울창하고 더워서 활동의 효율성이나 엽사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호랑이가 없는 지금,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일부에선 산에 먹이가 부족해서 도심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현재 그들이 충분히 먹을 만한 먹이는 분명 부족하다. 오죽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도심으로 내려올까. 그러나 지금같이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한 상태에선 국가도 그들의 먹이를 해결해줄 수 없다. 일부에선 생태환경이 나빠져서 먹을 것이 없다고도 하는데, 서식지 일부가 파괴된 것은 맞지만 옛날처럼 민둥산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또 일각에선 개발과정에 야생동물들의 이동통로가 파괴된 것이 문제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르다. 멧돼지가 인천에서 연평도까지 바다를 헤엄쳐 건너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그만큼 멧돼지는 생명력이 강하다. 어딜 가도 멧돼지가 꽉 차 있는 현실이 더 큰 문제지, 도로는 멧돼지에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야생에 살아야 할 멧돼지가 아무데나 출몰해 큰 피해를 끼치고 있으니 더 이상 방관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멧돼지 스스로가 개체수를 조절할 수도 없고, 멧돼지를 유해동물로 지정해서 멸종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먹이사슬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개체수가 조절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멧돼지의 경우 야생 먹이사슬에서 최고 정점에 있어 문제다. 멧돼지를 잡아줄 호랑이가 없는 지금, 결국 사람이 나서서 줄여주는 수밖에 없다.
전국단위 또는 도 단위로 수렵장 확대해야10년 전 보신문화로 인한 밀렵이 팽배했던 시절엔 멧돼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 지원을 받게 된 우리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감시단에 8천건의 밀렵행위를 잡았고, 이후 밀렵이 많이 사라졌다. 포식자가 사라진 환경이라 멧돼지 개체수가 늘어난 건 당연한 결과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그 수가 불어났다.
이렇게 멧돼지는 사람에 의해서 조절이 가능한 동물이다. 몇 년 전 모든 야생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한 긴박한 상황에 국가가 밀렵과의 전쟁을 선포해 멧돼지를 늘려 놓은 것처럼 이번 일도 정부 주도로 일이 진행돼야 한다.
외국에서 늘 해오고 있는 수렵 정책을 우리나라 겨울철 수렵에 적용하도록 벤치마킹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 멧돼지는 총소리만 나면 모두 인근 시·군으로 도망치기 일쑤다.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려면, 시·군 수렵장제도는 폐지하고 적정한 개체수로 조절될 때까지 전국단위 또는 도 단위로 수렵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 길만이 농민과 도심 문제, 나아가 멧돼지의 먹이 부족사태까지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다행히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정부가 멧돼지에 전면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환경부는 이번 달부터 내년 2월까지 운영되는 전국 수렵장에서 포획할 수 있는 멧돼지 개체수를 2만 마리로 확대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문태국 기자는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본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