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스님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나눌까. 시인과 스님은 이 세상과 이 세상살이를 어떤 잣대로 가늠할까. 시인은 이 세상과 땀내 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이 세상살이를 짤막한 시에 '사리알'처럼 빛나게 담아낸다. 스님은 이 세상과 도덕윤리조차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이 세상살이를 '불교사리'라 불리는 염주알에 굴린다.
시인과 스님 삶을 짤막하게 살펴보자. 시인이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며 아이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을 때 스님은 선방에 홀로 앉아 죽음이라는 화두를 쪼갠다. 시인이 어머니와 자연을 따르며 시를 쓰고 있을 때 스님은 부처를 배우고 간디를 배운다. 시인이 교사를 그만 두고 지구환경을 걱정하고 있을 때 스님은 생명평화운동을 펼치며 순례를 한다.
그런 시인과 스님이 만나 스스로 삶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시골학교 선생이자 <섬진강> 시인으로 평생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김용택 시인과 생명 평화를 화두로 안고 지금도 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도법 스님이 그분들이다. 이들은 지리산을 여덟 번이나 찾은 정용선(경원대 출강)에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정용선은 한겨울에 시작해 봄까지 석 달 동안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뒤 "두 분의 삶은 대단히 대조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며 "스님이 논리적이고 이론적이었다면 시인은 감성적이고 현실적이었다"고 말한다. 왜? 스님은 아름다운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려 했고, 시인은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누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삶, 그 속에 '화두'처럼 웅크려 있는 시와 불도
"애초의 의도는 20세기에서 21세기적인 삶을 살아왔고,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두 분에게 '제대로 된 삶'과 '이 시대의 길'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담의 횟수가 거듭할수록 시대의 길보다는 두 분의 진솔하고 치열한 삶의 여정이 더 두드러지고 감동으로 다가왔다".-'머리말,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을 만나다' 몇 토막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이 말하고, 사진작가 이창수가 찍고, 정용선이 적은 대담집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메디치)가 나왔다. 이 책은 자연을 닮고,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닮고,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을 닮은 한 시인과 오직 한 길, 부처님 말씀을 따라 끝내 부처가 되고 말겠다는 뜻으로 살아온 한 스님이 풀어낸 삶의 조각들이다.
이 책은 모두 여덟 마당으로 짜여져 있다. 첫째 마당부터 홀수 마당은 김용택 시인이 풀어낸 시와 삶 이야기, 둘째 마당부터 짝수 마당은 도법 스님이 풀어낸 불도와 삶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시인과 스님이 서로 만나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담은 멋드러진 컬러 사진도 돋보인다.
'자연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김용택), '죽음이라는 화두를 잡고 선방에서'(도법), '물 흐르듯 행복하게'(김용택), '허무를 넘어 연대로'(도법), '내 시의 원천은 대지와 어머니'(김용택), '진리 실험의 길'(도법), '교사 시인, 지구 환경으로 눈을 돌리다'(김용택), '생명 평화, 민족 평화의 길에 나서다'(도법)에 실린 28꼭지가 그것.
정용선은 시인과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며 사는 길, 생명을 생명으로 존중하며 사는 길, 좁은 자아를 벗어나 진리의 바다로 눈을 돌리는 대승적인 자아의 길,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 길 위에 그가 찾던 '더불어 사는 삶'과 '연대적 삶'이 사이좋게 악수하고 있다.
시인이 곧 자연이자 자연이 곧 시
"나는 마음을 얻고 마음을 사려는 사람이에요. 마음을 얻으면 행복해지는데, 마음은 마음으로만 살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을 줄 준비도 마음을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요. 마음이 없어요. 마음이 없는 텅 빈 껍데기일 뿐이에요".-124쪽, '물 흐르듯 행복하게' 몇 토막
김용택 시인에게 있어서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마음을 얻고 마음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잘 났다고 깝죽거려도 주변 사람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말 그대로 '공수표'를 마구 날리는 꼴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수표는 곧 시인이 말하는 '껍데기'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태어나 학교에 다닐 때부터 농사일을 도우며 넷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살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앞날이 캄캄하게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병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과 아이들 마음까지 찬찬히 읽기 시작한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과 자연, 아이들 마음을 시에 담는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서리하는 모습도 담고, 오리를 기르다 실패하고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할 때 어머니와 헤어지는 모습도 담는다. 섬진강도 시에 담고, 진메마을도 시에 담고, 농촌에 버려진 아이들도 시에 담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시에 담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 자연을 마음으로 읽어내 자연과 하나가 되고, 섬진강을 마음으로 출렁거려 섬진강과 하나가 된다. 진메마을을 마음으로 읽어내 진메마을과 하나가 되고, 농촌에 버려진 아이들과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 마음을 읽어내 그 아이들과 하나가 된다.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섬진강과 진메마을, 아이들이 곧 시인이고, 시가 된다.
부처와 똥과 밥은 다 같이 고마운 존재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부처가 늘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이에요.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문제를 풀었어요. 이 점이 위대한 거예요. 문제가 없는 데서 순탄하게 사는 것은 위대한 게 아니에요."-245쪽, '진리 실험의 길' 몇 토막
생명, 평화를 걸망에 걸머지고 오늘도 가만가만 길을 걷고 있는 도법 스님. 김용택 시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도법 스님은 18세에 출가한 뒤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10년 넘게 선방에서 힘겨운 수행을 했다. 그 길고도 고통스런 수행 끝에 마침내 새로운 생명을 보았고, 평화란 사리를 거머쥐었다.
