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2009개정)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뜨겁습니다. 현장에서는 2007개정교육과정이 시행 준비중인데 왜 바꾸느냐 하고, 연구진이나 정부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고치는 거 아니냐는 듯 강행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 자주 바뀌면서 학교 현장이 혼란스럽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검정교과서를 만들던 출판사도 당장 피해를 입는다고 호소합니다. 교사 채용을 준비하던 예비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초등학교에는 아주 큰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바로 올해 초등학교 4학년생이 사회교과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교과가 전에 비해 많이 변했기 때문인데요. 이는 교육과정 연차개정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입니다. 대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역사 내용 이동과 연차 개편 때문에 역사 못배워
'2007개정교육과정'은 교육내용의 적정화를 위해 여러 교과 내용을 조정한다고 하였는데, 초등 사회 교과에서는 원래 6학년 1학기에 있던 역사 내용이 5학년 1, 2학기로 내려왔습니다. 역사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랍니다. 5학년에 있던 내용은 6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른 학년에 있던 역사교육 내용도 거의 사라지고 5학년으로 다 합쳐졌습니다. 사회교과는 역사뿐만 아니라 일반사회, 지리 등이 통합된 교과입니다. 그동안은 이런 내용이 학년에 따라 조금씩 나뉘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새교육과정은 모든 학년에 일시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저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됩니다. 올해는 유치원, 초등학교 1,2학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 수학과 영어에 처음 적용되었습니다. 2010년에는 초등학교 3, 4학년에 적용되고, 2011년에는 초등학교 5, 6학년에 시행이 됩니다. 이 때문에 올해 4학년은 2010년에는 7차교육과정으로 5학년 교육과정을 배우고, 2011년에는 2007개정교육과정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올해 4학년 학생들은 바뀐 내용 때문에 5학년 때 배운 사회를 6학년에 가서 또 배우고, 역사는 못배우고 중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교육과정이 바뀔 때 부분적으로 학생들이 교육내용을 손해보는 경우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수학교과는 7차교육과정 때 교육내용 30%를 줄이고 학습부담을 줄인다며 방정식(X)등 초등학생에게 어려운 내용을 중학교로 보냈습니다.
2007개정교육과정은 수학교육의 연계성 때문에 다시 이것을 초등학교로 가져왔습니다. 학년간에도 내려온 내용이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못배우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작년부터 수학보충학습 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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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신입생 수학 못배우는 내용 있어)
학생은 뒷전인 교과 개편에 교과부는 뒷북 행정
사회는 교과부에서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여 올해야 보충학습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2008년에 역사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도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 등으로 업무가 바빠 신경을 못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올초에야 보충교재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4학년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못배운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다가 교사들이 문제제기를 해서 알게 된 일입니다. 저도 교육과정심의회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과부에도 여러 번 확인 전화를 하였습니다. 교과부가 2년 넘게 직제개편과 인원축소 여파로 학교 현장의 교육에는 미처 관심을 쏟지 못했고, 문제가 생겨야 아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초등에서는 이렇게 교과 내용이 통째로 학년별로 뒤바뀐 것은 교육과정 개정 역사에서도 처음이라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 내용 자체에 대해서도 6학년이 공부하기에도 어려운 내용인데 5학년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가 학급 담임 체제이고 역사교육 내용도 다른 교과나 사회 교과 다른 내용과 통합해서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인데, 5학년에만 몰아놓은 것도 초등학교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교과부는 이런 우려를 덜기 위해 역사보조교재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예산부족으로 학생들에게 실제 배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작 올해 4학년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게 생겼다니 교육과정 개정이 학생을 위한 것인지 교과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교육 강화라는 개정취지도 무색합니다.
보충학습교재로는 수업도 제대로 못해한편 교과부에서 마련한 보충학습 교재로는 제대로 역사교육을 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수학 사례를 보더라도 원래 있던 학년 내용을 공부하기에도 벅찬데 보충학습까지 하느라고 학생 부담이 매우 큽니다. 교과부는 교과서나 마찬가지인 교재를 여러 학년을 묶어 교사당 1부씩 배부해 학교마다 각자 복사해서 써야 합니다. 교육홍보비를 계속 늘려 각종 정책홍보집을 칼라로 무작위 배포하는 것에 비하면 관심이 한참 부족합니다. 사회보충교재라고 학생마다 다 돌아가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다른 때보다 개발기간이나 비용도 충분히 들이지 못했을 텐데 내용도 걱정입니다.
이걸 언제 배우는가도 문제입니다. 원래 보충 교재는 결손 방지를 위해 전 학년에 배우기 때문에 4학년 학생들은 5학년 때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습부담이 매우 커집니다. 내년에 수학보충교재 시간만 해도 15시간이나 됩니다. 여기에 사회까지 보충학습을 하면 교사나 학생이나 교과서 수도 많고 학습내용도 매우 복잡해집니다.
6학년 때 배워도 마찬가지입니다. 5학년때 배운 사회내용을 반복해서 배우고 역사내용은 보충교재로 배워야 하니 이것도 뭔가 맞지 않습니다.
교육효과는 어떨까요? 교과서와 보조 학습 자료인 사회과 탐구까지 동원해서 배워도 양도 많고 내용이해가 쉽지 않은데 보충 교재만으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까요?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입니다.
2011년에 사회만 7차 교과서로 배우면 문제 적어져
그럼 학생들의 학습부담도 줄이고 역사교육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바로 올해 4학년 학생들이 6학년이 되는 2011년에 다른 교과는 2007개정교과서로 배우고 사회교과만 현재의 7차 교과서로 배우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5학년까지 배운 사회 내용에 6학년 내용을 배울 수 있어 학습 결손도 없고 역사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제안에 대해 그동안 교과부는 교육과정이 바뀌면 교과서도 반드시 새로 바뀐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며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피해를 보면서까지 이런 원칙을 고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학생중심을 외치는 교과부는 이럴 땐 말도 안 되는 규정만 붙들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확인한 바로는 보충학습을 5학년 때 할지 6학년 때 할지조차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담당자 또한 자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파악 중이고 관련부서와 협의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내년도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있는데 교과부가 중요한 문제를 너무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학생들에게 부담도 줄이고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실효성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교과부 교육과정 정책 방향 바꾸고 인력도 늘려야또 교과부에 교육과정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지금도 미래형(2009개정)교육과정을 이달 안에 고시하겠다고 총론 심의회가 진행되고 학교에서는 학교자율화라며 불법적으로 미래형교육과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바꾸고 홍보하는 것에만 신경을 쓸 뿐 학교에서 정작 학생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것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부서 담당자도 늘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걸 물어보는 과정에 담당자를 잘못 가르쳐줘서 허탕친 적도 있고, 담당자가 출장을 가서 전화연결만도 2주 넘게 걸렸습니다. 교육과정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도 손쉽게 물어보고 대답할 사이트 하나 없고, 전화해서 관계자 찾다 끊어져 포기하기를 여러 번, 이제 아예 전화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교육과정 지원 부서의 공백은 결국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집니다. 학교 현장 교육 지원에 적합한 교과부의 역할과 체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