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이 '희망선포식'이란 이름으로 착공식을 갖고 보와 준설사업이 계획된 지역부터 일부 공사가 시작됐다. 착공식 이후 반대운동 진영은 힘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70%가 넘는 국민여론은 물론 법과 절차까지도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정부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착공은커녕 감정평가와 보상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팔당지역, 한강 9공구이다. 이곳은 지난 10월 말 공권력 900명을 동원해 강제측량을 실시해 겨우 11월 17일 하천공사시행계획 고시를 냈지만 여전히 사업은 지연되고 있다.
지난 4일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살림단식'에 들어간 유영훈 대책위원장은 "최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을 위한 단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곳 농민들은 여전히 모든 사업절차를 거부하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행정소송뿐만 아니라 40여명의 농민들이 법원에 '하천공사시행계획고시 효력정지가처분신청'까지 낸 상태다.
유영훈 위원장은 "아직까지 대대로 농사지어왔고 수십 년간 일궈온 팔당의 유기농지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며 "여전히 싸우고 있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오래된 신념인데, 나는 농민들이 하나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고 자신감도 나타냈다.
이들이 팔당의 유기농지를 지키려는 이유는 뭘까? 유영훈 위원장은 "팔당유기농지 보존투쟁은 4대강 사업과 대척점에 서 있다"며 "4대강 사업은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모두가 더불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명중심의 가치관을 확립해야 하는데, 그 생명의 원리ㆍ공동체의 원리가 가장 잘 발현되는 장이 바로 농업이다. 그리고 유기농업은 바로 이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팔당 농민들의 싸움이 벌써 7개월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다녀갔고 기독교와 천주교까지 합세해 종교행사를 열기도 했다. 공대위는 법적 대응뿐만 아니라 시민홍보전까지 여전히 바쁜 일정을 세우고 있다. 12월 29일에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생협 등이 마련한 대책위 후원의 밤도 열 계획이다.
팔당공대위 유영훈 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하자 농민들도 바쁜 일손을 놓고 지지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유영훈 위원장 인터뷰 전문이다.
"최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을 위한 단식 ... 희망 있다"
-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혹시 단식 계획이 있었나, 아니면 대책위위원장이 단식을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나?"정부가 '희망선포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착공식을 하고 일부에서 공사가 진행되니까 많이들 힘이 빠져 있다. 이제 4대강 싸움은 끝난 게 아닌가 한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강 9공구인 팔당지역은 11월 17일 공사고시가 났지만 착공은커녕 보상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팔당에서는 4대강 싸움이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곳도 착공이 될 것이다. 공사업체가 사무소 부지를 선정하고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공사장비가 들이닥칠지 모른다. 또 정부와 지자체도 농민들에게 '보상' '대체부지' 협의에 응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며 농민들의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늘 긴장되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특히 12월이 더욱 그렇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농민들의 새로운 다짐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의 대응 또한 더욱 날카로워야 하기에 이번 단식을 결심했다. 전혀 계획되지 않았다. 최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을 위한 단식이라고 보면 된다."
- 12월 들어 대체부지와 보상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뭔가?"보상의 경우, 시설 보상과 농업손실 보상인데 기존 설치된 비닐하우스, 관정, 작물 등과 2년 치 농업소득을 보상하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보상은 국가하천이라는 이유로 사유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해 농민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평생 지어온 농사기반을 떠나서 이주하는 걸 무슨 직장 옮기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정부당국의 인식이 문제다. 결국 이곳 농민들은 73년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국가에 강제로 땅을 빼앗겼고, 이제 다시 4대강 사업으로 두 번째 땅을 빼앗기게 된 셈이다.
대체부지는 지자체에서 준비 중인데, 남양주시는 덕소 인근의 '신안농장'에 5만평의 부지를, 양평군은 단월면에 1만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체부지는 현재 피해를 입게 될 면적의 반도 채 안 되는 적은 면적이다. 게다가 사유지를 임대하는 것이고 기간도 10년으로 한정돼 있어,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곳을 알아봐야 한다. 또 현재 거주지에서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임야다. 이를 개간해서 유기농지로 만드는 데만 3~5년이 걸린다. 그동안 뭘 할 수 있겠나. 대토 역시 농민들로선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그래도 농민들로서는 농사를 계속 짓게 해주겠다는 대체부지를 외면하기 힘들 것 같다."맞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 다시 무슨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겠나. 결국 농사를 계속 짓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밀려난다면 결국 우리는 보상과 대토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깊은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시되는 보상과 대토의 조건에 대해서 우리 농민들은 긍정적이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대체부지를 선택한다 해도 정부나 지자체 모두 큰 부담을 안게 될 게 뻔하다.
