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충청권의 민심을 듣겠다며 대전을 방문, TV토론회에 나섰지만 원안사수를 주장하는 주민과 토론자들에게 '사퇴하라'는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정 총리는 12일 오후 대전을 방문해 'KBS대전 특별기획 정운찬 총리 초청 세종시 대토론회'에 출연했다.
정 총리의 이날 토론회 참석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부의 계획을 충청지역 주민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의도로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KBS 박종오 앵커의 사회로 정운찬 총리와 김병윤 대전세종희망포럼 공동대표(목원대 무역학과 교수)가 세종시 수정을 찬성하는 패널로, 이상선 분권균형발전전국회의 공동대표와 이창기 선진대전창조포럼 공동대표(대전대 행정학부 교수)가 수정을 반대하는 패널로 참석해 90여분 동안 설전을 벌였다. 녹화로 진행된 토론회는 이날 밤 11시 10분 전국으로 생방송되는 KBS <심야토론> 시간에 방송된다.
정 총리는 이날 토론회를 위해 대전KBS로 들어서는 과정에서부터 항의를 위해 몰려든 100여명의 자유선진당 당원들의 피켓시위와 계란세례를 받아야 했다. 토론에 들어가서도 이상선 대표와 이창기 대표의 거센 공격에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급급했고, 급기야 '총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퇴하라', '비열하고 야비하고 무서운 정권'이라는 거친 말도 들어야 했다.
항의 시위 뚫고 시작된 토론회서도 집중포화정 총리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세종시는 행정중심의 복합도시다, 원안은 9부2처2청의 중앙부처가 세종시로 옮겨오고 거기에 산업과 기업, 대학, 연구소를 유치해서 훌륭한 명품도시를 만들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해소를 꾀하려는 것"이라며 "그러나 중앙부처가 옮겨온다는 것은 커다란 행정적 비효율을 초래한다, 또한 대학과 연구소,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도 모두 실천적, 선언적일 뿐이다, 그래서 정부가 새로운 수정안을 만들어 대한민국과 충청도의 발전을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수정추진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상선 대표가 가장 먼저 거친 말로 질문했다. 이 대표는 "총리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지만 지역주민들은 결코 환영할 수가 없다"며 "특히 이렇게 공영방송을 이용해서 세종시 수정입장을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인사말에서 '대의명분'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세종시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의 공약이었고, 두 번의 국회의 입법을 거쳤고, 두 번의 헌재의 판결까지 받았다"면서 "그렇게 해서 논란을 마무리 지은 것이 바로 세종시 원안인데, 무슨 '대의명분'에 어긋나서 지금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느냐"고 따졌다.
이창기 대표도 "정부가 행정비효율을 내세워 세종시 수정을 이야기하는데, 국토불균형과 지역공동화에 비하면 세종시의 행정비효율은 아주 작은 것"이라며 "또한 첨단디지털시대에 행정비효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디지털세대가 보면 우스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또 "더군다나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신뢰를 강조해 왔는데, 이제는 학생들 보기에도 부끄럽다, 어떻게 인성교육을 하겠느냐"며 "세종시를 수정한다면, 국민이 정부에 등을 돌리고, 정부를 믿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신뢰가 떨어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해 국가전체의 효율이 (행정비효율 보다)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병윤 대표는 "정부부처를 옮기지 못할 경우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 주민들을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 총리 "대통령 사과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정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다고 하지만, 이 대통령이 얼마 전 TV를 통해서 사과했다, 또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정성을 믿어 달라"면서 "국토불균형을 이야기 하는데, 지금 원안대로라면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봐 더 좋은 도시를 만들어 균형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상선 대표는 "대선공약이었지만 사과했으니 문제없다는 식이라면 양치기 소년 우화가 생간난다"면서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행정비효율, 다시 말해 단지 거리가 좀 멀어서 오는 불편함을 이야기하는데, 행정기관의 업무불편을 내세워 국가 100년대계를 무산시켜서야 되겠느냐, 뿐만 아니라 수도권 혼잡비용과 국민갈등으로 오는 비용은 왜 산정하지 못하느냐"고 몰아세웠다.
그러자 정 총리는 다시 "대통령이 오죽하면 사과하고 부끄럽다고 하겠느냐,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면서 "수도권 과밀비용과 갈등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원안대로 갔을 때 수도권 인구 분산이 잘 될 것이라는 데 의문을 가지고 있다, 2030년 50만 인구는 원안으로는 어렵다, 수정안으로나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다시 이상선 대표는 "대통령이 원안 추진을 20번 이상 약속했고, 수많은 논의와 법제정과 사회적 합의를 대통령의 사과한번으로 뒤엎으면서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렇다면 수년동안 합의한 노력과 그 사람들의 진정성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정 총리 "이 정권 내에 모든 계획 착공, 일부 완공"
정 총리는 또 더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영상을 통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기 이전에 계획한 모든 것을 착공하고, 또 일부는 완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수정안에 포함되는 모든 계획은 이 정권 임기 내에 착공하고 일부는 완공하겠다, 현재 2030년까지의 계획도 2020년까지 맞추자는 의견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사회자가 "모든 부분을 착공하겠다고 했는데 행정기관도 포함되느냐"고 물었고, 정 총리는 "계획에 들어간다면 물론이다, 그러나 세종시 무엇을 담을 것인가는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육과학기업도시' 등 세종시의 성격과 관련한 토론에서도 수정을 반대하는 측은 행정기관이전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고집했다. 이창기 대표는 "행정기관이 빠진 행정도시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또한 원안에 이미 자족기능이 다 들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선 대표도 "총리께서 현 정권 내에서 착공하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 행정도시는 이미 참여정부시절에 착공을 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과욕일 뿐"이라며 "행정부처를 빼는 것은 세종시에 행정부처를 이전해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겠다는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마치 '마중물'을 빼내는 것이고, 목욕물 버리다가 애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균형발전의 척도가 행정부처 이전여부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울산과 포항, 창원, 광양 같은 곳은 행정부처가 하나도 가지 않았지만 기업들이 모여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며 "원안에 있는 자족기능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일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러기에 세종시에 여러 기능을 담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비하고 비열하고 무서운 정권", "사퇴하라" 험한 말 등장토론회는 끝으로 가면서 더욱 치열해 졌다 결국 험한 말이 오가기도 했다.
