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에 가을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11월 10일 문수산을 찾은 날은 날씨가 제법 싸늘했다. 강화쪽을 향해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기전 우회전하여 조금 들어가니 성동마을이다. 조선 숙종 때 쌓은 문수산성 남문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김포와 강화도를 갈라놓은 좁은 해협인 염하강은 썰물인지 밀물인지 출렁이며 흐르는 물살이 거세어 홍수철의 강물 같다. 그 바닷물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에 올라 앉아 쉬고 있는 철새 몇 마리가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주차장이다.
휴양림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길에 올랐다. 휴양림도 잎이 져버린 숲이 썰렁한 모습이다. 문수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오른편 능선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가자 저 아래로 김포와 강화사이의 좁은 해협 염하강이 해협의 바다가 아니라 정말 강처럼 보인다. 염하강에 걸린 다리를 건너 강화 섬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김포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과 조상의 숨결이 남아 있는 문수산성강화해협을 지키던 덕진진이며 초지진, 그리고 광성보를 어림해보다가 전등사가 들어앉아 있는 정족산을 찾아본다. 김포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지만 그리 높지 않은 산이어서 곧 능선 한 봉우리에 올랐다. 봉우리는 희미한 옛 성벽 위에 몇 년 전까지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가 철수한 후 사용하지 않아 퇴락한 군 초소 하나가 쓸쓸한 모습이다.
옛 사적 139호인 문수산성은 그 길이가 6킬로미터가 조금 넘지만 아직 일부만 복원되어 허술한 모습이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산성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전망은 더욱 시원하게 열린다. 오른편으로 김포 들녘과 멀리 인천 송도에 우뚝우뚝 솟아 있는 빌딩들, 그리고 인천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의 모습도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시선을 조금 돌리면 낮은 구릉들이 점점이 떠있는 김포평야를 지나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북한산, 도봉산은 물론 남산과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이래야 해발 376미터, 이만한 높이에 이렇게 전망 좋은 산이 어디 또 있을까,
조금 더 올라가자 왼편에 멋진 정자가 나타난다, 전망대 정자였다. 정자에 들어서니 이곳에선 정상 아래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문수사가 잎이 모두 져버린 숲속에 쓸쓸한 모습이다. 이곳 전망대에선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흐르는 조강이 염하강을 만나 세 갈래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도 바라보인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산성복원공사가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성벽도 말쑥하고 길도 넓다. 그 중간쯤에 있는 암문인 홍예문을 통하여 김포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 몇이 성안으로 들어선다. 이 지역을 지나면 산길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 오르막길 끝이 문수산 정상봉우리다. 정상에 이르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검은 비닐 그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이곳은 옛날 문수산성 장대가 있었던 지역으로 복원을 위해 발굴 조사하는 중이었다. 장대란 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지은 망루로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는 장수가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여 지휘하던 곳이다.
이곳 문수산 정상은 그동안 장대지를 발굴하다가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과 고배 등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곳이 숙종 때 문수산성을 쌓기 이전에 이미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장대지 기단부에 사용되었던 주춧돌들이 발굴되어 조선시대 주춧돌 축조법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아직 공사 중이어서 비닐그물을 씌워놓은 것이었다.
정상에서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잠깐 내려와 큰 바위 아래 공터에서 점심도시락을 먹고 다시 북쪽성벽을 따라 걸었다. 이곳 능선길에서는 염하강과 조강이 서로 만나 얼싸안고 흐르는 모습이 더욱 선명하다.
참 조강이란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이런 강 이름이 우리나라에 있었던가. 분명히 있었다. 옛 고문서의 기록을 찾아보면 우리나라 지리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조강이라는 강 이름이 분명히 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합수하고 다시 한강과 합류하여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 조강이다.
한반도의 중심축인 서울과 개성지역을 이어주며 흐르는 강, 한탄강이 임진강에 합수하고, 다시 김포벌을 지나며 한강을 만나 어깨동무하듯 하나로 모여 흐르는 혈맥 중의 동맥 같은 강, 그래서 강들 중의 강이며, 조상의 강이요, 할아버지의 강이라는 뜻으로 조강(祖江)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축을 흐르는 세 강을 아우른 할아버지 강, 조강(祖江)그러나 문수산 능선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조강은 이미 사라진 강이었다. 요즘의 지도 어느 곳에서도 조강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조강이란 강 이름은 오래전에 지워졌다. 특별히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조강은 이미 사라진 이름이었다.
강 건너 북녘땅도 가을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잿빛으로 아스라이 펼쳐진 낮은 산들과 들녘을 지나 멀리 산맥처럼 높이 솟아 있는 산은 개성 천마산(762m)이고, 그 앞쪽의 나지막한 산이 경기 오악 중의 하나인 송악산(489m)다.
개성공단이 열리고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아직은 너무 멀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북녘땅이 이곳에선 정말 가깝다. 그런데 조강은 강줄기를 따라 한가운데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비무장지대 DMZ가 지나가면서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물길이 되고 말았다.
흐르는 강물 한가운데 선을 그어 남과 북은 국경 아닌 국경으로 갈라선 것이다. 서로 합쳐지고 섞이며 흐르는 강물을 중심선으로 잘라 내편, 네 편으로 쪼갠 것이다. 저 강변 어디쯤엔가 남북은 진지를 구축해놓고 총부리를 겨누며 마주보고 있을 것이다.
지워지고 사라진 이름 조강, 그래도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아도 조강은 거기 수많은 민족의 애환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통곡하며 흐르고 있었다. 때로는 탁류로 흐르는 강물보다 더욱 진하게 얽힌 남북의 애증과, 강물보다 넓고 깊은 이념의 거리와 불신의 깊이를 메우며 묵묵히 흐르고 있는 강, 아, 우리 한민족의 할아버지 강이여!
능선길에서 조강과 북녘땅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다가 오싹 추위를 느끼고 다시 길을 걸었다.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싸늘했다. 능선길은 여전히 성벽을 따라 이어진 내리막길이었다. 그때 바지 앞주머니에서 삐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데 거기 총소리 안 들려?"몇 년 동안 함께 등산을 다니던 친구였다. 이날은 특별한 일이 있어 등산에 불참했던 친구가 서해교전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팽팽한 풍선처럼 툭 하면 터지는 남북관계, 그러나 내려가던 발길을 멈추고 다시 바라본 할아버지 강 조강은 여전히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하산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왼편 골짜기의 저수지와 군부대 훈련장을 바라보며 잠깐 내려가자 복원한 문수산성 북문이 나타났다. 북문 안쪽에 자리 잡은 민가 뜨락에 서있는 감나무엔 빨갛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성문 밖으로 나서자 마을 할머니 몇이 야채와 과일을 조금씩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염하강 해변 길가에는 대숲을 배경으로 잠든 어느 부부의 무덤이 정답다. 마주바라보이는 강 건너엔 갑곶진이 가까워보였지만 강가에 삼엄하게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