남양주시나 양평군 모두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를 앞두고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작 조직위원장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만 손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국책사업이니 지자체의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지자체가 대체부지를 마련하려는 노력도 우리는 인정한다. 피해를 입게 될 농민들을 위해 행정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대대로 농사지어왔고 수십 년간 일궈온 팔당의 유기농지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전히 싸우고 있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지자체와 토지주택공사에 앞으로는 개별적으로 농민들에게 압박을 가하지 말고 대책위를 통해 협의할 것을 요청했다."
"팔당의 싸움은 피해 농민 소수의 저항을 넘어서 있다"- 대책위원장으로서 쉽지 않은 조건들 속에서 어려운 단식을 결정했다. 단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뭔가?"단식이 뭐 대단한 일이겠나, 시민단체나 농민단체에서 단식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단식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항의와 거부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직도 정당하다고 믿는다.
나는 '단식'은 자신을 비우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나부터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다. 그러려면 맑은 눈으로 안팎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를 어려운 상황 속으로 내몰고 있는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간단하다. 단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다. "
- 그동안 팔당이 4대강 싸움에서 언론에 비교적 자주 언급된 것 같다."고마운 일이다. 4대강이 전국적인 현안인데 그래도 팔당이 자주 보도된 것이 사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완강하게 버티면서 싸우고 있기 때문일 거 같다. 또 우리가 주장하는 게 울림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수도권 최대 유기농단지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단순히 농산물을 수확하고 유통하는 경제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팔당의 특징이다. 유기농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ㆍ문화적인 도농공동체를 만들자는 게 팔당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농민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내 오래된 신념인데, 나는 농민들이 하나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가 많지 않다. 대신 든든한 신뢰로 연대하고 있는 도시 생협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학자들, 정당, 종교인들까지 합하면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팔당의 싸움은 피해 농민 소수의 저항을 넘어서 있다."
4대강 사업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 물음- 좀 더 구체적으로 팔당의 유기농지 보존이 4대강 사업과 어떤 관계가 있나? 팔당유기농지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가 있나?"기본적으로 4대강 사업은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무시하는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키워온 인간중심의 무차별 개발논리의 정점이라고 본다. 너무 지나쳐서 결국 인간도 행복해지지 못할 게 뻔한 데도 말이다. 우리가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외치는 이유는, 바로 팔당의 유기농지 속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관계 맺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단 한 평의 땅이라 하더라도, 그 속의 생명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곳 농민들이 유기농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땅이 죽고 물이 썩으면 결국 인간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농산물만 얻으면 되는 농지가 아니라 생명의 터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물질중심의 가치관에 기반한 현대산업문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 모두 더불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명중심의 가치관, 세계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 생명의 원리ㆍ공동체의 원리가 가장 잘 발현되는 장이 바로 농업이다. 그리고 유기농업은 바로 이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곧 있으면 친환경 유기농도 상품처럼 포장될 게 뻔하다. 벌써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 팔당은 진정한 유기농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으로 남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지역이다. 이곳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이다.
나는 친환경유기농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 4대강 사업이야말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간의 유기체적 관계를 철저히 파괴하는 가장 전형적인 반생명적인 가치관의 소산이라고 본다. 그래서 4대강 싸움의 의미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가'를 묻는 매우 적절한 물음일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성찰의 기회인 셈이다. 나는 팔당유기농지 보존투쟁이야말로 정면으로 4대강 사업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생협에서 후원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앞으로의 계획은?"외람된 말이지만, 우리들은 모두 남이 아니다. 생명을 지키려는 일은 팔당농민들만의 몫이 아니지 않는가? 후원회는 생명살림에 함께하기 위해 마음과 힘을 모으는 노력이기에 고맙고 눈물겨울 뿐이다. 든든하다. 단식을 한다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격려와 연대의 메시지가 더 많다.
우리는 4대강 반대운동을 하면서 생명살림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있다. 8일에는 명동에서 선전전을 계획하고 있다. 작은 화분에 밀싹을 틔워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우리 이야기를 할 것이다. 많은 분들이 행정소송에 참여했고, 원고자격이 있는 40여명의 농민들이 하천공사시행계획고시 효력정지가처분신청도 내놨다.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법적 대응도 치밀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세계유기농대회와 관련해 유기농이 수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정부의 왜곡된 논리를 반박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지와 격려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남양주 지역 인터넷 신문인 <남양주뉴스>와 함께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