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대설입니다. 그런데 눈다운 눈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예년 평균기온은 0.9도인데 어제 평균 기온은 6.2도, 어제 최저 기온은 3.3도로 예년 평균 기온보다도 높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저기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기똥풀이 손바닥보다 크게 올라와 꽃을 피우려 하고, 쇠별꽃 꽃이 피고, 목련의 겨울눈은 두툼한 외투를 벗어던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만발한 것은 아니지만 개나리도 피었고, 철쭉도 피었더랍니다.
눈다운 눈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날 군고구마 후후 불며 먹던 이야기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고구마를 구워 먹기로 했습니다. 일년에 한 번쯤 꼭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오늘을 무척이나 기다려왔습니다. 몇 주 전부터 약속을 해서 아침부터 오늘 고구마를 구워먹는 날이라고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찌나 들뜬 마음이었는지, 점심을 후딱 먹고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모으며 고구마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몇 번 해 본 터라 나뭇가지, 솔가지 등을 모아놓고 불을 지피고, 부채질을 하고, 연기가 나면 피하고 하며 불을 피웠습니다. 가래떡을 구울 때와 비교도 안되게 많은 숯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법 굵은 나무들을 많이 쌓아 놓고 불을 지폈습니다. 고구마를 종이 포일에 싸서 준비했습니다. 빨리 익게 하려고 고구마를 반쪽씩 잘라 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숯불이 준비되었다 싶어서 숯불 위에 고구마를 넣고 덮어 주었습니다.
불을 지키는 5학년 형님들만 남고 우리는 안에 들어가서 절기 공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웬 사이렌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119 소방대가 출동한 것입니다. 우리가 불을 피울 때 연기가 많이 나니까 그걸 보고 주민이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얼른 달려 나갔습니다. "불 난거 아니고요, 고구마 구으려고 불 피운 거예요. 지금은 불 다 꺼졌는데요"라 했지만, 책임감 강한 우리 소방대원 아저씨들은 극구 고구마를 굽고 있는 현장까지 오셔서 모래를 몇 삽 퍼서 올리고 가셨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알아서 잘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한 번 신고가 들어온 이상 '확인 사살'을 해야 한다고 하니, 참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방차에서 우르르 소방대원들이 내리니까 여기저기로 도망갔지요. 책임자로 보이는 한 분께서 "요즘에는 고구마 구워먹는 재미도 낭만도 없는 시대"라며, 어쩔 수 없다고, 죄송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으시기에, 대안학교라고 했더니, "그래서 아이들이 저렇게 밝구나" 하십니다.
소방차가 돌아가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방대원 아저씨들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지요. "요즘은 고구마 구워 먹는 낭만도 없는 시대"라고 하신 말씀을 전해 주었지요. 신고한 주민에게 우리가 뭐라 할 수도 없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고구마는 못먹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무엇보다 진심 어린 소통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구마 대신 다른 간식을 먹고 불 피운 곳으로 갔습니다. 모래를 뿌리긴 했지만 숯으로 덮어 두었고, 포일로 싸 놓았으니 고구마가 익었으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지요. 모래가 너무 차서 그런지 숯이 금방 열기를 잃어서 고구마가 잘 익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잘 익은 놈을 골라서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한 번 더 구워 먹자고 합니다. 맛은 있는데 양이 너무 적어서 안되겠다고, 다음에도 소방차가 오면 사인해 달라고 하겠다고 합니다.
고구마 구워 먹을 재미도, 낭만도 없는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그런 낭만을, 그런 재미를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해보자, 그때는 사인을 당당하게 받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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