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저출산에 관한 문제가 매일 나오고 있다. 그럴 때마다 결혼 1년 차에 접어든 나는, 높으신 분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정말 큰 일이다', '빨리 아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보다 출산을 미루기 잘한 것 같다는 안도감이 앞서니 말이다.
왜 아기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이 사회의 가장 문제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내 또래 사람들의 생활패턴이나 가치관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88만원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기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걸 저출산 대책이라고, 워워워~
경제적인 준비없이 아기를 낳은 뒤 유치원비, 이유식 비용을 대지 못해 고생하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봤다. 어디 그뿐인가. 직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육아로 고생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온 직장맘들은 전화통을 수시로 들고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고 숙제를 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다.
한 번은 아이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자, 주변에 사는 전업주부 엄마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좀 찾아달라고 사정하면서 눈물바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걸 옆에도 보는 나도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속이 상했던 경험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그냥 육아에 전념하시지 그러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급여가 250~300정도인 여자 상사들은 아이의 학원비나 베이비 시터 비용으로 150~200만원 이상을 쓰고 있다. 부부 중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면 당장 생활이 궁핍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아이들 학원도 보내지 못할 것이고, 한 달에 한 번 외식도 어려워질 것이다. 직장생활 15년이 넘는 그녀들의 월급에 채 미치지 못하는 88만원 세대인 내가 그녀들과 함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남편 역시 직장에서 육아로 걱정하는 남자동료나 직장 상사들을 보면서, 아기 키우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다. 남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안정을 찾는데 20대 후반~30대 초반을 다 보낸다.
이것도 그나마 적성에 맞는 일과 적정한 급여를 주는 직장을 잘 잡았을 때의 이야기지, 그렇지 않을 경우 수시로 이직을 고민하면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취업포털사이트를 뒤지게 마련이다.
"아이는 하나만... 돈을 주면 줬지 애는 못 본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 때문에 불합리한 처우와 상황을 모두 참아가며 회사를 다녀야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책임감 강한 가장이라기 보다는, 육아라는 족쇄를 찬 회사의 노예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시부모님도 3남매를 키우며 자수성가 하셨지만, 나에게는 "아이는 하나만 낳으라"고 조언하신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절대로 어머니에게 아기를 맡길 생각은 하지 말라고 3남매 모두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동안 3남매 키우랴, 맞벌이 하랴 고생하며 살았는데 손주들 키우며 고생하는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고, 혹시라도 어머니가 손주가 예뻐 키운다고 하시면 이혼할 거라고 확실하게 육아 문제에 못박으셨다. 차라리 유아원비를 주면 주었지, 아이를 맡지는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시어머니께서도 얼마전 뉴스를 보니, 손주를 맡아 보던 시어머니가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가게되자 자책감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더라며 노년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 문제인지를 말씀하셨다.
아이를 낳기 전엔 이런데, 막상 낳고 보면 엄마가 키우거나, 아니면 노년의 부모님이 키워줘야 안심이 되는 게 현실이다. 여건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길 때면 '시설의 환경이 깨끗하지 않으면 어쩌나', '아이가 나도 모르게 학대를 받지는 않을까' '급식이 엉터리이면 어쩌나' 고민을 하게 된다.
조금이나마 저렴한 시설에 맡기면 이 고민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길, 엄마 옆에 있겠다는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나올 때면 엄마의 가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눈에는 한이 서린다. "내가 무슨 큰 돈을 번다고, 이렇게 아기와 매일같이 생이별을 하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게 지금의 현실이다.
"다 마음에 드는데 아기는 언제쯤"
결혼 후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나의 경우, 면접시 '출산' 문제는 늘상 장애물이 됐다. 결혼을 했다고 하면 "그럼, 아기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물어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면접관만 있지, "우리 회사는 육아를 하며 다니기에 괜찮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한 곳에서 "육아를 하면서도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며 일하기를 권유를 했지만, 월급이 50만원도 되지 않는 프리랜스 자리였다. 아직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 나도 이렇게 새직장 구하기가 힘든데, 아이가 있는 주부들이 취직을 하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들까.
지금까지 수많은 저출산 대책, 정책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내 주변의 직장맘, 전업 주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육아에도 지쳐서 늘 피곤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피임을 오래하면 막상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생기니 피임을 하지 말고 생기면 낳아라", "아기들은 다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나니 너무 걱정 말아라"며 대책없는 조언을 한다.
더 나아가서 아이를 낳지 않는 요즘 세대들을 죄인 취급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는 결코 88만원 세대 탓도 아니고, 책임져야할 문제도 아니다.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나도 단순히 애를 낳아 기르기만 해서는 자녀가 사람 대접을 받기 힘들 것 같아서 더욱 출산이 겁이 난다. 유치원부터 영어공부에 시달리며, 학원이란 학원은 다 다녀야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학원이나 어학연수조차 보내지 못하면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원망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출산 즉시 고생 길이 열리는 것이 훤히 보이는 지금, 28~35세 여성에게 '저출산'은 더이상 '내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니다. 88만원 세대에게는 저출산문제 보다, 출산 후의 일이 더 걱정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출산은 당분간 보류해야 할, 더 생각하기 싫은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