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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최대 관심사는 재테크

요즘 재미 있다고 소문난 <남녀탐구생활>이라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이 있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와 생활에 대한 비교를 하는데 보고 있으면 "정말 그래"라고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프로그램에서 10대부터 60대까지 여자의 최대 관심사를 분석했는데 10대는 연예인, 20대는 옷, 화장품, 명품과 그것을 사 줄 남자. 30대는 성형수술과 피부노화, 50대는 자랑(자식, 남편 등) 60대는 건강이었다.

40대 여자는 자식교육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가 '재테크'가 차지했다. "아뿔사 남편 몰래 사놓은 주식이 폭락했어요. 하지만 이내 당당해져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이정도 사는 것도 다 내 재테크 덕이라 믿기 때문이에요"라는 성우의 내레이션은 재테크를 해야만 한다는 주부들의 강박관념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일 것이다. 이것을 보고 나니 얼마 전 주부들 대상으로 하는 경제교육 강의에서 만난 한 주부가 생각났다. 강의가 끝난 후 한 주부가 다가와 하소연한 내용이 "재테크"가 주부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부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작지만 집도 있고, 빚도 없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어리고 남편은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게 될 지 알 수 없죠. 그래서 늘 돈 때문에 불안하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결국 나라도 좀 보태야겠다라는 생각에 부업으로 구슬꿰기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건 하루 종일 눈 아프게 해 봤자 겨우 만 원 정도 벌이 밖에는 안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는 돈 모으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가 경매는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좀 사서 읽어봤어요. 책을 보니 주부들도 손쉽게 할 수 있는 투자방법이라고 하니 경매를 좀 배우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쩐모양처를 동경하는 진짜 이유

쩐모양처는 현명함을 뜻하는 "현"(賢) 보다는, "쩐"(錢) 즉 돈을 잘 벌어야 좋은 부인이자 어머니라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열심히 알뜰살뜰 돈을 관리하고 사는 것은 이미 좋은 주부의 자격도 아니고 더 이상 이들의 관심사도 아니다. 쩐모양처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이 시대 주부의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매강의에는 주부들이 넘쳐난다. 증권사 객장과 투자설명회에도 주부들이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평범한 주부에서 재테크 스타가 된 사람들의 성공신화를 동경하며 재테크, 경매 동호회를 가입하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열심히 스터디도 한다.

이러한 쩐모양처의 이면에는 "돈에 대한 욕구" 뿐만 아니라 주부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욕구도 분명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육아 등 이유로 인해 사회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에게도 분명히 육아와 살림 이외에 자기실현 욕구들이 존재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과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도구로 경매와 주식이라는 재테크를 삼지 않았을까? 재테크를 통해 돈까지 벌 수 있으니 명분도 충분히 훌륭하다.

이렇게 쩐모양처로 주부들을 내모는 분위기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재테크 대열에 참여한 주부들이 처음에 원했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소위 대박이 나기 위해서 지금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은 주식 아니면 부동산이다. 일단 선택한 후 내 일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주식의 오르내림에 따라 매일매일 희비 쌍곡선이 그려질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어떨까? 부동산 특성이 몇 백만 원으로 할 수 있는 투자가 아니다 보니 여유자금이 없다면 필수로 부채가 따라붙는다. 팔구 싶다고 해서 내 맘대로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채 이자와 씨름하고 안 팔려서 고민하면서 여기에 따른 부담과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돈"만 벌 수 있다면 모든 스트레스는 상쇄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를 내 존재의 의미에 두어 보자. 재테크 과정과 결과에 내 일상의 희로애락이 결정되어 버리는 그런 삶이 정말로 우리가 동경하고 닮고 싶은 그런 삶일까? 재테크에 성공해서 돈을 벌었다는 그 사실이 정말로 "내 존재의 의미"가, 더 나아가 내 인생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주부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꿈과 계획이다

쩐모양처가 이 시대 주부들 로망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슬픈 것은 오로지 "돈"으로만 존재의 의미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 즉 주부들이 스스로 원하고 바라는 인생의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 때문이다. 주부들에게도 당연히 하고 싶은 일과 꿈이 있을 것이다. 지금 육아와 살림이라는 이유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어 가슴 속 한 구석에 담아둔, 지금은 그저 상상만으로 만족하는 내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화려한 커리어우먼은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작고 소박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적지만 돈도 벌 수 있는 그런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교육과 재무상담을 하다보면 이렇게 스스로의 꿈을 가지고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는 주부들을 드물지만 만날 수 있다.

한자와 한문을 좋아해서 한자지도교사가 되겠다고 준비하는 50세 어머님도 있다. 요리가 취미인 한 주부는 40세가 되면 초보 주부를 위해 집에서 요리스쿨을 열 계획을 세우고 블로그에 자기가 만든 요리를 열심히 올려놓고 있었다.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꿈인 한 어머님은 50세 나이에 사이버대학 노인복지학과에 입학하셨다. 2자녀를 둔 한부모 엄마는 5년 후 창업을 목표로 지금 밤새워 떡만들기 과정을 공부하면서 본인의 인터넷 카페를 열심히 운영하고 있었다. 이 주부들 모두 돈이 많아서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가는 분들이 아니다. 오히려 소득만으로 본다면 저소득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인생을 꿈꾸고 가꿔가는 분들이다.

막상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것, 꿈을 꾼다는 것이 막연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2-3년 안에 뭔가를 이뤄내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일단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분야에 대해서 내가 좀더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찾아보고 탐색하는 것이다. 꼭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도래한다. 그 때가 되면 아이를 독립시킨 55세 이후 45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육아에 살림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지만 막상 그 때가 되었을 때 내 삶은 어떨까 상상해 보자. 손자, 손녀 돌보고 뜨개질만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고 내 인생은 너무 소중하다.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이 평생 지속될 수는 없다. 오늘부터라도 내 꿈이 뭔지, 나를 위한 삶은 어떤 것인지 내가 바라는 미래는 무엇인지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돈"에 모든 가치를 두는 쩐모양처의 삶보다는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노력하는 현모양처의 삶이 오히려 이렇게 오래 사는 시대의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테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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