'죽음'이란 화두와 싸우는 그 긴 수행은 "늘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살았"던 부처님 삶 그 자체였다. 도법 스님이 만약 그때 '죽음'이란 화두와 '한판승'을 뜨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지금 도법 스님 걸망을 보금자리로 삼아 차분하게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생명'과 '평화'란 사리를 쉬이 얻을 수 있었을까.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문제"를 푼 부처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생명을 얻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죽음을 알고 갈등과 대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법 스님은 말한다. "우리는 부처와 똥과 밥이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보면 부처가 귀하듯이 밥이나 똥도 고마운 존재"라고.
'잠자는 염라대왕'을 깨우려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하천과 강물은 몸살을 앓고 있어요. 거의 모든 강과 하천을 정비하고 있지요. 강은 정비 안 하는 게 정비하는 거예요. 강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을 도와주어지, 강물을 뜯어 고쳐 물의 흐름을 사람 마음대로 고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지요. 그랬다가 언제 강에게 진짜 큰 코 다칩니다".-273쪽, '교사 시인, 지구 환경으로 눈을 돌리다' 몇 토막
자연 그대로 쏘옥 닮고, 자연이 주는 크고 작은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시인 김용택. 그는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고향 진메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며, 한번도 진메마을을 떠난 때가 없다. 진메마을이 곧 김용택이었고, 진메마을을 감싸고 있는 자연이 곧 김용택 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지금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정비를 위한 삽질을 시작했다. 곳곳에서 정부에서 벌이고 있는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라며 소매를 걷고 반대하고 있지만 삽질은 멈춰지지 않는다. 게다가 4대강 예산은 아직 국회에서 통과도 되지 않았다. 이 무슨 똥배짱이란 말인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말한다. 강과 하천은 정비를 하지 않는 것이 정비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삽질을 계속하다가는 언젠가는 강에게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그에게 있어, 아니 그 스스로 자연이자 강이 되어버린 시인에게 있어서 '4대강' 정비를 위한 삽질은 '잠자는 염라대왕'을 깨우는 일에 다름 아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내 발로 걷는다는 것은 바로 생명이 온전하게,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행위예요. 침묵하고 꾸준히 걸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 가족, 이해타산, 종교 따위의 거품들, 그 모든 환상들의 정체가 보이게 돼요. 그 정체가 보이니까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게 되고요".-313쪽, '생명평화, 민족평화의 길에 나서다' 몇 토막
도법 스님은 요즈음 '생명평화' '민족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길을 걷고 있다. 그 길 위에는 해인사 등 여러 선방에서 수행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학승들과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에 나선 모습도 비친다. 실상사에 귀농학교를 만들고, 조계종단 개혁불사를 이끌던 모습도 실루엣으로 가물거린다.
도법 스님은 지금 길을 걸으며, 이 세상이 끊임없이 내미는 먼지를 닦고 있다. 그 삶은 부처님을 따라 사는 구도자가 걸어가는 삶이다. 근데도 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말한다. 이 대체 무슨 말일까. 이는 실상이 아닌 허상만 남은 부처, 높고 존귀하게만 모셔진 부처는 한바탕 어지러운 봄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법 스님은 요즈음 환경운동가, 반전주의자, 불교개혁가, 진보적 승려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스님 스스로는 부처처럼 비폭력 평화주의를 더 사랑한다. 까닭에 간디처럼 이 세상에서 진리실험을 하는 그런 스님이 되기를 바란다. 스님이 오늘도 길을 걸으며 환상, 그 뿌리를 싹둑싹둑 자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인과 스님이 쓴 '문학적 자서전', '사상적 자서전'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김용택 시인이 쓴 문학적 자서전이자 도법 스님이 쓴 사상적 자서전이다. 이 책에는 김용택 시인 삶과 시세계가 삶이 구수한 입담으로, 죽비처럼 서늘한 도법 스님 삶과 불도가 샅샅이 그려져 있다. <녹색평론>을 꾸리고 있는 김종철 교수가 그랬던가. "시와 도는 같은 것"이라고. 까닭에 이 책은 '시=도'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우리시대 경전과 같다.
어릴 때부터 소설책,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던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1982년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21인 신작시집>에 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래서 당신>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작은 마을>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인생>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성장소설 <정님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동시엮음집 <학교야, 공 차자>, 시엮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등이 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 받음.
지리산 실상사 주지스님인 도법 스님은 1949년 제주에서 태어나 18세 때인 196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1969년에는 해인사 강원을 거친 뒤 13년 동안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선수행을 했다. 1987년에는 금산사 부주지를 맡았고, 1990년에는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개혁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었다.
1995년부터 실상사 주지를 맡고 있는 스님은 인간화 생명살림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1998년 실상사 소유의 땅 3만 평을 내놓아 귀농전문학교를 설립했다. 펴낸 책으로는 <화엄경과 생명의 질서> <길 그리고 길>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등이 있다. 2003년 <교보환경문화상> 대상, 제5회 <인제인성대상>, 2008년 <포스코 청암상 봉사상>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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