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009년을 사는 20대로서 억울한 일이 하나 있다. 우리 부모님은 386세대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는 30대였던,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앞장섰던 세대다. 이제 고3이 되는 내 동생은 2.0세대라고 한다. 웹 2.0시대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능숙하게 다루며 소통하는 세대다. 어느 쪽이든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다. 민주주의와 소통을 키워드로 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개인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과 인턴, 야비한(?) 차이
하지만 20대인 나는 88만원짜리, 인턴세대다. 88만원 세대와 인턴 세대는 넓은 맥락에서 비슷한 말이라서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지만, 사실 꽤나 야비한(?) 차이가 있다. 88만원 세대가 비정규직으로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를 일컫는 말이라면 인턴 세대는 정식 취업이 잘 되지 않아 인턴 자리만을 전전하는 청년 구직자 세대로 정의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온 것이 2007년이니까 그 이전에 대학을 다니고 구직을 시도하던 청년 세대를 88만원 세대로 본다면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20대 초중반을 인턴 세대라고 나누어 보고 싶다.
그런데 이 '비정규직'과 '인턴십'이라는 각 단어가 주는 어감은 크게 다르다. 비정규직이 절망을 의미한다면 인턴은 정규직으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비정규직이 저임금 노동을 상징한다면 인턴은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되기 위한 직무숙달 훈련이라는 느낌이다. 비정규직이 '낙인'이 된다면 인턴은 '경력'이 된다.
88만원 세대가 '88만원'이라는 그네들의 별칭을 두려워했다면 인턴 세대는 그렇지 않다. 적극적으로 인턴을 경험하고 경력을 쌓고 싶어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삼성이든 LG든 안쓰러워하지만, 그만한 대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고 하면 누구나 부러워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88만원짜리 인턴'에 관한 말장난은 야비하다.
인턴, 인턴, 인턴
요즘은 어디서나 인턴을 모집하고 인턴을 하려 하지만 본래 인턴이라는 말은 병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였다. 의대생이 정식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수련의 기간이 필요한 것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의 일이 지극히 어려우며,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인턴은 희망이 맞고, 정식 의사가 되기 전의 직무숙달 기간이 맞고, 경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 범람하고 있는 인턴들은 어떠한가. 기업들은 신입사원 재교육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 아르바이트는 대개 용돈벌이를 목적으로 하지만 인턴의 경우 돈보다도 경력·경험 쌓기가 최우선 목표다. 인턴십이 끝나면 인턴 경험을 증명해주는 그럴싸한 수료증이나 추천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기업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구직자라면 인턴십에 몰려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각 대학의 경력개발원에서는 취업 설명회도 모자라서 이제는 인턴십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 무얼 하는지 행사 내용을 봤더니 인턴십을 경험해 본 학생들의 체험기 발표와 고급 호텔 인사 담당자의 자사 인턴십 홍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생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 볼 것이고, 인턴십을 통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면 취업이 될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도 가질지 모른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공채보다 인턴십에서 경쟁률이 더 높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반드시 그 기업에 취업할 생각이 없다 해도, 대기업에서 인턴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취업 스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바'와 인턴 사이
여기까지라면 사뭇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토익, 인턴,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으로 이루어지는 취업 스펙 5종 세트는 더 이상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없으면 이상한 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십에서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업무와 그 근무 조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짧으면 한두 달에서 길어야 일 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인턴십에 대해 주로 쏟아졌던 비판은 상사가 인턴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업무를 배우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단기 근로의 근본적 한계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업무의 질보다 양이다. 회사가 구직자에게 인턴십을 경험하게 해 주는 '은혜'를 베풀면서 동시에 보수 대비 과중한 업무 부담을 주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중소기업에서 5개월째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윤아무개(23·서울시립대)씨의 경우 주5일 기준 월 100만 원(세전)을 받는다.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야근에 휴일출근도 하는 등 정직원 못지않게 근무하지만 초과근무수당은 나오지 않는다. 인턴 의사 과정과 같은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대다수 사무직의 경우 인턴을 통해 업무를 배우기보다는 그저 일을 하는 데 그친다.
정직원들처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1∼2년은 걸리기 때문에, 길어야 1년인 인턴은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인턴으로 이름만 바꾼 알바생을 데려다 저임금 노동을 시키고 선심쓰는 척도 하니 한참 남는 장사다. 물론 일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을 쓰더라도 일을 시키려면 기본은 가르쳐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 게다가 이 알바생은 잔업을 시켜도 군말이 없고 혹시라도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눈치를 봐 가며 열의를 다하니, 임직원들까지 면접에 참여해 인턴을 뽑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근로자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그나마 윤씨의 경우 적지만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는 축이다.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한 인턴들도 많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이다. 목적이 임금인지 아닌지가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인턴의 경우 표면상 목적은 임금보다는 직무 숙달에 있는 것처럼 보여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애매한데, 판례는 사용자의 지위·명령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는지를 기준 삼고 있다.
