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집권 초기 '강부자 정권'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 정권은 감세나 반값 아파트, 친서민 등 실제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들을 친근감 있는 언어로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친서민' 프레임이다.

'대안없는 진보'. 이것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보수진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에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최근 5차례에 걸쳐 우리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한 데 이어 2차 기획을 내놓는다. [편집자말]
"북한이랑 서해에서 또 붙었다며?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지난 13일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은 남측 단장에게 경고성 통지문을 보냈다. 10일 일어난 서해교전과 관련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있다"며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북측의 표현은 강경하지만 최근 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되고, 얼어붙었던 민간 분야의 교류가 천천히 녹고 있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이번 발표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언론에서 나름대로 분석 기사를 통해 남북 정세를 보도하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신문에 나오는 '6자회담'이니 '그랜드 바겐'이니 하는 외교 개념을 제대로 챙겨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이지만 여전히 궁금함은 남는다. 이제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지난 2005년부터 활동 중인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아래 코리아 연구원)'은 이런 의문들을 풀어주는 가장 권위 있는 국내 싱크탱크 중 하나다.  

적은 운영비로 생존하는 특별한 방법

 코리아 연구원 홈페이지
코리아 연구원 홈페이지 ⓒ 코리아연구원

코리아 연구원의 가장 큰 특징은 단체의 이름에 어울리는 넓은 연구 범위와 다양한 연구 인원이다. 현재 대학교수급 연구원 40여 명이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 부문에서 실증적 분석에 기초한 정책 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간 싱크탱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의 인력구성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김경순 사무처장은 "출발할 때부터 국가의 전략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연구소가 만들어질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져야 할 국가 전략이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의 세 부문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코리아 연구원은 이 분야들 중 특히 안보 문제를 포함한 정치-외교 부문에서 압도적인 연구실적을 내고 있다. 북한 관련 문제가 터지면 본질을 꿰뚫는 관련 논평이 이곳에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올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치-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정치외교연구센터에서 지난 5년동안 생산해 낸 게시글의 숫자는 약 1만 500여 건. 

재미있는 것은 이런 규모나 활동에 비해 코리아 연구원의 운영비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1년 예산은 대략 1억원 정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코리아 연구원에는 월급 받는 사람이 행정 관련 업무를하는 사무처장과 직원 한 명뿐입니다. 연구원들은 모두 무급으로 자기 생업을 가지고 있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수준입니다. 각각의 연구원들이 자기 분야를 가지고 있는 전문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의 글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때마다 사무처에서 글을 청탁하는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연구원 김경순 사무처장
코리아 연구원 김경순 사무처장 ⓒ 김동환
"이런 개념을 '싱크네트(Think Net)'라고 한다"고 덧붙이는 김경순 사무처장. 상근 연구 인력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싱크탱크에 기부하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 이런 싱크네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싱크네트 방식은 연구 환경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사안마다 유연하게 협업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싱크네트 방식은 비용이 적게 드는 대신 모든 연구원이 한 공간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의 시의성과 효율성을 위해 중앙에서 전체 연구를 조절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코리아 연구원에서는 '연구기획위원회'가 조정탑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기획위원회는 총 8명의 연구기획위원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무엇에 대해 연구하고 어떤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할 것인지를 정하는 회의를 갖는다.

미국 뉴딜과 MB 뉴딜은 뭐가 다른가?

이런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코리아 연구소의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원고지 50매에서 100매 사이의 분량으로 작성되는 '현안진단'. '현안진단'은 재보선이나 한·EU FTA, 개성공단, 비정규직 문제 등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분석 보고서다. 두 번째는 현안진단 분량의 글 3~4개가 한 주제로 묶여있는 '특별기획'으로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전망' 등 거시적인 현실 진단과 더불어 정책에 대한 제안이 곁들여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코리아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생산된 현안진단은 154개, 특별기획은 27개다. 평균을 내 보면 지난 5년동안 매주 1개씩 50매에서 100매 사이의 보고서를 만들어온 셈이다.

최근 나온 코리아 연구소의 현안진단 중에는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를 보는 5가지 논점(이정철), 현 구역개편론 평가와 바람직한 방향(허훈), 오늘 다시 선거를 생각 한다: 정치공학의 그림자(홍재우)가 반응이 좋았다.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를 보는 5가지 논점'은 북한 관련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다섯가지 요점을 잡아 어렵지 않게 풀어낸 글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가 우리 정부의 주장처럼 제재의 효과가 아니라 협상 전술이 변화한 것이며, 그러한 북한의 대외 강경행보 중단은 중국이 상당부분 관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 구역개편론 평가와 바람직한 방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구역개편 논의에 허점을 짚고, 구역개편이 결국에는 지방자치 및 분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 다시 선거를 생각한다 : 정치공학의 그림자'는 요즘 이명박 정부가 왜 선거제도의 변화를 추진하는지를 친이계와 친박계로 나뉘어져 있는 한나라당의 구조를 통해 분석한 글이다.

간판 정책보고서인 특별기획 중에는 하토야마시대 일본과 동아시아, 전망 및 제언(양기웅, 이원덕, 양기호), 미국의 뉴딜과 MB의 녹색뉴딜 비교분석 및 제언(홍종학, 김종걸), 2009년, 4대강국 정세 전망과 한국의 정책방향(서재정, 주장환, 양기호, 유진숙, 홍익표, 이남주)정도가 요즘 볼 만한 것들이다.

