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 : 8일 오후 3시 30분]아침엔 학원 강사, 오후엔 외제차... '장관이네' '우리 조상들은 감을 딸 때 까치밥으로 몇 개 남겨뒀다. 요즘 사회에서 이런 배려의 모습으로 어떤 게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 독서를 통해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자신에게서 쳐내고 싶은 단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대원외고 입학시험 면접에서 나온 질문 중 일부다. 수험생들은 "면접은 사회 통합적 지식이 아닌 도덕적 관점을 묻는 질문으로 채워졌다"고 전했다. 대원외고 입학시험은 8일 오후 1시께 끝났다. 수험생들은 환한 얼굴로 교문을 나왔다.
대원외고 재학생 10여 명은 두 줄로 늘어서 "수고하셨습니다, 입학식 때 만나요"라며 고개 숙여 수험생들을 배웅했다. 하지만 수험생 중 다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420명 모집에 10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재학생들의 인사를 통과하면 고교 선행 학습을 홍보하는 학원관계자들이 수험생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각종 전단지와 책자를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시험을 마친 학생이 부모의 품에 안기는 건 그 뒤의 일이다. 학부모들은 "수고했다"며 아들딸의 등과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학생들은 대체로 "시험이 어렵지 않았다"며 "예년 기출문제와 비교하면 비교적 평이했다"고 말했다.
학원관계자들도 "외고 입장에서는 최근의 폐지 논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시험 난이도를 높이면 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침 시험 시작 전에는 학원 강사들의 총출동이 '장관'이었다면, 시험을 마친 뒤에는 마중 나온 부모들의 외제차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재규어 등 대원외고 앞에서 어지간한 외제차를 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차에 올라 학교를 떠났다.
올해 서울 전체 외고생 6000여 명 중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는 10명에 불과하다. 대원외고에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올해 5명을 모집하는 대원외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는 단 한 명도 응시하지 않았다.
이종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은 "외고 입학자들의 대부분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산층 이상"이라며 "외고 입학을 위해서는 높은 사교육비 부담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기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층 양극화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1신 : 8일 오전 10시 32분]"전국 1위 고등학교, 아무나 들어가나요?"'명문' 대원외고 입시날... "외고 폐지하면 MB정부 최고 '미친 짓' 될 것""우리가 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만 준비하러 여기 온 건 아니죠. 뭐랄까, 다양한 커리어 쌓기? 뭐 그런 걸로 봐주세요. 어쨌든 대원외고 하면 새로운 명문 아니겠어요?" '강남 아줌마' 이수경(44. 가명)씨는 연신 까르르 웃었다. 이씨는 8일 이른 아침 서울 중곡동 대원외고를 찾았다. 이날 이씨의 딸은 대원외고 입시를 치른다. 딸을 입시장으로 들여보낸 이씨의 얼굴엔 자부심이 넘쳤다.
입시장으로 들어가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드는 딸의 표정 역시 엄마와 비슷했다. 환하게 웃어 보이는 입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흘러 나왔다. 엄마 이씨 옆에 서 있던 30대 초반의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는 외고 입시 전문학원의 영어 강사였다.
"파이팅!" 소리가 너무 컸던 것일까. 교문에서 자원봉사로 안내를 맡은 대원외고 여학생 한 명이 고개를 돌리더니 "어머, 선생님!" 하며 뛰어왔다. 그러고는 중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친 학원 선생님을 끌어안았다.
자부심과 자랑스러움.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이른 아침 대원외고 교문 앞에는 이런 것들이 넘쳤다. 긴장한 얼굴의 학부모와 학생도 있었지만, 대체로 밝았다. 대입처럼 학부모들이 입시장 교문 앞에 몰린 것은 비슷했지만 일종의 경쾌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럴만하다. 대학은 한 번 떨어지면 1년을 다시 공부해야 하지만, 외고는 떨어져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된다. 이날 T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말했다.
"여기 시험 보는 학생들, 어차피 서울에서 날리는 아이들이에요. 일반 고등학교에 가도 어차피 서울대, 연·고대는 다 가요. 뭐, 사실 크게 부담스러울 리 없죠."
학원 강사들 "제자들아, 파이팅!" - 수험생·재학생들 "어머, 선생님~"이렇듯 그들의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것 말고, 대원외고 앞에는 또 하나의 진풍경이 있었다. 바로 외고 전문 입시학원 강사들의 출동이었다. T어학원, C어학원, J어학원 등 학원 강사들은 팀을 이뤄 대원외고를 찾았다.
학원 홍보를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대원외고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왔다. 강사들이 알은체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대원외고 입시생들은 대부분 그들의 제자였다. 강사들은 어느 학원 출신 학생들이 더 많이 입시를 치르러 왔는지 자랑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야, 파이팅!"
"어제 잠 잘 잤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어머, 우리 ○○ 왔구나! 시험 잘 봐!"
"어머니, 아침 일찍 나오셨구나. ○○ 잘할 거예요."
한마디로, 대원외고 입시였지만 사설 학원의 징검다리 대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입시생들은 학원의 제자만은 아니었다. 학원을 거쳐 대원외고 입성에 성공한 재학생들도 '은사'를 잊지 않은 듯했다.
외고생들은 자신을 가르친 학원 강사를 만나면 크게 포옹을 하거나 뜨겁게 악수를 했다. 알은체를 하는 외고생들이 많을수록 강사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서로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학원의 손을 거친 아이들이 대원외고에 들어가고, 다시 그들의 '학원 후배'가 입시를 본다는 '소문'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 강사는 자랑스럽고 확신에 찬 어조로 흰 김을 내뿜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학원 교육 없이 대원외고 시험을 보는 건, 총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같죠! 여기 시험이 굉장히 어려워요. 웬만한 아이들은 외국인과 프리 토킹이 가능하다고 봐야죠. 전국 1위 고등학교인데, 아무나 들어가겠어요?" 넘치는 자부심 "전국 1위 고등학교... 아무나 들어가겠어요?"
아무나 못 들어가는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일까? 자원봉사에 나선 입시생의 '로망' 대원외고 학생들의 표정 역시 밝고 당당했다. 수백 명의 학부모들은 재학생들의 교복을 아래위로 훑으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부담스러운 눈길이었을 터. 하지만 이날 재학생들은 학원 강사들처럼 보란 듯이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외고 폐지 논란이 한창인 요즘, 입시 학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딸과 함께 대원외고를 찾은 김모(48)씨는 "설령 딸이 입학했는데 외고가 폐지되더라도 상관없다, 유예기간이 최소한 3년은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장유정(45)씨는 "외고를 폐지하면 (이는) 이명박 정부의 최고 '뻘 짓'이 될 것"이라며 "어느 시대든 명문고는 있기 마련인데, 사교육 잡겠다고 외고를 폐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자식을 입시장에 들여보내고 현장을 떠나는 학부모들에게 학원 관계자들은 전단지를 나눠줬다. 전단지에는 대입 준비 프로그램이 적혀 있었다. '학원의 자식'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학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