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을 마친 딸아이는 내년에 대학을 갈 것이다. 아직 대학별로 정시모집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지원은 물론 합격통지서도 받지 못했지만, 내년 2월쯤이면 신입생 등록금고지서를 받을 것이다.
합격통지서를 받기도 전에 등록금 준비를 해야 하는 이 시대의 불쌍한 가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학등록금이 가계에 미칠 영향력이 얼마일지 두렵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2007년 우리나라 국공립대와 사립의 연평균 등록금은 각각 4717달러(약 560만 원)와 8519달러(약 1천만 원)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등록금 경쟁에서는 상위권이지만 대학 경쟁력에서는 하위권을 맴도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등록금 거품이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아파트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등록금에도 거품이 잔뜩 끼어 있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농락하고, 돈으로 서열화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대학 합격 통지서 받기 전, 등록금이 두렵다
80년대 초반 학번인 나는 대학 첫 등록금으로 67만 원을 냈다. 그리고 졸업을 할 때까지 한 학기 등록금은 거의 60만 원대를 유지했고, 등록금의 1/3은 장학금으로, 나머지는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을 할 수 있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당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 평균 30만 원을 받았고, 두 달 아르바이트면 등록금을 낼 수 있었고, 장학금은 도서비로 사용했다.
운이 좋은 때는 그 이상을 벌어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조금 보태주기도 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이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었다.
1989년 정부가 발표한 '대학등록금자율화조치' 이후 대학등록금은 급상승했으며, 현재는 중소기업 부장급 월급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지경에 이르렀다.
학생들이 두 달 정도 되는 방학 기간 중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한 학기 등록금을 충당하려면 사립대의 경우 매달 25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5인 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 부장 직급을 가진 나의 지난달 수입은 220만 원 정도였다. 그러니 일자리도 부족한 현실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한 달 아르바이트로 250만 원을 모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알바해서 등록금 마련할 수 있었던 80년대, 2009년은?비록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긴 했지만,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충당하고 도서비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의 대학등록금 정도가 거품이 없는 대학등록금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대학생의 현실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고 가정할 때 한 달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아르바이트 관련 인터넷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의 경우, 대학생 아르바이트 시급이 4300원으로 되어 있다. 하루에 5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일급 2만1500원이고, 한 달에 64만 5000원을 벌 수 있다. 출퇴근 시간 2시간을 포함하면 아르바이트를 위해 한 달에 210시간이 들어간다. 부대 비용은 차치하고, 시간만으로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강도 높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달 수입 64만 5000원에서 교통비를 제하면 60만 원 정도, 활동비와 도서비 등 최소한의 비용 10만 원이면 알뜰살뜰 모아야 한 달에 50만 원이다. 그렇다면 대학생이 두 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은 100만 원 정도일 것이다. 도서비를 빼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적당한 한 학기 등록금은 100만 원이다.
물론 나의 계산법이지만, 2007년 OECD 통계로 비교해도 대학등록금 거품이 국공립대의 경우 한 학기에 130만 원, 사립대의 경우 400만 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2007년 이후 대학별로 총학생회의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이 있었지만, 꾸준히 오른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대학등록금 거품은 그 이상이다.
이런 대학 등록금 거품은 대학이 재원조달을 함에서 학생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데서부터 기인한다. 게다가 국립대학에 편중된 재정지원으로 전체 대학의 86%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국고보조금 지원율은 4~5%에 불과하다 보니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엄청난 등록금거품이라는 폭탄에 질식하지 않을 수 없다.
취업 후 상환? 대학등록금 거품 먼저 제거해라
오늘날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사회도 '시장근본주의' 가치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것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만 평가되기 때문에, 사회는 물론 대학까지 서열화,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외적인 성장에만 관심을 두면서 존경할 만한 교수는 급감했고,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에서 시간강사들은 또 다른 빈곤층으로 전락한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로인해 백년대계 교육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대학등록금 거품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등록금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를 만들어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미봉책으로 땜질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경제불황의 여파로 대학 등록금 대출은 늘었지만 이를 갚을 능력은 없어 대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청년 채무자, 청년 신용불량자, 개인파산, 심지어 자살로까지 이어졌다. 이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최근 '취업 후 등록금 상환 학자금 대출'을 내놓았지만, 이것 역시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대학등록금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 우선이다.
거품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서민, 약한 자들이다. 거품경쟁에 뛰어드는 순간 거품은 꺼지고, 거품을 일으켰던 이들은 이미 단물을 다 빨아 먹고 사라져 버린다. 버블(거품)과 관련한 말들이 많이 회자한다.
이러한 거품은 그럴듯하게 보이고자 하는 외모지향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기형아이다. 거품등록금은 대학을 교육의 장이 아닌 기업화된 기형대학을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어 학생과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고 있다.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인골탑(人骨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한 학기 대학등록금 100만 원, 야무지지만 참으로 허황한 꿈을 꾼 듯하다. 두 달여 남은 기간, 나는 이 시대 가장으로서 대학생 새내기가 될 딸아이의 입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 2년 뒤 둘째가 대학에 가면, 곱절의 등록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다. 대학등록금 거품이 쫙 빠지는 날을 내 생애에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