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다. 지난 11월 18일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왕자 호동>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군데군데 맘에 드는 구석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왕자 호동>은 흡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안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시나리오가 미흡하면, 아무리 최고의 배우가 명연기를 펼쳐도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듯이 말이다.
훌륭한 소품과 의상예술의 전당 객석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띈 것은 고구려 고분 오회분의 벽화 중 해의 신과 달의 신을 그린 막이었다. 고구려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막이 오르면 고구려 군대와 낙랑 군대의 전투 장면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드라마 <주몽> 이후 이제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를 그린 고구려의 깃발과 낙랑의 깃발이 무대를 수놓으면서 전투를 형상화한 남성 군무가 펼쳐졌다.
얼마 전 DVD로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한 <심청>을 본 적이 있었다. 2001년 공연실황을 담은 것이었다. 이 DVD를 보면서 나는 도무지 작품에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의상 때문이었다. 1막은 큰 무리가 없었으나, 2막 용궁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용왕을 제외하고는 마치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의상들을 입고 있었다. 해외 공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외국 관객들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읽었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게다가 용궁에서 춤추는 물고기들도 이름마저 생소한 외국 물고기들이었다.
3막 궁전 장면에서도 궁녀와 환관의 의상이 서양인이 상상으로 어설프게 제작한 동양 의상 같은 느낌이 들어 계속 눈에 거슬리기만 했다. 사소한(?) 소품인 의상이 눈에 거슬려 공연 전체의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은 이 DVD가 처음이었다. 이래서 의상에 많은 제작비를 투자하는 모양이다.
<왕자 호동> 속의 의상과 소품은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발레 공연을 하는데 당시 의상을 정확히 고증해서 입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시대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아름답게 디자인한 의상과 소품으로는 만들어야 할 텐데, 이런 면에서 <왕자 호동>은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고구려군과 낙랑군의 전투 장면에서 두 마리의 주작이 서로 싸우는 듯한 영상을 배경으로 잔잔히 깔아 놓은 것, 자명고 안에 신비한 새가 있었는데, 북을 찢자 요동을 치며 자명고를 불사르는 듯한 모습의 영상으로 표현한 것 등은 충분히 신비로웠다. 전반적으로 배경, 소품, 의상은 공연과 참 잘 어울렸다.
클라이막스가 없다하지만, 무용 부분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왕자 호동>에는 1막에 나오는 고구려군과 낙랑군의 전투 장면, 2막 서두 부분에 있는 고구려군의 연무 장면 등 남성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군무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잘만 살리면 <스파르타쿠스>를 능가하는 멋진 남성 군무를 선보이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했었다. 무용수들의 동작에는 힘이 넘쳤고, 그들의 기량은 훌륭해 보였으나 뭔가 밋밋했다. 이번에는 뭔가 감동적이지 않을까? 이번에는 남성들의 힘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매번 기대하며 보았으나 뭔가 살짝 아쉬웠다.
2인무 부분도 그랬다. 김주원과 김현웅을 왜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사람의 2인무는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들은 밋밋하게 만나고 밋밋하게 사랑의 춤을 추고 밋밋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1994년에 강수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았을 때였다. 이것은 연기이고 저 앞에서 춤추는 두 사람은 진짜 로미오도 줄리엣도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는 두 사람의 슬픔이 그들의 춤 속에 아프게 녹아있었다. 무용을 보고서 아픔이 느껴진다는 감정을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함께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한 <오네긴>을 보았다. 원래 뮤지컬만 좋아했던 친구를 꼬드겨서 보러갔었다. 시큰둥하게 따라왔던 그 친구는 <오네긴>의 3막에서 오네긴과 타치아나 두 사람의 2인무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내 친구는 황혜민과 엄재용의 팬이 되었다.
<오네긴> 공연을 시작하기 전 문훈숙 단장이 작품 해설을 할 때 오네긴과 타치아나의 3막 2인무가 공연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 2인무는 강렬한 인상으로 내 친구의 기억 속에 남았다.
함께 <왕자 호동>을 보고 나오면서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 클라이막스가 없는 것 같아. 발레를 잘 모르지만 공연을 많이 본 내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어. 무용수들은 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안무가 무용수들의 기량을 살려주지를 못하네."발레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고, 많은 발레 작품을 섭렵한 것도 아니기에 나는 발레를 잘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은 문외한의 시각에서 본 리뷰이다. 그러니 발레를 잘 아는 분이 읽는다면 뭘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할 것 같다. 그냥 한 문외한으로서 난 이 작품이 정말 아깝다. 대중적으로도 어필할 수 있을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남성 군무 부분을 잘 살려 <스파르타쿠스>에 필적할 만한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 같고, 호동과 낙랑 두 사람의 사랑을 좀 더 잘 살려서 <오네긴>이나 <지젤> 이상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슬픈 사랑의 전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왕자 호동>이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 나가기를 바란다.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만든 발레가 세계적으로도 인기있는 레퍼토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요소요소 뜯어보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주문을 하자면 무용수들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발레 작품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보았을 때, 내게 발레리나는 강수진 오직 하나 뿐일 만큼 주인공 줄리엣은 매혹적이었다. <오네긴>의 타치아나를 연기한 황혜민도 발레공연에 그냥 끌려왔던 내 친구를 한 번 더 보러 오자고 졸라대게 만들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황혜민은 이렇게 연기했는데, 다른 무용수는 같은 타치아나를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왕자 호동>도 다음 번에 보러가게 될 때는 다른 무용수의 버전이 궁금해지고, 또 다른 무용수의 버전도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