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가 그리운 계절이 돌아왔다. 김치찌개는 손발이 시리고 입김이 호호 나는 추운 날, 오래 묵은 추억처럼 떠오르는 음식이다.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라 불러도 '안티' 걸 사람이 별로 없는 김치찌개는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즐기는 정말 맛 좋은 겨울철 음식이다. 그렇다고 봄이나 여름, 가을에 김치찌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그런 말은 아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치찌개는 겨울철에 땀 뻘뻘 흘려가며 먹어야 제 맛도 나고, 추위까지 가시게 한다는 그 말이다. 김치찌개는 부드럽고 촉촉하게 씹히는 묵은지와 쓰린 속까지 시원하게 풀어주는 얼큰한 국물, 씹을 틈새도 없이 미끄럽게 술술 넘어가는 당면, 쫄깃쫄깃 구수하게 씹히는 돼지고기 맛이 으뜸이다.
김치찌개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짱'이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 웬만한 식당 차림표에 김치찌개가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은 김치찌개는 된장찌개와 더불어 가난한 서민들 건강을 지켜온 고마운 음식이다. 하지만 김치찌개가 언제부터 우리 밥상을 휘어잡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1600년대 고추가 우리나라 음식 재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김치와 함께 나타난 것으로 어림짐작된다. 사실, 김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붉으스레한 김치는 고추와 더불어 나타났다. 까닭에 김치찌개도 이때부터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치찌개 즐긴 '김치대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생전 김치찌개를 아주 즐겼다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생김치나 묵은지를 좋아한 게 아니라 적당히 발효된 김치를 좋아했으며, 이 김치에 돼지고기나 멸치를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를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닭에 김 전 대통령을 가까이 모신 분들은 김 전 대통령을 '김치대장'이라 불렀다고 알려지고 있다.
1960~70년대. 나그네(글쓴이, 59년생)가 어릴 때 우리 마을(지금, 창원시 상남동)에서도 겨울철이면 집집마다 늘 밥상 위에 오르는 음식이 김치찌개였다. 그때 우리 집이나 우리 마을에서 만든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멸치 맛국물이나 쌀뜨물에 묵은지를 넣고, 파, 마늘, 양파 등 갖은 양념을 넣고 푹 끓이면 그만이었다.
간혹 김치찌개에 고등어나 조기 등을 넣을 때도 있었다. 이는 우리 마을이 바닷가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금값처럼 비싸고 귀했다. 마을에 결혼식, 회갑연 등 큰 잔치가 벌어지거나 초상이 나지 않으면 좀처럼 맛 볼 수 없는 게 돼지고기였다.
나그네는 그 때문에 스무 살 허리춤 때까지도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목살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1980년대 허리춤께 서울에 올라온 뒤 가까운 문우들과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켜 먹기 시작하면서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더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가끔은 어릴 때 먹었던 그 김치찌개가 그립기도 하다.
추억이 떠오르는 구수하고도 얼큰한 김치찌개
11월 28일 토요일 저녁 무렵, 상추와 잡곡 등 늘상 먹는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가까운 동원시장(중랑구 면목동)에 가니 아주 익숙한 냄새가 입맛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동원시장 바로 곁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치찌개를 정말 맛나게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어릴 때 자주 먹었던 김치찌개에 얽힌 기억이 실루엣처럼 떠오르면서, 지난 해 언론인이자 시인인 윤재걸(62) 선배와 함께 자주 먹었던 그 김치찌개가 '환장'하도록 먹고 싶었다. 나그네는 잰 걸음으로 동원시장에 가서 돼지 목살과 두부, 당면부터 먼저 샀다. 오늘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김치찌개를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 나그네는 구수하고도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에 침을 꼴깍 삼키며, 서둘러 집으로 와 냄비에 국물 멸치와 다시마, 양파, 파뿌리, 매운 고추를 넣고 멸치 맛국물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김치찌개 맛국물로는 쌀뜨물도 좋지만 나그네는 구수한 맛이 감도는 멸치 맛국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김치찌개 참맛은 멸치 맛국물이 포인트
김치찌개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재료는 묵은지와 돼지고기 목살, 당면, 두부, 대파, 마늘, 양파, 매운 고추, 생강, 소주, 후춧가루, 고춧가루, 소금을 준비하면 된다. 김치찌개를 조리할 때 누군가 왜 하필 꼭 묵은지를 넣어야 하느냐 묻는다면 그에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싶다. 그대는 묵은지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맛 천국이라는 전라도에 가면 왜 밥상 위에 꼭 묵은지가 올라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라면을 끓이거나 막걸리를 마실 때 생김치와 적당히 익은 김치, 묵은지를 함께 먹어보라. 어느 게 더 맛이 기똥차게 맛있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적당히 익은 김치를 더 좋아했다고 하지만 나그네는 이 세상 김치 중 새콤달콤한 묵은지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멸치 맛국물이 우러날 동안 묵은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촘촘촘 썰어 냄비에 담는다. 이때 적당히 찌그러진 노란 양은 냄비가 빨리 끓기도 하고, 추억까지 떠올라 더 좋지만 나그네는 노란 양은 냄비가 없어 일반 냄비를 썼다. 그 다음, 돼지 목살을 적당히 잘라 묵은지 위에 얹고, 두부 반 모를 네모나게 썰어 넣는다.
여기에 고춧가루,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 고추, 마늘과 생강 다진 것, 소주 한 스푼을 넣고,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 뒤 잘 버무려 묵은지와 두부가 든 냄비에 얹는다. 이어 멸치 맛국물을 재료가 잠길 만큼 붓고 센 불에 팔팔 끓인다. 김치찌개에서 허연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당면을 넣고, 소금을 적당히 넣어 다시 센 불에 5분 정도 팔팔 끓이면 끝.
김치찌개를 끓일 때 입맛에 따라 사이다를 한 스푼 넣어도 새콤달콤한 맛이 혀끝에 착착 감긴다. 김치찌개에 당면을 넣고 다시 센 불에 끓이는 까닭은 당면이 부드럽게 풀어지기 위함도 있지만 그렇게 끓여야 김치찌개가 걸쭉해지면서 혀를 은근슬쩍 농락하는 단맛까지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철, 속풀이는 물론 감기까지 뚝 떨어지게 하는 얼큰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더욱 좋은 대한민국 대표 음식 김치찌개. 창원에 처자식을 남기고 홀로 서울에 올라와 사는 홀아비가 만드는 '기러기 아빠표' 김치찌개. 제법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슬슬 파고 드는 12월 들머리에 맞이하는 저녁, 얼큰하고 '썬'한 김치찌개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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