이상선 대표는 "정부는 지금 모든 국가권력을 총 동원해서 '행정부처이전을 안하겠다'고 세운 목표를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심지어 정부는 지난 8일 전국의 부단체장들을 모아놓고 세종시 수정을 홍보하고, 국가권력을 총동원하거나 공영방송을 이용해서 홍보를 하고 있다, 설사 결과가 정부가 의도한대로 행정부처 이전이 백지화된다고 한 들 대체 뭘 얻을 수 있는가"라면서 "대통령과 총리 임기가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 국민을 대립과 갈등으로 내몰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그는 또 "설사 대통령이 무리수를 둔다고 하더라도 총리가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진정한 소신"이라며 "총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총대'를 메라고 있는 게 아니다,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세종시 문제는 전혀 정치적의도가 없다, 또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한 것은 그냥 보통의 말이 아니다"라면서 "그동안 제가 세종시에 대해 말을 안한 것이 바로 내 소신이다, 사전에 이 정부와 미리 약속하고 총리로 간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상선 대표는 "총리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 총리 이전에 심대평 의원이 충청권 인사로서 총리로 물망에 올랐다, 그런데 심 의원이 무산되자 다시 충청권 인사로서 정 총리가 지명됐다, 어떻게 여기에 정치적 의도와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느냐"며 "주민들의 반감이 더 큰 것은 바로 충청권인사에게 총대를 메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총리는 "제가 대통령의 심중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사전에 세종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사전에 비서실장을 만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정 총리는 "비서실장도 만났고 대통령도 만났지만 그 자리에서는 세종시의 '세'자로 나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창기 대표는 "전 대통령은 행정도시로 재미 좀 봤다고 말하고, 현 대통령은 표를 얻기 위해 그랬다고 말한다"면서 "이러한 일에 충청민들이 분노하고 신뢰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충청인들은 이미 균형발전이 중요하고, 우리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학습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고 추진되는 대안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환매청구" 발언에 당황한 정 총리 "관계자들에 전하겠다"
이상선 대표는 정부가 여론조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관여했던 조직까지 나서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대전에서 비상식적인 포럼을 만들고, 지역 언론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을 불러서 감성적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국정을 운영해서야 되겠느냐"며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고 민심을 찢어놓아서야 되겠느냐"고 몰아세웠다.
그러자 김병윤 대표가 "이러한 논의는 수정안을 보고서 해야 한다"며 "원안이 완벽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발 양보해서 수정안이 나오면 그 때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상선 대표는 "행정부처이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자족기능이 부족하면 보완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부처이전이다"라면서 "정부부처 안 내려오면 혁신도시도 안 된다, 혁신도시로 가는 공공기관의 비효율은 왜 얘기 안 하나? 심지어 현 정부는 혁신도시 주민들과 세종시 주민들이 만나는 것도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 정권은 정말 야비하고 비열하고 무서운 정권이다, 이게 '민간독제'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쏘아 붙였다.
이창기 대표도 "법학자들의 검토에 따르면, 정부가 사들인 땅을 원래의 목적대로 쓰지 않으면 환매청구가 가능하다고 한다"며 "총리가 이런 점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당황한 정 총리는 "조직적인 수정 찬성 운동이 있다는 것과 '환매청구권' 등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이런 점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서둘러 매듭지었다. 그러면서 정 총리는 "혁신도시는 계획대로 될 것이다,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 또 혁신도시에는 공기업이 가는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기관이 가는 것이 아니기에 효율성문제는 별개"라고 말했다.
"수정 위해 전방위 행동하는 정부, '막장드라마'"토론을 마친 후 마무리 발언에서도 가시 돋친 말이 오갔다. 이창기 대표는 "총리는 지금 경제학자가 아니고 한 나라의 총리다, 효율보다는 형평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과 지역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국가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 정직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쏘아 붙였다.
이상선 대표도 "최고의 대안은 원안이다, 정부가 수정을 위해서 전방위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면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면서 "총리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 총리는 "좋은 말씀 들 잘 들었고 고맙다, 지역에서 무엇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지 잘 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들은 잘 반영하고 건의해서 더 좋은 대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총리는 "저는 초등학교를 채 못 마치고 서울에 올라갔지만, 말투를 보고 '충청도 양반고을에서 살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제가 어떻게 저의 고향 충청도를 배반하겠느냐, 저의 진심을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정 총리는 토론회를 마친 이후에는 세종시 건설 현장에서 지역주민과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이날 밤에는 지역원로들과, 다음날 아침에는 지역 대학총장들과 잇따라 만나 의견수렴에 나서는 등 1박2일 동안 충청권 방문 일정을 이어간다.