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지인이 예쁘다고 소개해준 꽃길을 가을에야 걸어갔습니다. 봄꽃이 모두 다 지고 난 뒤라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그땐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가을날 문득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내게는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문득 그곳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산책로는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지 보물을 찾은 듯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런 길을 소개해준 지인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며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길을 따라 주위 풍광을 음미하며 걷고 걸었습니다. 행복한 가을 산책이었습니다.
광주의 어머니인 무등산의 가을단풍이 밀려 내려오는 이곳은 오고가는 사람들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아늑하고 깊은 숲속의 향기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등산 아래 울려 퍼지던 향기가 그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롭던지요.
군데군데 운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육시설로 꾸며진 이곳은 광주광역시 동구청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36억이 넘는 조성비를 들여 증심사 시설 집단지구부터 현덕사 입구까지 조성해 놓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내가 낸 귀한 세금으로 조성된 길을 걸어보는 감회가 색달랐습니다.
자연의 운치도 살리고 햇빛도 피할 수 있도록 터널도 두 개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길을 통과하는데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조롱박을 쳐다보니 어린 시절 생각에 행복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손재주가 좋으신 친정 아버지는 주렁박을 키워서 조심스레 쪼개 말려서 모두 바가지로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린 그 조롱박에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이곳은 또 바로 새인봉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새인봉은 무등산의 다양한 등산로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코스였습니다. 늘 가던 길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새인봉이란 안내글씨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이 보이는 새인봉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새인봉 삼거리를 500m 눈앞에 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습니다. 건강해지고 조금 더 체력을 비축하면 새인봉 삼거리까지는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는 그 길을 꼭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발병한 뒤 이제는 그 길을 갈 수 없으리라 싶어 마음 속에 고이 접어두었는데, 이제 무등산은 꿈 속에나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욕심 없이, 미련 없이 마음에서 고이 접었는데 다시 도전할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인생,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포기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해도 늦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깊이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