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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전환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사교육비 절감 차원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아닌 여권 실세가 들고 나온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정두언과 전교조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풍경도 재밌습니다. 한 달 넘게 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일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외고·일반계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육전문가, 학원 강사까지 다양한 이해 집단을 아우르는 취재를 통해 '외고 논쟁'의 본질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특목고 전문 입시학원을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김영규(44, 가명)씨는 전형적인 '386' 출신이다. 이른바 서울의 '일류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했다. 감옥에도 갔고, 인천에서 노동운동도 잠깐 했다. '속도 위반'으로 아들을 낳았고 "먹고사는 게 힘들어" 사교육계로 전향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에서 대박이 났다. 물론 큰 부자가 됐다는 건 아니다. 서울에 집이 있고, 자가용 승용차가 있으며, 등록금 걱정 없이 아들을 대학을 보냈으니 그에겐 대박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장이다.

그의 아들은 특목고 전문 학원장 자식답게 특목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일류 대학'에 입학했다. 덕분에 김씨는 특목고 원장으로서 체면이 섰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들과 대화만 나누면 울적하다.

"내가 명색이 386이니, 공부는 못 했어도 책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좋은 대학만 다니지 정말 너무 무식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얼마 전, '너 용산사태는 아냐?' 그랬더니 답이 끝내줬다. '가난한 사람들 불타 죽은 거? 그러니 돈을 많이 벌어야 돼', 그러더라."

"외고 보내지 마세요, 일반고 가도 'SKY' 갑니다"

김씨는 "내가 자식을 키운 건지, 괴물을 키운 건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청소년 시절의 과도한 경쟁이 아들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은 중학교 시절 성적이 꽤 좋았다. 아버지가 사교육 전문가다 보니 어려서부터 성적 향상을 위한 맞춤식 교육을 받았다. 김씨의 전략은 간단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방법은 같다. 한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놀게 하고 4학년 때부터는 영어와 수학만 잡으면 된다. 영어, 수학만 받쳐주면 성적은 끝이다. 지금 외고 준비하는 아이들도 그렇다."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수험생들을 태운 고급 외제승용차들이 줄지어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있다.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수험생들을 태운 고급 외제승용차들이 줄지어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있다. ⓒ 권우성
외고 진학은 그의 아들이 직접 선택했다.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는 외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들어가자마자 성적이 거의 바닥이었다. 김씨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아들은 충격에 빠졌다.

"외고 아이들은 실력 차이가 거의 없다. 오늘 중간 하던 아이가, 내일 전교 1등 할 수 있는 곳이다. '대포자(대학 진학 포기 학생)'가 없으니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교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 줄 아나? 1점, 2점에 웃고 우는 아이들이니 3년 내내 엄청난 경쟁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열심히 한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 이거야말로 모든 학부모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로망이 아닌가. 하지만 김씨는 "서열 경쟁이기 때문에 아이들 피만 말리고, 학습과 교양 쌓기와는 거리가 먼 서열 경쟁"이라고 일축했다.

김씨는 요즘 외고 보내려는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면 "일반고 보내라"는 조언을 한다. 특목고 전문 학원장의 자기 기만일까? 아니면 외고 입시 경쟁률을 낮추려는 의도적 '공작'일까? 김씨의 근거는 이렇다.

"솔직히, 어지간한 외고 들어갈 실력이면 일반고에서도 'SKY'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외고에 보내서 3년 내내 피 말리는 경쟁을 시키나. 사실 대원외고, 용인외고를 제외하면 다른 외고의 서울대 진학률은 높지 않다. 대부분 연·고대 가는 것인데, 차라리 내신 유리한 일반고에 가서 서울대를 노리는 게 낫지 않나."

"특목고 3년간 과도한 경쟁, 정말 피 말린다"

하지만 외고를 욕망하는 학부모들은 외고의 '뜨거운 학습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김씨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 학부모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섞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판인데, 그런 주장이 먹히겠나.
"어차피 '사교육의 자식들'이다. 외고 준비생들, 100% 사교육 받는다. 외고 들어가면 사교육이 끝나는 줄 아나? 우리 학원 고교부의 90% 이상이 외고생이다. 외고의 힘으로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사교육의 힘으로 가는 것이다. 내 말은, 어딜 가든 사교육 시킬 힘이 있으면 일반고에 가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 하지만 연·고대 등 사립대에서 외고생 특혜가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건 부인하지 않겠다. 내가 봐도 특혜가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특혜만 바로잡아도 외고 열풍과 사교육비는 어느 정도 줄어든다."

김씨는 "외고가 폐지되면 사교육비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해 서울에서 외고 입학생이 약 2000명인데, 최소 약 10만 명의 학생이 외고를 준비한다"며 "대원외고만 남기고 다 폐지해도 외고 준비생은 1만 명 이내로 줄어들고, 이는 결국 사교육비 총액이 10분의 1로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 수입이 반토막 나겠지만, 학부모들이 외고에 안 보내는 게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김씨는 자신의 아들을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특목고 나온 내 아들이 글로벌 리더? 민폐다, 민폐!"

"좋은 대학 다니고 있을 뿐인데, 내 아들이 글로벌 리더일까? 솔직히 특목고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 말고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사실 요즘은 좀 한심해 보인다.(웃음) 그래서 아들에게 '넌 어디 가서 리더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내 아들이 리더가 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할 것 같다. 그건 민폐다."

김씨는 지난 가을 "인문학적 소양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아들"에게 책을 한 권 슬쩍 선물했다. 고민 끝에 고른 책은 <전태일 평전>이었다. 김씨는 "얼마 전 아들 방에 가보니, 읽은 흔적 없이 책이 빳빳하게 그대로 있었다"며 쓰게 웃었다.

김씨는 "아직 1학년인데, 내가 운동권에서 전향한 것보다 아들 전향시키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스스로 경쟁을 체화한 사람은, 억지로 경쟁하는 사람보다 무섭다. 특목고에 가면 아이들이 누구의 강요 없이도 스스로 순위 경쟁을 한다. 학부모들도 그걸 좋아하고. 물론 나도 과거에 그랬다. 그런데, 지금 난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하는 내 아들이 무섭다."


#외고 폐지#특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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