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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건 권력이다. 수재건 벼락부자건 예쁜 것 앞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 사회의 잣대는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예쁜 여자와 나머지의 여자로. 그러니 예쁜 사람들은 더 예뻐지기 위해 코를 높이고 나머지 여자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성형을 한다.

미의 기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사람 앞에 서면 나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작아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예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평화로운 기분이 든다. 그러니 문제다. 예쁜 사람이 우위에 서는 사회에 맞서야 함에도 사람들은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

 <그로테스크>겉 표지
<그로테스크>겉 표지 ⓒ 문학 사상사
기리노 나쓰오의 2005년작 <그로테스크>에는 외모지상주의의 사회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던 네 여자의 일그러진 삶을 그리고 있다.

612페이지 속 꽉 찬 문장들은 화자인 '나'가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미모를 가지고 태어난 동생 유리코로 인해 상처를 받으며 살아 온 자신의 삶을.

괴물 같은 미모의 유리코는 자신을 포함해 나머지 여자들을 생물학적인 의미로만 존재하는 무가치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고 설명한다. '나'는 극단적인 콤플렉스에 휩싸여 타인을 관찰하며 사람들에 대한 악의로 자신을 방어한다.

폴란드계 스위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빼어난 혼혈미인으로 태어난 유리코는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어린 시절부터 몸을 팔기 시작한다. 남자보다는 섹스가 좋다는 그녀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중년에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지만 결국 살해당한다.

예쁘지도 그렇다고 여유있는 집안도 아닌 여자 '가즈에', 그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대기업 부사장이라는 현실 사회에 머물게 된다. 치열한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아무도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사회에 복수하듯 밤에는 매춘을 일삼는 이중생활을 하며 닥치는 대로 남자들을 상대한다.

일본 최고 고등학교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는 자신의 학력을 무기 삼는 '미쓰루', 그녀도 결국은 자신이 그리는 이상 사회의 실현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집단 살육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 사교 집단에 들어가 도피처를 삼는다.

그들은 냉소, 외모, 이중생활, 학력이라는 방법으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다.
또한 각자의 시점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고 자신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어떤 것이 거짓과 진실의 경계인지 기리노 나쓰오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로테스크>는 1997년 동경전력 여사원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하되 거기에 가상의 또 다른 살인사건과 허구의 인물들을 덧붙였다. 동떨어졌던 두 개의 살인사건이 주변인물과 정황들에 의해 점차 기묘하게 동일 범죄로 엮어 들어가고 두 피살자 모두 '나'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실마리는 풀어나간다.

책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자는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다. 남성본위의 사회에서 자신의 처지를 딛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의 여성상의 단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냉혹하고 일그러진 사회 속에서 버티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들의 모습은 여성독자들을 씁쓸하게 할 것이다.

미모를 윤락이라는 행위로 이용하는 동생과 자신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설명했던 화자 역시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며 끝이 나는 대목에서 기리노 나쓰오는 비극적 현실의 한계를 쓸데없는 희망으로 채우지 않는다. 그것은 절망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기리노 나쓰오 식의 소설방식이라고 여겨진다. 

브라운관에는 갈수록 비슷한 얼굴의 여자들이 넘쳐난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말은 이미 찬밥에 말아 개나 줘야 하는 말이지 않을까. 예쁜 것이 권력이 된 사회에서  모든 여자는 피해자인 것이다.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사(2019)


#기리노 나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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