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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오름 정상에서 김밥 먹자구요!"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 바다산책로에서 망오름으로 가는 길에서 낯선동무에게 던진 말이었다. 토산 바다산책로에서 망오름까지는 2km, 바다를 등지고 걷는 길은 서귀포시 동남부에 위치한 중산간 올레였다. 그 길은 제주시 일주도로에서 토산 중산마을로 통하는 오르막길, 정오의 허기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배낭에 짊어진 김밥을 생각하니 배가 절로 고파왔다. 하지만 도보기행에서 배가 부르면 걷는데 조금은 느슨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다.
돌담, 과수원 올레 망오름 가는 길
이 마을은 51%가 과수원을 하기 때문에 망오름으로 오르는 올레는 대부분 과수원 길이었다. 조금은 지루하다고나 할까, 검은 돌담 너무 누런 감귤이 더욱 식욕을 돋궜다. 30분 이상 과수원 길을 걷다 보니 망오름 봉우리가 보인다. 망오름 봉우리만 보이는데도 지루한 느낌이 사라졌다.
12시 30분, 망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돌계단 앞에는 당케포구에서 함께 출발했던 20대 여성이 혼자서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 이거- 먹고 가세요!"
그녀가 내민 빵 조각은 혼자서 11km를 걸어왔던 외로움의 여정 흔적이 묻어있었다. 혼자 돌계단에 앉아있는 모습이 청초해 보였다. 하지만 혼자 길을 걷는 그 용기는 대단해 보였다.
가파른 돌담길 수행자의 계단
조선시대 정의현 소속 봉수대로 연구 가치가 있는 문화유적 망오름, 망오른 정상가는 길은 조금은 가파른 돌계단이었다. 11km를 걸어왔던 사람들에게 가파른 돌계단은 조금은 버거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의 올레코스라면 이만한 돌계단쯤은 수행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낯선동무는 드디어 체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50m 앞에서 씽-쌩- 올라갔다. 반면 끙끙대며 돌계단의 수를 세다가 그만 그 숫자마저 잊어버렸다. 마치 수행의 계단 같았다. 아니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그만큼 가파를까?
빼꼭히 들어선 소나무 사이 겨울 산의 진주는 잡초 속에 묻힌 빨간 열매들이다.
망오름 ,봉수대의 흔적과 올레꾼의 쉼터
토산봉이라고도 부르는 망오름 정상은 잔디밭이다. 비록 소나무에 덮여 조망을 감상하긴 아쉬웠지만 봉수대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린 정상 잔디밭에서 김밥과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먹는 점심은 죽음의 제주올레 4코스가 명상의 4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올래 길에서 오름은 길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사람들은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간호사 생활을 한다는 45세의 아가씨, 이제 갓 대학 졸업을 했을 법한 사회 초년생 아가씨, 엄마와 함께 길을 걷는 대학생, 카메라로 야생화를 찍으러 온 아저씨와 마주치는 길목이 바로 제주 올레 4코스 망오름 정상이었다. 서로가 나누는 '수고한다!'는 인사말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 같았다.
동쪽과 서쪽으로 벌어진 2개의 말굽형 화구는 볼 수는 없었지만, 북망산이라는는 공동묘지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여느 오름 등반로와 같았다.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다 보니, 7-8분 정도로 하산을 할 수 있었다.
한라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샘'의 비밀
망오름 남서쪽으로 접어들자 잡목이 우거진 곳에 조그만 샘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계속 흘러 샘은 마르지 않았다. 그 셈이 바로 거슨새미다. 이와 같은 작은 샘은 돌담 아래 2-3군데가 더 있다. 산에서 보는 물은 나그네들에게 더디 걸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물은 순리대로 바다로 흘러가야 할 테지만, 어찌하여 거슨새미는 한라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그 의문은 표지석 앞 안내문을 읽어보면 비밀을 캘 수 있다. 한때 산혈과 물혈을 끊으려했던 중국 호종단의 계략이 아닐까.
정의현의 봉우대 망오름 토산봉, 그 망루는 수행자들이 지나가는 오름올래가 아닌가 싶었다. 특히 망오름 남서쪽 거슨새미 작은 샘은 마르지 않는 '거슬러 올라가는 샘'의 이치를 알게 되는 올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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