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건 목인데 마음이 먼저 아프다. 해임, 정직을 내리기 위해 칼날을 휘두른 인천시 교육청의 손목이 딱하다. 그 손 뒤에는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으면서 교육청의 자율적 결정 운운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 징계가 교과부의 뜻일까? 그것도 아니다. 교과부는 이번 징계가 법률적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6월, 시국선언이 단순 의사 표명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의사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어 국가공무원법과 교원노조법 상의 집단행위 금지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법률 검토 의견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다. 그럼에도 무리한 징계를 강행한 배후에는 최고 권력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징계를 '하청 징계', '청부 징계'라고 부른다.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면 제도화된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권력의 오작동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장치다. 하지만 이번 징계 과정에서 최고 권력은 교육 자치의 촘촘한 거름망을 찢어버렸다. 행정 권력의 오판을 시정해 줄 수 있는 사법 권력의 판단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교과부는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후 사법적 판단을 보고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경기교육감에게 '고발' 운운하며 겁주고 있다. 순리에 맞게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교육감을 겁박해 교육 자치의 수장이 운신할 자리를 빼앗고 있다. 지방교육자치단체가 중앙권력의 하청업체화 되면 교육감이 행사해야 할 인사권, 징계위원장에게 있는 고유한 판단권, 징계위원 개개인의 소신은 설 자리가 없다.
주민 목소리에 귀막은 '그들만의' 교육자치시대교사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교과부는 시·도 부교육감들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파면', '해임', '정직' 이라는 형량을 결정했다. 시·도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한 월권이며, 교육자치단체별로 구성되어 있는 징계위원회를 무력화시킨 초법적 행태였다.
그후 각 시·도교육청 별로 진행한 절차는, 죽여 놓고 이유 짜 맞추는 격이었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시교육청에 항의하자 정부에서 하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교육자치 시대에 교육감에게 준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왔으나 권력을 쥔 이는 그 힘이 중앙정부에서 나온다고 여기고 있다.
시민을 먼저 의식할 경우, 이 일이 징계를 할 사안인지, 절차는 타당한지부터 물었어야 했다.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으니 지시를 잘 이행할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게 된다. 징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징계 교사들의 반발에는 어떻게 대처할지만 고민한다. 민주적 사고에서 멀어져 공안적 사고를 우선시하게 된다. 시·도 교육청의 징계 과정을 통해 교육 자치가 민주적인 숙성 없이 껍데기만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이 행사한 자치권은 징계 날짜를 언제로 할 것인가 정도였다. 이례적으로 징계위원회를 3차까지 소집하면서 다른 시·도교육청과 징계 발표 일자를 맞추려고 한 일이 시교육청이 자청해서 축소한 권한의 범위였다. 최고 권력의 눈치만 보며 시·도교육청을 압박하는 교과부도 문제지만 주어진 권한을 포기한 시․도교육감들의 무소신은 주민 직선 교육자치 시대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한다. 시·도교육청이 자율을 버리고 행정 말단이 되기를 선택했으므로 교육 자치 시계는 명령과 복종만 있는 임명직 시대로 되돌아갔다.
정말 징계의 칼날이 겨냥해야 할 곳은인천시교육청이 해임과 정직의 사유로 제시한 근거들을 보면 이 시대가 어디까지 거꾸로 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옥외기자회견은 시민 사회 단체의 일상 사업이다. 관공서 앞이나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의견을 밝히면 언론이 시민들에게 중계해 준다. 그런데 징계 사유에 시국선언의 부당성을 알리는 인천시교육청 현관 앞 기자회견이 포함되어 있다.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 학교급식에 예산 지원을 늘리라는 기자회견은 문제 삼지 않았다. 징계를 위해 억지 사유를 만들려다 보니 시국선언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시위로 몰아대고 있다.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데 시국선언 교사들은 품위를 잃은 적이 없다. 법률을 무시하거나 법 앞에 성실할 의무를 저버린 적이 없다. 국가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고, 교사이면서 합법 노동조합의 간부들이기에 많은 국민과 조합원들의 생각을 대변했을 뿐이다. 대리 권력자가 국민의 법익을 훼손할 때 이의 부당성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앞에 성실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권력자가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법질서를 위협하는데도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잃은 처사다.
더구나 시국에 대한 문제의식을 국민들에게 밝히는 것을 공직자에게 금지된 정치활동으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한국교총은 2004년에 교과부 앞에서 교육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가 추진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번 징계 사유에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하는 논거는 시국선언 내용이 특정 정파에게 유리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 한다면 과거 한국교총의 주장 또한 특정 정당의 주장과 같았으므로 정치 활동이라고 징계했어야 한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할 때는 표현권을 보장하고 불리한 의견에 대해서만 징계로 재갈을 물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일이다. 시국선언을 정치적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에 더 음험한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으므로 징계의 칼날은 그 쪽을 겨냥해야 마땅하다.
'조폭논리'에 따라 진행된 시국선언 교사 징계
이번 징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벌거벗은 임금님만도 못한 사고 체계를 가진 이들이 징계를 주도하고 있다. 거울을 비춰줬으나 외면하고 거리에 나서 웃음거리가 되길 자처한 셈이다. 그들은 권력이 오작동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교훈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동의대 신태섭 교수, KBS 정연주 사장, YTN 노동자들, 그들을 징계할 때도 해당 기관을 최고 권력의 청부업자로 만들었다. 법원이 권력을 그렇게 휘두르면 안 된다고 판결했으나 한 번 일탈한 권력은 제 궤도가 어디였는지 길을 잃었다. 시국선언 징계 과정을 복기해 보면 권력 일탈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은 소청심사 과정에서 권력이 이성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취한 상태에서 저질렀던 권력의 무리수를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다. 자신을 돌아볼 능력이 없는 권력에게 신뢰를 보낼 국민은 없다. 사안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살펴보고 징계를 철회한다면 권력은 신뢰와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소청심사위원회도 권력의 오작동에 동조한다면 행정 권력은 역사적 심판의 대상으로 추락할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재판도 진행 중이다. 교육청에서 거론한 징계 사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검찰은 공소장에서 집단행동을 문제 삼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한 집단행동으로 시국선언을 처벌하려면 국공립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기소해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 문제가 불거졌을 때 판사들이 참여한 서명 운동도 집단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형평에 맞지 않는 법적용은 행정 권력에 대한 불신에 이어 사법 권력에 대한 불신을 불러 올 것이다. 권력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판을 치게 된다.
이번 징계는 말로 해도 될 일을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조폭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어 왔다. 한 대 때릴 일을 빌미삼아 수십, 수 백 대의 매를 친다면 국가권력이나 조폭이나 무엇이 다른가? 이성이 마비되지 않고서야 귀를 열라는 충언은 듣지 않고 따귀부터 후려칠 리가 없다.
권력이 오작동하고 있고 그 권력을 보완하고 견제해야 할 구조들마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는 징계를 받은 자만 피해자가 아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도 징계 과정에 손을 보탠 이들이야말로 가엾은 피해자다. 그들의 피 묻은 손이 불쌍하다.
덧붙이는 글 | 임병구 기자는 현 전교조 인천지부장입니다. 시국선언과 관련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임 지부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당초 11월26일 예정돼 있었으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한 차례 변론을 더 갖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오는 8일 오후 2시30분으로 연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