근무에 대한 응낙 또는 거부 자유 유무,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의 지정유무, 업무수행과정에 있어 사용자의 지위·명령 여부,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고 취업규칙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 등이 '근로자성'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대판 2000. 11. 24. 99두10209)
보다 직접적으로 수련의의 근로 지위에 대한 판례가 있다.
"인턴 또는 레지던트 등 '수련의', '전공의'의 경우에도 그들이 비록 전문의 시험자격취득을 위한 필수적인 수련과정에서 수련병원에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하더라도 수련의, 전공의의 지위는 교과과정에서 정한 환자진료 등 피교육자적인 지위와 함께 병원에서 정한 진료계획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할 것이고, 또한 병원 측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전공의는 병원경영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대법원 1998. 4. 24. 선고 97다57672 판결, 2001. 3. 23. 선고 2000다39513 판결)
이로 미루어 볼 때 기업이나 기관에서 근무하는 인턴 직원들 역시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받고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임금 대신 중식이나 소정의 교통비만을 제공하거나, 아예 '무급 인턴'을 모집하는 기관들이 상당히 있다. '인턴'이라는 '엣지' 있는 묘사만으로도 지원자들은 모여들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해외 인턴의 경우 최저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보수 혹은 무급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교육비 명목으로 수수료까지 따로 내야 하는 수도 있다.
기관에 따라 재정이 넉넉지 못하거나 공익성을 띠는 경우(NGO나 UN 관련 국제기구의 인턴은 대개 무급이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은 이해가 가나, 그럴 거면 차라리 자원봉사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정확할 듯 싶다. 자원봉사자는 아무래도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고 정직원들 입장에서도 아랫사람처럼 편하게 일을 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무급 인턴이라는 개념을 열심히 차용하는 것이라고 짐작해 보지만,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인턴,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
어차피 지원자들도 다 알면서 지원하는 인턴을 두고 왜 자꾸 꼬투리를 잡느냐면, 인턴이 바로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일 수 있어서다. 비정규직이 나쁜 이유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며, 노동자의 희생으로 기업의 배를 불리는 제도기 때문이다. 인턴도 마찬가지다. 직무 숙달, 취업 기회, 경력과 경험 등으로 포장돼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본래 취지를 벗어난 반 알바, 반 자원봉사 식의 인턴이 계속 범람한다면 문제는 악화된다.
기본적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평등한 근로계약이 아닌 인턴제에서는 항상 지원자가 배우는 입장으로서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돈은 적게 받아도 좋으니 일 좀 가르쳐 주세요' 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정식으로 채용된 사원은 노조에도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이다. 애초에 시작점이 다르다보니, 입사한 지 한 달 된 수습사원보다 육 개월을 채운 인턴이 일을 더 잘 하더라도 임금은 배 이상 차이가 나게 된다. 수련의 과정과 달리 사무직 인턴은 기본 업무를 일단 익히면 일한 기간에 비례하려 역량이 커지는 게 아니라서 이런 불균형이 발생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비정규직이 인턴을 입듯 덧칠됐다.
인턴들이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자원한 것이라고 해서 문제가 가려지진 않는다. 상대적 약자인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태도는 수요-공급 곡선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윤리의 문제다. 정규직은 뽑지 않고 자꾸 인턴만 늘리는 기업들. 비용절감책이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비난이라도 받았지만 '인턴'으로 개명한 후에는 별 반감이 없다. 기업들은 나름대로 일 못하는 학생들 데려다가 가르쳐 놓은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들에게는 남는 장사다. 언제 잘릴 지 몰라 불안한 비정규직처럼 인턴들도 불안하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채용될 수 있을까. 또 다른 인턴 자리를 전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물론 기업들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은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우선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로 기업체 인턴에 대해서 논했지만 주지하다시피 올해 정부기관의 청년인턴 채용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대졸 초임을 삭감해 무조건 뽑아놓은 청년인턴들에게는 시킬 일이 없어 놀리고, 어차피 정규직 전환도 안 되는 청년들은 무력감에 시달릴 뿐이라 한다. 인턴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좋아하는 정부 입맛에 맞추어 기업들도 얼씨구나 인턴을 뽑고 있지만 결국 청년실업 해결책으로는 동족방뇨일 뿐이다.
<오마이뉴스> 역시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수상자에게 인턴 '혜택'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근로조건은 잘 모르겠으나 인턴 채용을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내 눈에는 영 거슬린다. '단기간 저임금 계약직 근로'와 인턴이 다른 점이 도대체 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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