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설날, 3월 3일을 삼짇날, 5월 5일을 단오, 7월 7일을 칠석이라 하며 한해살이를 분절하는 세시풍속을 만들어 즐겼다면, 우리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블랙데이, 빼빼로데이를 만들어 새로운 풍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요즘 풍속에 대해 기업 판매 전략이라는 둥 여러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그렇게 우리 삶을 분절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기본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 같습니다. 다만, 가정과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옛 세시풍속에 비해, 오늘날 풍속은 남녀 혹은 개인 중심 문화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오늘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입니다.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빼빼로데이마다 싸구려 중국산 과자들이 교실마다 넘쳐났는데, 마을학교에서 빼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한 친구가 '오늘 엄마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우리식으로 가래떡데이래요'라며 학교에 들어섭니다. 올커니, 이런 재밌는 생각도 있구나 싶어 아이들에게 우리는 우리식대로 가래떡을 구워먹자 하였습니다.
손쉽게 프라이팬이나 그릴에 구워먹을 수도 있지만 학교 앞뒤로 떨어진 낙엽과 잔가지를 가지고 모닥불을 피워 구워먹기로 했습니다. 먼저 왜 돌로 둥그렇게 경계를 만드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을 주워 모읍니다.
2주 전에 함께 <한반도의 인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 때 '불씨'를 소중하게 간직하던 구석기인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우가우가'를 외치며 돌을 모았지요. 아이들이 돌을 모으는 사이 불 피울 곳에 쌓인 낙엽을 말끔하게 쓸어냅니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을 미리 막기 위함입니다. 낙엽을 쌓고 그 위에 잔가지를 올려 불 피울 준비를 했습니다. 라이터로 손쉽게 불을 붙이지 않고, 가스조리기에서 나뭇가지로 불을 붙인 뒤, 그 불씨를 고이 옮기는 방법으로 재현해 보았습니다.
이틀 전 내린 비로 나뭇가지들이 젖어 있어서 불을 피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채질로 작은 불씨들을 살려내어 결국 불을 붙이는 일에 성공했지요. 매운 연기를 마시며 불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주워 모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가 타는 동안 아이들은 여러 공부를 합니다. 나무가 젖어 있어서 불이 잘 안붙는 것이며, 어떻게 마른 나뭇가지를 골라낼 수 있는지, 모닥불을 원추형으로 쌓는 것은 공기가 원활하게 소통해서 산소가 부족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 등을 저절로 배웁니다. 부지깽이로 바람 들어갈 구멍을 만들고 부채질을 해야 불이 잘 옮겨 붙는다는 것도 배웠지요.
불이 타오르는 동안 이런 저런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잦아들자 석쇠를 올려놓고 가래떡을 구우니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이리저리 굴려서 말랑말랑하게 익은 가래떡을 쇠젓가락에 꽂아서 조청을 발라 먹습니다. '우우우우' 원시인 소리를 흉내내며 맛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손쉽게 사서 먹는 빼빼로보다 이렇게 불피워 구워먹는 가래떡데이 어떤가요. 불을 피우는 동안 아이들 마음이 저절로 하나가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