'하토야마시대 일본과 동아시아, 전망 및 제언'은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이 왜 2009년에 무너졌는지, 그로 인해 한일, 한미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를 다각도로 다뤘다. '미국의 뉴딜과 MB의 녹색뉴딜 비교분석 및 제언'에서는 미국의 뉴딜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했던 것과 최근 오바마가 추진 중인 정책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이를 이명박 정부의 뉴딜정책과 비교하고 있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 글에서 왜 오바마의 뉴딜이 '그린 뉴딜'이고 이명박 정부의 뉴딜은 '그레이 뉴딜'인지를 '토건경제'와 '역주행'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2009년, 4대강국 정세 전망과 한국의 정책방향'은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의 동북아정책들을 각각 분석해서 그 정책들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했다. 또한 네오콘적 환상 속에서 출발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가 어떤 모습인지, 그런 방향의 외교에서 왜 남북관계의 출구를 찾을 수 없는지를 분석했다.

인지도 높이고,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 거듭나야

 주변 4강의 변화 속에서 한국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할까?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 16일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주변 4강의 변화 속에서 한국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할까?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 16일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정책연구가 가치를 가지려면 해당 정책이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과 정책담당자에게 영향을 미쳐 연구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러나 '대북 압박정책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코리아 연구원의 진보성향 정책 제안이 이명박 정부에서 정책으로 채택되기란 사실상 어렵다.

매주 생산되는 양질의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연구원이 일반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리아 연구원의 보고서는 일반 대중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고 현재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대부분의 재정을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한국의 진보 싱크탱크에게 낮은 인지도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코리아 연구원의 고민 역시,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재정 사이에 있다.  지금은 한 달에 만원씩 후원하는 200명도 채 안 되는 후원회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익명의 독지가가 모자라는 대부분을 도와주지만 그렇게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의 체질 변환이 시급하다. 

"어느 싱크탱크나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어려울 거예요. 우리 연구소 같은 경우는 연구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상근자를 좀 늘렸으면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고민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좀 더 연구가 정교해 지겠지요"

연구기획위원장인 동국대 박순성 교수도 재정 확충의 필요성에 동감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후원 참여가 절실한 상황과는 달리 코리아 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아직 시민 참여와 소통을 위한 구조적인 기능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조건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시민 후원형 싱크네트'로 변모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부자감세·4대강 뛰어 넘을 대안 찾아라

정치가가 혼자서 자신의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복잡한 현대사회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지 4년밖에 안 되는 짧은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국진보센터(CAP)의 정책 지원이 있었다. 오바마가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미국진보센터의 정책들은 미국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다. 

상근직원 125명, 1년 예산 2000만 달러, 미국 내 영향력 10위 안에 드는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와 코리아 연구소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지식인들이 유연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여하는 형태로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싱크네트가 적절한 기회를 만났을 때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상징적인 구호로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다 결국 무늬나마 서민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지역주의와 이념정치로 일관해왔던 우리 정치에서도 어떤 정책을 제시하는지, 어떤 의제를 제시하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4대강, 부자감세 등 정책 설정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는 화두들이 언론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야당들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할 뿐 대안이 될 만한 자신들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식인들로 구성된 싱크네트인 코리아 연구원은  다가올 201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에 어떤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그들의 발간할 다음 보고서가 기대되는 이유다.
    
 코리아 연구원 박순성 연구기획위원장
코리아 연구원 박순성 연구기획위원장 ⓒ 김동환

- 코리아연구원은 어떤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정책 보고서를 통해 공익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국가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요즘에는 우리가 만드는 정책이나 정책 대안이 현 정부에 의해서 수용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지요. 현 정부 정책을 잘 비판해서 방향을 선회하는 것에라도 기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기적으로 바라는 것은 한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국가가 필요한 정책대안을 생산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지식인들의 사회참여, 자기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전문연구 네트워크가 되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싱크탱크 운동을 하며 보람있었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보람있었던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을 통해서 대안적 정책은 어떻게 짜며 협동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사회과학적 지식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방법적인 면에 대해 많이 배웠고요. 연구원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는데 코리아연구원이나 다른 싱크탱크들이 지식인들이 좀 더 큰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하는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요즘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의 참여가 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원만 해도 90년대 학번이 좀 적어서 보완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코리아 연구원에 와서 글을 쓰면 자기 글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사회참여도 되지요. 앞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우리사회의 진보싱크탱크의 수준과 가장 주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진보싱크탱크들이 역할분담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리아연구원이 외교-안보쪽에 집중한다면 새사연은 경제쪽에 집중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과 경쟁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역할분담을 위해 진보 싱크탱크끼리 심포지엄도 하고 했는데 이게 잘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시민들 상황에 맞게 교정하기 위해서는 진보 싱크탱크들의 연합,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코리아연구원 연구기획위원장으로서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코리아연구원이 주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자극을 주는 글을 쓰다 보니 글의 주제나 글쓰기 방식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문적인 식견을 담으면서도 충분히 쉬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대중들의 관심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싱크탱크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코리아 연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재학생입니다.



#진보싱크탱크#코리아#싱크네트#싱크탱크#코리아 연구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