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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드라마에서도 현실적인 시어머니 상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극소수일 뿐 대다수 8,90년대에 머물러 있다.
가끔 드라마에서도 현실적인 시어머니 상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극소수일 뿐 대다수 8,90년대에 머물러 있다. ⓒ kbs, imbc

드라마 속 캐릭터 가운데 유독 이해가지 않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주로 주말드라마 혹은 아침드라마, 일일 드라마에 고정적으로 나온다. 드라마의 내용이 달라도, 배우가 달라져도 캐릭터의 성격은 비슷하다. 주로 드라마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캐릭터이다. 누굴까?

 

바로 대한민국의 '시어머니'다. 주말드라마와 아침드라마, 일일드라마의 단골 캐릭터인 이들은 드라마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악의 축'이다. 드라마에서 악녀는 아니지만 어쩌면 악녀보다 더 못된 존재가 시어머니일지도 모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TV 속에 등장하는 시어머니 모습에 공감이 갔다.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친구들과의 수다 절반이 시집 식구 흉보기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시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아 내 처지랑 비슷하구나'하며 공감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의 시어머니 모습을 TV 속 시어머니들과 동일시하며 흉보는 재미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거에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다소 불편해도 현실이 그렇기에 어느 정도 수용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인 요즘도 드라마 속 시어머니는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극악무도한 시어머니 모습까지 등장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닐까?

 

아들 가진 자, 유세를 떨고 싶을 대로 떨어라!

 

 아들을 가진 자, 시어머니는 유세를 떠느라 바쁘다.
아들을 가진 자, 시어머니는 유세를 떠느라 바쁘다. ⓒ sbs, imbc

TV 속 드라마의 시어머니를 보면 일단, 아들이 있는 든든한 마음 때문인지 마치 금은보화를 가진 것처럼 유세를 떤다. 그래서 늘 드라마 속 결혼은 쉽사리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선다. 이유는 단 하나, '왜 내 아들이 너 같은 애랑 결혼을 해야 하니?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여기에 은근슬쩍 빈부격차를 삽입해 돈을 바라보고 한 몫 잡으려는 여자라 단언하고 시어머니가 될 사람은 여자를 불러내(요즘 들어서는 여자의 엄마 앞에서도 이런 일을 행한다) 돈 봉투를 쥐어준다. 그리고 아량을 베풀 듯 자리를 뜨고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따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키웠는지 하소연 한다. 그러면 한 풀 꺾인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면서 어머니 마음을 양해해 달라 호소하고 기필코 결혼하리라 다짐한다.

 

일례로 SBS 아침드라마 <망설이지마>에서는 이정수(이혜숙)는 자신의 아들 최민영(김영재)과 오랜 연인 사이였던 장수현(이태임)이 임신했다고 하자 상견례 자리를 잡아서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돈봉투를 내민다. 역시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드라마 속 시어머니를 보면 자신의 아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표면상의 이유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심리는 우리나라 부모가 자식들에게 유달리 정성을 쏟고 자식을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속물인 어머니들이 그렇게 많을까.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속물근성이 철철 넘친다. <망설이지마>는 그나마 자식을 위한 마음이라고 속내를 감추지만 <보석비빔밥>에서 피혜자(한혜숙)은 노골적이다. 자신의 아들 산호(이현진)가 떡집 딸과 결혼한다고 하니 결사반대를 부르짖다 교수의 자녀라고 하자 금세 결혼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강지(정유미)네 부모 말을 듣고 결혼을 반대하며 자신의 큰 딸 비취(고나은)의 뺨을 때리기까지 한다. "외무고시 합격하면 잘난 여자들이 줄을 설텐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급기야 남들 다 입어보는 모피코트 하나 못 입어보겠다며 한탄을 한다.

 

대부분의 TV 드라마 속에는 아들 가진 시어머니는 결혼을 반대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갈등을 빚고 아들과 그의 연인 사이를 오가며 발 빠르게 대처한다. 하지만 결국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부모의 특성상 결혼을 승낙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유세를 떨기 시작한다. 며느리가 하는 행동에 잔소리를 시작으로 비하발언도 서슴없이 한다.

 

나의 욕심을 차리기 위해 물불 안 가린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아들의 결혼까지 이혼을 몰고 가는 드라마 속 요즘 시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아들의 결혼까지 이혼을 몰고 가는 드라마 속 요즘 시어머니들의 모습이다. ⓒ sbs,imbc

이젠 그뿐이 아니다. 자식의 결혼생활까지 파토를 내는 시어머니도 등장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자식을 이혼으로 내몰고 다시 자신이 원하는 여성과 결혼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어머니가 드라마 속에 넘쳐난다.

 

아침드라마 <멈출 수 없어>에서 임봉자(정애리)는 아들 이병주(원기준)와 홍연시(김규리)의 결혼을 반대하더니 끝내 이혼까지 시키는 막돼먹은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일일드라마 <아내가 돌아왔다>도 마찬가지다. 박여사(선우은숙)는 이미 5년 전 유희(강성연)와 자신의 아들 상우(조민기)와 이혼을 시킨 바 있다. 그리고 유희가 돌아오자 모든 죄를 유희에게 돌린다. 박여사는 자신의 남편이 죽은 것도, 서현(윤세아)의 아버지가 쓰러진 것도 모두 유희에게 돌린다. 그래서 유희가 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박여사는 자신의 아들을 회장자리에 놓기 위해 즉, 자신의 속물적인 근성을 채우기 위해서 아들을 이용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시어머니는 불과 2~3년 전의 <겨울새>에서 강여사(박원숙)가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시어머니가 얼마나 존재할까? 물론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처럼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시어머니는 드물다.

 

한 마디로 시청률 하나를 올리기 위해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들의 행동을 보면서 공감하기 어렵다. 특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다.

 

8∼90년대 모습에서 한 발도 못 나간 TV 속 시어머니들

 

그렇다면 현실 속 시어머니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실시한 2008년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국내 60세 이상 노인 1만5000명)의 70%는 '노후에 자녀와 동거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상 자식과 함께 살아야 하고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부양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던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변화다. 특히 반대로 '부모와 살겠다'는 자식은 50%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 조사를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가 자식을 독립된 인간으로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 시어머니와의 동거를 생각하는 며느리가 늘어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욱이 경제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요즘 손자를 돌봐주는 시어머니 덕분에 여러 모로 혜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요즘 시어머니들은 손자가 귀엽고 깨물어 줄 정도로 사랑스럽지만 돌봐주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현실은 이러한데 TV 속 드라마의 시어머니는 여전히 8∼90년대의 모습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며 현실과 더 멀어져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현실성을 반영한 시어머니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는 잘난 며느리 덕분에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살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상 요즘 자식과 동거하면서 손자를 봐줘야 하고 집안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어머니들이 많다. 즉, 젊어서 시집살이를 했는데 말년에 며느리살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인 시어머니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결혼을 반대해도 며느리가 착하고 성실해 서서히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했던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김혜자)나 <솔약국집 아들들>의 옥희(윤미라) 같은 시어머니도 있었다. 또한 자식이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지만 내조를 잘 하는 며느리에게 잘 해주는 <사랑해 울지마>의 수자(김창숙)도 있긴 했다. 특히 아주 현실적인 <태희혜교지현이>의 시드래곤 용녀(선우용여)처럼 잔소리도 하지만 정이 쌓여 딸처럼 의지하는 캐릭터도 등장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존재다. 안방극장에서 사랑받는 드라마들이 현실 속 시어머니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드라마로 성정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송고합니다. 


#아내가 돌아왔다 #시어머니 #멈출 수 없어 #망설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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