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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은 김인철에게 민숙이 사건과 옥희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시켰다. 공통점을 파악하는 일은 범행의 일반적 성격과 동일범 여부를 추정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차이점을 정리하는 것은 범행의 진화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다음 범행의 성격을 예단해 볼 수 있는 아주 긴요한 작업이었다.

<공통점>
1. 어린 여학생 피해자
2. 하교 시간대의 범행 시간
3. 한적한 시골길 납치 방법
4. 성폭행 후 살해
5. 무덤 옆 장소 선정
6. 사체 방치 후 도주

<차이·진화점>
1. 범행 대상이 어린이에서 고등중학생 소녀로
2. 도구 사용 안 하다가 칼, 가위, 노끈 등 준비
3. 추행에서 적극적 고문, 강간으로
4.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에서 피해자에 대한 물건취급으로(그러나 피해자의 눈을 가린 행위는 죄의식의 표출로 볼 수도 있음.)

김인철의 자료를 검토한 후 조수경은 두 범죄를 일괄하는 프로파일링을 작성했다.

1. 우선 범인은 성적인 욕구 불만이 있는 자라고 보아야 한다.
2. 범행 시간대로 보아 그는 실직 상태이거나 비정규적인 직업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높다.
3. 범인은 현장 일대의 야산 지리에 익숙하다. 평소 혼자서 야산을 자주 산책하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4. 사체를 은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인은 피해자들과 면식이 없다.

5.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범인이 남긴 족적의 운동화를 찾는 것이다.
6. 두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간주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7. 범인은 범행을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연쇄살인범의 전형적 성격을 띠고 있다.
8. 범행의 수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잔혹해지는 것은 살인 중독성이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음 범행까지의 주기가 짧아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요컨대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희생자가 나온다.

현장 일대를 탐문하던 보안요원들에게 유용한 제보가 들어왔다. 남매가 납치되기 30분 전에 한 괴한에게 미행을 당하다 서둘러 도망친 고등중학생 소녀가 나타난 것이었다. 사건 전 날에도 괴한에게 쫓긴다는 느낌이 들어 갑자기 달음질로 위기를 넘겼다는 소녀도 나타났다.

이 두 소녀가 진술하는 괴한의 인상착의가 다른 목격자들의 것과 거의 일치했다. 이제 수사진에서는 그 괴한을 찾아 목격자들에게 확인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여러 차례의 납치 기도가 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면 범인의 거주지는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일단 수사의 범위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유천일은 현장 일대의 가옥 마당들을 철저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그의 지시를 받은 보안요원들은 범인의 몽타주를 들고 마을 집의 마당들을 예외 없이 탐문했다. 마당에 있는 족적이 범인이 남긴 운동화의 것과 일치하는지 여부가 수사의 초점이 된 것이었다.

점심 식사 후 현장 야산과 반대편에 있는 한 외딴 농가에 들른 한 보안요원은 마당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발자국들을 목격한다. 그는 들고 있던 수사 파일에서 범인의 발자국을 꺼내 마당의 것과 대조해 보았다. 그는 일순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발자국이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집에는 노인 부부가 있었다. 제복을 입은 보안성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노부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눈만 껌벅거렸다. 보안성 요원은 노부부가 아들을 방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넘겨짚어 물었다.

"아드님은 언제 오지요?"

할아버지는 태평스럽게 대답했다.

"산에 나무 하러 갔는데 워낙 들어오는 시간이 제멋대로라서."

노인 부부는 전혀 사태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집을 둘러보겠습니다."
"그러시오."

뒤따라온 현장 감식반이 마당의 발자국 사진을 찍고 석고를 떴다. 그때서야 노부부는 아들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알았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할아버지, 이 헝겊신(운동화) 발자국은 누구 겁니까?"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발자국들을 내려다보더니 자신 없이 대답했다.

"집에 식구들 말고는 들락거리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아들 것이겠지요?"

할아버지는 눈이 어두워 발자국이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보안요원들은 별채에 있는 작은 방에서 노란 노끈을 발견했다. 그들은 할아버지를 입회시킨 후 방의 물건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불장 옆에 있는 가방에서 핏자국이 선명한 낚시용 칼과 가위, 피 묻은 면장갑 등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았다.

그 집의 아들 주철식은 37세 노총각이었다. 중국으로 가겠다고 집을 나갔던 주철식은 1년 가까이 아무 소식도 없다가 2개월 전에 불쑥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하는 일 없이 술 먹고 산과 들을 돌아다니기만 했다고 했다. 조수경은 그가 집으로 돌아온 시점이 6월 하순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6·15 범죄 이후에 조직을 이탈하여 집으로 온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이제 체포할 일만 남게 되었다. 범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잡힐 수 있도록 보안요원 셋만 남아 몸을 숨기고 나머지는 일단 철수했다. 노부부는 아들이 살인범임을 알고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안요원에게 순순히 협조했다.

오후 5시경 집으로 들어오던 주철식은 이상한 낌새를 차렸는지 마당에서 우뚝 발을 멈췄다. 하지만 보안요원들은 침착히 기다렸다. 사방을 한 번 돌아본 주철식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체포선 안으로 들어오자 보안요원 셋이 일시에 덮쳤다. 범인에게는 저항할 틈도 주지 않은 기민한 행동이었다. 범인의 손에 수갑을 채운 보안요원들은 집 주변을 추가로 수색했다. 살인의 기념품인 옥희의 허벅지 살점은 비닐봉지에 담겨 집 뒤란에 묻혀 있었다. 범인이 가끔 와서 보았는지 손으로 흙을 헤친 흔적이 있었다.

주철식은 체포 직후 평양 인민보안성으로 압송되었다. 지문과 유전자 분석 결과 주철식은 6·15 살인범임이 확인되었다. 그는 인민배우와 아리랑 축제 카드섹션 책임자 여성을 죽인 범인이었다.

조수경은 길고 긴 사건의 어두운 터널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주철식은 최근 두 건의 살인에 대해서만 기억할 뿐, 6·15 살인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열지 못했다.

유천일이 조수경에게 말했다.

"정말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닐 겁니다."

주철식의 혈액에서는 미상의 물약 성분이 다량 검출되었다. 조수경은 그 약물들이 주철식의 살인 충동을 자극하고 기억력을 감퇴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까운 사건부터 진술시켜라.

그것은 기억력이 흐려진 범인을 취조하는 수법이었다.

"우선 최근 사건을 정확히 진술시키면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수가 생길 겁니다."


#연쇄살인#보안요원#프로파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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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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