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안과에 접수되는 인사청문요청안은 하나다. 하지만 배부문서가 국회만은 '심사용'과 '배부용' 둘이다. 차이점은 공직후보자가 소유했거나 소유한 부동산 토지지번과 아파트 동호수 삭제 여부다. 지난 2008년 9월 이명박 행정부의 구두요청 이후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근거법령은 없다.
공직후보자 검증 무력화 시도는 불발근거법령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9월 17일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내용 중 하나가 바로 '토지 지번 생략'이다. 당시 정부는 '개인정보 및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현행 건물의 지번 생략과 동일하게 토지 지번을 생략하고 공개'한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윤리담당관실 관계자에 의하면 입법예고 기간 중 해당 조항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이 제기됐다고 한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재산심사를 위해 해당 지번과 아파트 동호수를 현재와 같이 공개하여 시민단체나 국민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입법예고된 개정안에서 해당 규정을 뺀 나머지 조항에 대해서만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를 통과, 지난 11월 23일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이 실시됐다.
하위법령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만들려던 정부의 계획은 어긋났다. 하지만 2008년 9월부터 몰래 진행되던 인사청문요청안 이중서류 배포는 여전하다. 11월 25일 국회에 제출된 강경근 중앙선관위원 인사청문 요청안은 두 가지다. 먼저 청문위원이 아닌 의원에게 제출된 요청안에서는 '토지 지번'과 '아파트 동호수'가 삭제되어 있다. 경력증명서나 주민등록초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직후보자의 주소, 아파트 동호수는 왜 중요할까?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려는 명백한 불법이다. 법적 근거 없이 단일한 '인사청문요청안 공문서'를 이중으로 배부한 것은 공문서 변조라 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목적은 공직후보자의 부동산 토지 지번 및 아파트 동호수를 최대한 감추어 탈세/위장전입 등에 대한 검증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명박 행정부 취임 이후 공직후보자들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필요한 '전문성·도덕성·중립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위장전입·논문표절·탈세·병역기피'는 기본항목이라는 것이다. 후보자의 주소, 아파트 동호수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먼저 '다운계약서'를 통한 세금 탈루를 밝힐 수 있는 근거다. 개별 부동산 거래 당시의 공시지가나 실거래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동산의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부동산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다. 경기도 인근 임야나 토지 등에 있어 인공위성 사진 등을 통해 주변 개발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투기 목적 부동산 거래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강경근 중앙선관위원 후보자의 사례에서 보자. 강경근 교수는 주민등록등본 상 1980년대 후반 서울 사당동의 영아아파트에 4차례에 걸쳐 전입신고가 되어있다. '배부용' 자료에는 아파트 동호수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해당 아파트가 동일한 부동산인지 여부를 '배부용' 자료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
국회사무처, 국회의원의 입법활동 보조기관? 정부 구두요청 실행기관?더욱 큰 문제는 이와 같은 공문서 이중서류 작성, 배부사실이 국회사무처의 적극적 협조를 통해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 경과를 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이라는 공문서 이중서류 배부의 시작은 정부의 구두요청이다. 이와 같은 요청에 국회사무처 의사국 일부 직원들은 구수회의(鳩首會議)를 통해 2008년 9월 중앙선거관리위원후보자 오세빈의 인사청문요청안부터 제한적으로 배부할 것을 결정했다. 이같은 회의 결과는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는 물론 국회의원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국회사무처의 불법은 4개월여가 지난 올해 1월에야 발견됐다. 불법배부 사실을 뒤늦게 안 야당은 국회사무처의 전횡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사무처는 인사청문요청안을 접수·배부함에 있어 공직후보자의 부동산 재산의 지번을 임의로 누락시켰다. 이는 인사청문회법을 위반한 불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1월 29일, 민주당 유은혜 부대변인 논평)"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인사청문자료 인쇄물을 2종으로 나누어 배부하게 된 것은 인사청문제도의 제도적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사청문자료에 포함된 개인정보 관리와 관련된 일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1월 29일, 국회)"라며 반박브리핑을 했다. '최소한의 조처'라면서 왜 그와 같은 내용에 대해 사전공지나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지 않았을까?
입안지원시스템에 배치된 '인사청문요청안'
국회사무처는 09년 6월부터 입안지원시스템을 통해 인사청문요청안의 '전자문서 배부'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인사청문요청안 불법이중배부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은 지 무려 5개월이 지난 후부터다. 물론 이때에도 '이중배부'의 도입 배경 및 양 서류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안내되지 않았다. 인사청문요청안이 '입안 지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불법 시비를 차단하려는 국회사무처의 면피용 시스템 도입이 아닐 수 없다.
국회 의안과 담당자는 최근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이 통과되지 못하는 등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이중문서 배부의 문제점에 대한 필자의 지적이 타당함을 인정하면서, 이후 인사청문요청안부터는 청문위원이 아닌 국회의원에 대한 배부문서와 전자시스템 상의 문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안내문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안내문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 단일 공문서의 이중배부가 합법화될 수 있을까? 인사청문회요청안은 온전히 국회의원 전체에 제출되는 문서다. 청문위원만의 문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사청문결과에 대해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되거나 의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 없는 인사청문요청안 이중배부, 즉각 중단해야
인사청문요청안 '이중배부'로 인해 최근 임명동의안만 보더라도 그 기재방법이 다르다. 지난 9월 9일 제출된 정운찬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에는 '토지지번과 아파트 동호수'가 모두 삭제되어 있는 반면, 같은 날 제출된 주호영 특임장관 인사청문요청안에는 토지지번은 기재되어있고, '아파트 동호수'만 미기재되어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 삭제조치의 증거물이다.
국회사무처의 불법은 지난해 9월 시작된 이후 4개월 뒤인 올해 1월 야당으로부터 당장 시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불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입법부'를 보조하는 국회사무처가 '불법 국회사무처'가 된 것이다.
국회사무처의 '불법'을 합법화시키려던 정부의 시행령 개정은 불발됐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한 국회사무처의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국회사무처는 인사청문요청안을 이중배부한 불법적 행정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관련법령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방해한 이중서류 배부의 책임을 묻는 것 역시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