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이 책을 펼쳐 첫 장을 읽어갈 때 나는 듣지도 않을 저자를 향해 물었다. '아내와 함께 가면 어디 덧나? 혼자서 훠이훠이 날아서 프랑스 프로방스로 날아갔단 말이지?!
40년 넘게 대한민국 땅에서 담금질을 했다면 혼자 했나, 그 자신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다면 그의 옆에서 동행했던 아내 역시 힘들었을 것이고, 그 자신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으로 훠이훠이 떠나는 것을 꿈꾸어왔다면 그와 함께 살아온 아내는 어쩌면 더 멀리멀리 여행 가고픈 꿈을 얼마나 꾸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공항에 나와서 배웅했을 그의 아내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마음 먼저 프로방스에 닿아있지 않았을까. 맥없이 바라만 봤겠지...젊었을 때는 얼마든지 혼자 여행할 수 있고 또 혼자 여행하는 것이 보기에도 멋지기도 하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일생을 동반자로 살아온 아내와 함께 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홀로 여행도 좋겠지만, 나이 마흔을 훨씬 넘은 내가 꿈꾸는 여행은 동행이 있는 여행이다. 젊어서는 혼자서도 멋지게 보일 수 있고 또 혼자서 하는 여행도 필요하겠지만, 나이 들어서 하는 여행은 혼자서 하는 여행보다 아내와 남편과 둘이 함께 하는 여행이 아름답게 보인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어쩐지 이기적으로 보이고 좀 초라해 보일 것 같다.
오늘따라 삐딱선을 탔나 보다. 삐딱하게 보면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아내와 함께라면 그림이 더 좋지 않았을까...저자가 둘러보는 유적지와 시장과 빵집, 그리고 프로방스의 골목골목마다 혼자 서 있는 주인공 옆에 그의 아내가 동행했다면 더 그림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사연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프로방스로 간다."
그렇게 10년 전부터 떠들어대던 저자는 직장생활 20년째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 사표를 내고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마음 속 낙원을 향해 홀연히 떠났다. 그가 '프로방스에서 보낸 100일'동안의 여행담을 엮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마침내 나는 언제 끄적여 놓았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괴테의 글귀를 읊조리며 '내 생애 가장 청명한 순간'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빛나는 태양, 풍성한 대지, 푸른 바다, 차고 넘치는 음식, 어여쁜 마을, 한적한 숲속 길, 고색창연한 유적, 여유로운 이웃들, 느리게! 마냥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그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한 곳 뿐이었다. 풍광과 기후와 문화와 삶이 조화를 이루는 곳,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였다."
오랜 기다림, 그리움...간절하면 닿는다고 했던가. 나 또한 그것을 믿는다. 간절하게 마음이 그 어디엔가 닿아 있을 때, 끊임없이 그곳, 그 사람에게 마음 닿아 있을 때, 결국 몸이 움직이고야 만다는 것을, 그것이 바라보기의 법칙이 아니던가. 두 아이의 아비이자 한 여자의 지아비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순간순간 '내 안의 누군가가 도모하는 반란의 싹을 감지하기 시작한 건 불혹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10년 넘게 마음속에 품어왔던 지상의 낙원,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땅, 물질문명에 질린 서구인들이 갈망해온 현실의 유토피아', 4년여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100일 동안 프로방스에 머물면서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구상했고 그렇게 꿈꾸었다.
2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출판, 문학, 영화, 방송, 무용, 미술 등 주로 문화예술 분야를 취재하고 책 읽고, 영화보고, 공연감상하고 미술품 관람하는 복 받은 직업을 즐기고 버거워하다가 '행복하게 살자'며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지고 훠이훠이 프로방스로 갔다.
프랑스 면적은 54만 7030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다섯 배 정도 된다고 한다. 인구는 2008녀 기준으로 6405만 7790명이라는데 우리의 1.3배 정도라 한다. 범위를 좀 좁혀서 프로방스의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정도라는데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152명으로 남한(488명)에 비하면 30퍼센트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구경하기 힘든 한적한 곳이란 말이 실감난다.
프랑스의 행정구역은 주 단위의 22개 레지옹으로 구성돼 있는데 프로방스는 그 중 하나인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레지옹에 속해 있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프로방스는 특정 행정구역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우리로 치면 '남도지방'정도 된다고 한다. 프로방스는 생각보다 산이 많은 곳이라 하니 더욱 반갑다.
프랑스의 '에귀'라는 시골마을에 둥지를 틀고 프로방스에서 보낸 100일 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귀'는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곳으로 인상파 화가 폴 세자의 고향이며 엑상프로방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한적하고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동네라고 한다. 저자는 프로방스의 명소로부터 시작해 일상과 맛 닿아 있는 시장과 빵집, 정육점 등 프로방스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른 프로방스 사람들의 생활상을 맞닥뜨리면서 겪은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프로방스의 관광안내소는 툭하면 문을 닫고 미술관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한다. 상가들도 평일인데도 철시한 마을도 많아 난감할 때가 많았고 대형 수퍼마켓 조차도 일요일에 문을 닫아 배를 곯은 이야기,
빵집은 또한 마찬가지로 평일인데도 심심하면 문을 닫고 어쩌다가 기름 떨어져 어렵사리 찾아간 주유소가 사람이 없어 환장할 지경이 된 이야기, 도심지에서 화장실 찾기 어려워 헤맸던 이야기 등 좌충우돌 프로방스 경험담이 저자 특유의 입담으로 구수하게 펼쳐놓는다.
프로방스에서는 300일 가까이 햇빛을 볼 수 있고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 적은 눈, 풍부한 햇볕, 놀러 다니기에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는데, 자연환경도 다채롭단다. 산과 들, 강, 계곡, 바다, 심지어 늪지대까지 있는 곳이다. 타이밍만 말 맞추면 해수욕하다 말고 스키를 탈수도 있는 곳이 프로방스란다. 프로방스에는 또 널린 게 중세유적이란다.
이 책을 읽다보니 결국 나에게도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생겼다. 프로방스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느리게, 마냥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그곳에 서 있고 싶어진다. 원래가 열정은 전염되는 법이다. 프랑스의 프로방스를 저자가 멋지게 그려놓았기에 나도 내가 몰랐던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간절하면 닿는다. '우리는 프로방스로 간다'고 말하고 다녀볼까. 이 책은 결국 혼자 프로방스에서 100일 동안 여행하며 추억 만들며 즐거웠다는 얘기다. 느리게, 마냥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 26편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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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태수
신문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다. 일제 강저기 신문에 실린 광고를 분석해 당대의 풍경을 되살려놓은 역사서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와 어린이를 위하 글쓰기 교재 <글쓰기 걱정 뚝> 등을 썼다. 첫 저작인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지난 2005년 프랑크퓨르트도서전 주빈국 준비위원회가 심사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 선정되어 독일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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