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홈페이지를 보면 자신들의 임무를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합니다"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요약하면 통일부는 통일과 그 기반 마련을 위해 남북대화와 협력에 힘을 기울이라고 만든 정부조직이며, 통일부 공무원들은 그 일을 하라고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 지난 2년 가까이 통일부는 자신의 존립근거를 잊고 세월만 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통일부 장관은 통일과 남북화해를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백번 양보해서 올해 초까지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 북한의 로켓 발사, 6자회담 탈퇴 등 긴장요소들이 많았기에 적극적 조처를 취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고 치자. 그러나 올해 봄을 지나면서는 거의 일방적이라고 할 만큼 북한당국의 관계개선 의지가 두드러졌다. 피랍어부 석방, 현정은 현대회장 방북에 이은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의사,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고위급 인사 조문, 추석 남북이산가족 상봉, 6자회담 복귀 의사 등 작정하고 쏟아내는 것 같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그 때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이 "약간의 변화는 감지되나, 아직은 근본적인 변화라고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아직은 때가 아니고,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착수할 때가 아니며, 남북정상회담도 노력할 이유도 없고, 이산가족상봉 계획도 없다. 그러면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농림부가 농촌경제가 회생할 전망이 없으니 당장 할 일이 없다거나, 교과부가 입시문제 해결의 근본적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당분간 기다리겠다고 한다면 그런 망발이 어디 있을까? 남북간 근본문제 해결되지 않아 대화할 수 없다면 도대체 통일부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러니 없애야 한다.
물론 그동안 현 장관도 한 일이 있긴 있다. 지난 9월 북한 황강댐 방류 사태 당시 아직 분명한 증거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방류는 의도를 가지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혀, 이후 정부의 강경대응을 이끌었다. 그는 민간의 인도적 지원만이라도 허가해 달라는 요청에 '인도적 지원은 언제든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아직 북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증거가 없어, 조사 중'이라고 말한다.
국제기구, 민간구호단체들조차 다 인정하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정작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여전히 조사만 하고 있다면 그런 통일부가 무슨 필요 있는가? 최근 민간단체들이 인도적 대북지원 협의를 위해 북측 민화협을 만나려던 계획도 통일부의 압력으로 불허되었다고 한다.
작년 통계를 보니 정관의 연봉은 각종 수당 등을 모두 합하면 1억 3239만원이다. 이 돈이면 5명 이상의 도시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고액연봉이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남북대화 위해 강연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돈을 지출하느니, 차라리 통일부장관을 해임하고 그 돈으로 정부가 말끝마다 외치는 일자리 창출 위해 애쓰는 게 옳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데도 내년도 통일부는 26% 대폭된 예산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대북 쌀 지원 등에 사용되는 남북협력기금 출연금은 3500억원으로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됐지만, 통일부에서 사용하는 일반 예산은 1527억6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5.7%나 급증했다."(이
근우 기자, 매일경제신문 09. 11. 13)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쌓아 놓는 남북협력기금은 그조차 동결한 상태에서 통일부 일반예산만 잔뜩 인상해 놓았다. 2008년만 해도 남북협력기금 실제 사용액은 총 예산의 20%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역대 최저다. 통일부가 가장 중요한 남북관계개선 여건 조성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증거다.
새 정부 들어 정부조직개편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폐지될 위기에 처했던 통일부를 국민들이 살려놓았더니 할 일은 안 하고, 근본적(?) 상황변화만 기다리고 있다. 사실 현인택 장관 스스로도 인수위 시절 통일부 폐지를 주장했던 인물이니, 하는 일이 없는 통일부 폐지 주장은 사실상 내 주장이 아니라, 현인택씨의 소신 아닌가?
도대체 경력이나 소신이나 활동 모든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하다는 것 말고 하는 일이 없는 현 장관이 물러나든지,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할 의지가 없다면 통일부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국민의 아까운 혈세를 이제 그만 낭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